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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Sep 01. 2020

슬픈 맥주, 그리고 마림바


슬픈맥주, 그리고 마림바


술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술은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가, 해악을 끼치는가, 술이 우리를 지배하는가, 우리가 술을 지배하는가,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우선 술 취하지 않은 맑은 정신이 필요하다.
술은 즐거운 기분을 북돋워주는 얼쑤! 추임새의역할을 한다. 의인화된 술의 입장으로 보자면 이 추임새의 역할은 땅 짚고 헤엄치기처럼 쉬운 일이다. 술로선 별 수고랄 것도 없이 손쉽게 사람들의 흥취를 돋궈 줄 수 있다.
술은 잊고 싶은 것을 잊게 하는 역할, 고통을 둔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 역할은 의인화된 술의 입장으로 말하자면 아주 난감하고 힘든 일이다. 마시는 사람은 전적으로 술에 의지하지만, 술은 그이의 기대에 부응하기 어렵다. 술은 전심전력으로 마시는 사람을 돕고자 애를 쓰지만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 치료제의 역할은 못하고 다만 몇 시간의 진통제 역할 밖에 못한다. 이것이 술의 능력의 한계이다.
이것은 술 한잔 마시지 않은, 술 근처에도 가지 않은 맑은 정신으로 분석한 술의 역할이다.

창 밖에 비가 내린다. 우울한 유리창은 하염없이 울고있다. 창으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린다. 자, 술을 한 잔 마셔볼까. 애초의 그 맑은 투명성을 잃고 벌써부터 간유리 모양으로 변해버린 유리창의 우울을 위로하기 위해 술을 한 잔 마셔볼까. 효력없음이 입증된 술을 마시느니 차라리 베를렌의 시를 읊는 게 더 나을 지도 모른다.

거리에 조용히 비가 내린다.
- 아르튀르 랭보 -
거리에 비 내리듯
내 마음에 눈물 내린다.
내 마음 속에 스며드는
이 우울함은 무엇이런가?

대지와 지붕에 내리는
부드러운 빗소리여
우울한 마음에 울리는
오 빗소리, 비의 노래여

슬픔으로 멍든 내 마음에
까닭 없이 비는 눈물짓는다.
뭐라고 ! 배반이 아니란 말인가?
이 크낙한 슬픔은 까닭 없는 것.

까닭을 모르는 슬픔이란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통
사랑도 미움도 없지만
내 가슴은 고통으로 미어진다.
---폴 베를렌의 시
「거리에 비 내리듯… (Ilpleure dans mon coeur)」

베를렌의 시는 가라앉을 듯 그러면서도 익사하지 않고 위로 폴짝 뛰어오르는 건반악기 음의 빗소리를 오히려 바닥에 드러누워 버린 첼로 음으로 바꿔놓는다. 그럼 이젠 술을 마셔야지. 무슨 술을 마셔야 하나…
한 때는 사과향이 짙은 리큐어에 맛을 들인 적이 있었다. 술이 체질에 맞지 않는 나는 24도 사과술의 싸한 알코홀 맛보다는끈적한 단맛에 빠져들었다. 달콤함은 언제나 유혹의 맛이 아니던가! 식구들은 대형 슈퍼마켓에 가면 사과술을 찾곤 했다. 단 맛에 빠져 사과술 한 잔 맛있게 마시는 나를 핑계로 각종 술이 진열된 선반을 구경하며 각자가 자기들 취미 대로 입맛다심을 다 알건만, 그래도 식구들은 술 구경을할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사과술을 찾기 위함이라고 둘러댔다.
어느 날인가는 아이들이 시장을 봐오면서 나를 위해 <베일리> 한 병을 사왔다. 아이리쉬 커피 맛이 나는 17도 짜리 술이다. 술맛 모르는 나는 베일리의 구수한 알코홀 맛보다는 좋아하는 커피향과 그 맛을 더 즐겼다.  아, 사과술의 알코홀 맛은 싸아하고, 베일리의 알코홀 맛은 구수하다. 얼마 전부터는 <기네스>의 맛을 알게 되었다. 아일랜드 산 흑맥주다. 막내 아들이 마시는 걸 옆에서 한 모금 얻어마셨더니 그 쌉싸롬한 맛이 일품이라 금방내 흑맥주의 맛에 빠져들게 되었다. 어쩜 그것은 쓰디쓴 맛이었는지도 모른다. 기름진 베이컨 구이와 달걀 프라이를 넣은 샌드위치가 흑맥주의 쓰디쓴 맛을 산뜻한 쌉싸롬함으로바꿔놓았을 수도 있다.

