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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Aug 19. 2020

좋은 일 같은데, 그것도 환경 파괴!

좋은 일 같은데, 그것도 환경파괴!


우리집을 방문하는 사람마다 거실 벽면을 가득 채운 책들을 보고 놀란다. 마치 내가 엄청난 독서를 하고 지적(知的)으로 무척이나 발달한 사람인 것으로 오해한다. 민망한 오해다. 지적 호기심은 남 못지 않게 많지만 진열된 책의 분량만큼 지식이 내 안에 쌓이진 않았다.


책꽂이에 진열된 책들의 면면을 살펴보고는 터무니없는 오해가 더 깊어진다. 종교책 서가에 기독교 책이 많은 것을 보고는 신앙심이 깊다는 오해를 한다. 환경 관련 책이 많은 것을 보고는 대단한 환경 운동가인 줄 안다. 제법 많은 인문 사회 계열 책들을 대하면 또 내가 그분야에 대단한 식견을 가진 사람으로 오해를 받는다.


방문객이 소파에 앉았다가 다시 일어나서 다가가는 곳은 CD진열장이다. VHS와 녹음테잎은 벌써 처분했지만 DVD와 CD는 아직 가지고 있다. 역시 책처럼 많다. 주로 클라식 계통이지만 대중음악의 여러 장르 CD들도 많이 진열되어 있다.

사람들은 우리 집의 이 품위있는(?) 전시품들로 나를 오해하고 지식과 교양을 겸비한 사람으로 치켜세우지만 그 물건들은 나의 몇 가지 잘못 중에 하나일 뿐이다.


내가 가진 책만 하더라도 얼마나 많은 나무가 베어졌는지 모른다. 나무를 펄프에서 종이로 만드는 과정 중에 소비한 전기와 물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 뿐인가, 인쇄용 잉크가 제조되는 과정의 화학물질 남용도 크다. 친환경 잉크를 사용했다는 글귀로 살짝 덮어진, 콩과 쌀 같은 곡물들은 식량부족 국가 국민들의 생존식량이다. “환경보다 밥이 먼저다.”라는 외침이 고막을 때린다.

CD를 만들기 위한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폴리카보네이트에 대한 환경호르몬 문제, 폐플라스틱 문제의 심각성은 이미 널리 알려져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책 읽는 사람은 지적인 사람, 음악에 조예가 깊으면 교양있는 사람으로 평가된다. 그런 취미활동은 인격을 높여주는 것으로 오히려 권장된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잘못이라는 인식없이 저지르는 환경파괴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심각하게 커다란 문제까지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있다.

자연 보호, 동식물 보호, 자원재활용, 지속 가능한 소비로 이어지는 환경관련 키워드 중에 대표적인 환경파괴를 제외하고는 우리는 무심하다.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장바구니 가지고 다니기, 밍크코트 입지 않기, 재활용 쓰레기 분리 잘해서 버리기, 일반 시민들은 이런 일들에 동참을 잘한다. 그런 의식이 없는 행동은 나쁜 짓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좋아 보이는 일에는 별 거부반응이 없는 것이다.

글 머리에 시작한 것처럼 독서와 음악 감상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그래서 벌목되는 나무와 플라스틱 폐해를 간과한다.


우리가 잘 저지르는 오류를 짚어보자.

밍크 코트를 입는다. 열악한 환경에서 밍크를 키우고 잔인하게 잡는다. 가죽은 그 동물을 먹기라도 하지, 밍크는 단지 옷을 만들기 위해서 죽인다. 모두들 이건 인간이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거위털, 오리털, 캐시미어, 토끼털은 인도적인가? 동물성 섬유가 비인도적이라 식물성 섬유만 사용한다는 것은 또 어떤가? 면화를 재배하는데 사용하는 물은? 물부족 국가 국민들의 갈증을 외면하고 있다. 면화 농가들의 농약사용에 대한 부작용은 또 어쩔 것인가? 사회의 어떤 계층은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유기농 면 제품만 사용하지만…

그럼 옷을 입지 않아야 하나? 어떻게 안 입고 살겠는가. 소비를 줄여야 하고, 한 번 만든 제품은 그 수명이 다할 때까지 잘 다뤄야 한다. 환경운동의 최전선에서 투쟁하지 않는 사람들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코비드19 때문에 여행이 자유롭지 못하지만, 우리는 모두 여행을 꿈꾸고 있다.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인생공부는 다른 것과 비교할  없을 정도로 크고 유익하다. 지식으로나 감성으로나 여행은 우리가 성장하는 좋은 방법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이어지는 중요한 행로이다. 그러나 여행의 교통수단이 소모하는 연료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이것은   순간이라도 숨쉬지 않으면 죽는 우리의 삶과 직결된 문제이다. 또한, 공기  문제를 넘어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 되고 있다. 물론 지구 온난화는  교통수단 때문에만 일어나는 현상은 아니다. 화석연료의 사용으로부터, 하다못해 소가 뀌는 방귀 때문에도 지구는 열을 받고 있다.

그럼 여행도 다니지 말아야 하나? 그렇게 극단적인 항의를 하지는 말자. 우리가 여행을 할 때는 자신의 탄소발자국에 대한 보상을 하는 작은 일부터 할 수 있다. 오염된 공기를 정화시키는 비용에 조금 보태는 아주 사소한 일이다.

탄소발자국이 많이 남는 것은 수입 농산물도 한 몫 단단히 한다. 예를 들어 아보카도가 얼마나 몸에 좋은지 의학 전문가들은 숨가쁘게 칭송을 하지만 우리에게 오기까지의 탄소배출은 어마어마하다. 그 뿐인가? 수익성 좋은 아보카도를 기르려고 지구의 허파인 숲이 파괴되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수입 과일 없이도 잘 살아왔다. 수입과일을 구매할 때는 이 문제도 염두에 두자.


우리의 아픈 상처를 치유해주고, 꿈을 키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예술은 원시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우리 생활의 중심부를 차지해왔다. 종교 의식의 춤과 노래, 인류의 기록인 동굴벽화, 이런 출발이 예술이 되었다. "예술"은 따로 쓰이는 하나의 낱말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술행위는, 그림을 그리는 매개제인 물감, 캔버스, 종이, 공연을 위한 의상 제작, 과도한 전력 소모,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부분에서 공해를 배출하고 자원을 소모한다. 그럼 우리 인간이 어떻게 예술과 담을 쌓고 산단 말인가. 그것은 인간의 표현 본능인데.

너무 걱정하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근래에는 지구 자연환경의 파괴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예술 행위도 많고, 그에 자극받고 공감하여 파괴된 지구를 구하기 위한 첫 발을 떼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이것도 예술이 담당하는 한 역할이다. 망가진 것을 복원하는 몫까지 예술의 영역에 들어간다.


 “재활용”이라는 달콤한 단어가 우리를 유혹하여 나 자신도 그 유혹에 염치없이 넘어가곤 한다. “재활용”이라는 비겁한 단어가 우리에게 면죄부를 주어서 내가 그 면죄부에 슬쩍 양심을 떠맡긴 사연도 많다. 그러나 나 나름 회개하는 마음으로 몇 가지 빚 갚음을 하고 있다.

비행기 여행 후엔 탄소발자국 헌금을 한다. 작업하는 북아트에는 많은 종이가 소비되므로 몽골 사막화 방지를 위한 나무심기에 아주 조금 비용을 보탠다. 그리고 재활용품을 활용한 작품을 의무적으로 만든다.

사실은 게으름 때문이지만 세탁물을 분류하면 양이 적어서 세탁기 용량에 맞도록 모아뒀다가 빤다. 수건 몇개 넣고 세탁기 돌리는 짓은 안한다.


우리의 생활은 무의식 중에, 죄의식 없이 많은 환경 파괴를 하고 있다. 그 범위와 행위를 일반인인 나로서는 죄다 열거할 줄도 모르고, 가능하면 안 쓰는 것 외에 지혜로운 소비생활을 잘 알지도 못한다. 그냥 얕은 상식을 살짝 뒤적여 봤을 뿐이다. 눈에 띠는 확실히 나쁜 영향을 넘어서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들도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을 짚어봤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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