술 마신다는 말은 자주 <음주가무>라는 한 단어로 묶이게 된다. 참 서로서로 잘 어울리는 것끼리짝을 지어 만든 말이다.  <무(舞)>는 나중에 그림으로 그리기로 하고,  <음주(飮酒)>와  <가(歌)>의 어우러짐이나 살펴본다.
분명히 그 술에 그 음악으로 어울리는 것이 있다. 누가 크리스탈 잔에 담긴 황홀한 붉은 색의 와인을 위해 <닐리리야> CD를 오디오에 얹어놓겠는가? 와인도, 꼬냑도, 보드카도, 위스키도, 막걸리도, 소주도 다 어울리는 음악, 노래가 있다. 잘 어울리는 가락이 술의 역할을 도와줌은 분명하다.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의 장면처럼 왁자한 파티에서 맥주잔을 부딪힐 때 실내에 가득찬 <드링킹 송>은 맥주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  맥주로 유명한 독일 뮌헨의 호프브로이 하우스에서 낯 모르는 옆자리 사람들과 어깨동무를 하고 목청껏 부르는 <컨츄리 로드>도 맥주의 흥을 돋군다.
그런데 사실은, 사실은, 그 북적대는 분위기와는 달리 맥주는 참으로 슬픈 술이다.
슬픈 맥주.
맥주의 원료인 호프는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다. 맥주는 암나무 호프의 꽃으로 만든다. 암나무의 <암>은 달콤하고 향긋한 이미지가 연상되고 따뜻한 느낌을주는데 어찌 맥주 맛은 쓴 것일까, 어찌 맥주는 차디 차게 식어야만 제 맛이 나는 것일까. 암나무의 고통이 거기 들어있기 때문이다. 호프는 암, 수나무를 같이 심으면 수정이 일어나 호프의 중요 성분이 감소되므로 맥주를 만들기 위해서 암나무만을 따로 심는다.
고통은 거세당한 수컷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수정의 본능을 빼앗긴 암나무에게도 쓰디쓴 고통이 있다. 맥주는 그렇게 암나무의 쓴 눈물로 빚어진다. 그리고 맥주엔 체온이 없다. 차갑다.
그래서, 이런 사연을 지닌 쓴 맥주, 찬 맥주, 슬픈 맥주엔 앞서 말한 노래들, 떼지어 어깨동무하고 큰소리로 외치며 불러대는 노랫가락보다는 오히려 같은 슬픔을 지닌 가락이 더 어울린다.

마림바. 맥주가 슬픈 술인 것처럼 마림바는 슬픈 악기이다.
막내아들이 짐바브에서 가져온 마림바는 전혀 문명의 손질을 하지 않은 짐바브에 원주민들의 민속 악기이다. 천연 조롱박을 소리통으로 하고 위에는 나무 판을 나무 쐐기로 끼워 만들었다.
마림바의 연주를 들어보았는가? 한마디로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애절함! 그렇다. 마림바의소리는 애절하다. 그리고 멀리 퍼져간다. 원래 짐바브에 원주민들은 마림바를 암나무만을 사용해서 만들었다. 암나무 만이 마림바 특유의 애절한 소리를 낸다. 그리움에 사무친 마림바의 애절한 소리는 어딘가에서 듣고 있을 수나무에게까지 멀리 퍼져나간다.
자, 맥주를 마시며 마림바를통~ 통~ 두드려보자. 수나무를그리워하는 암나무들의 쓰디 쓴 눈물이, 암나무들의 애절한 소리가 서로 어우러져 술 마시는 자에게 엄숙히 말한다. 세상 모두에겐 자기가 감당해야 할 고통이 있느니, 자 내 술을 마셔라, 그 쓴 맛으로 너의 쓰디 쓴 고통을 대신하여라, 자, 내 노래를 들어라, 그 애절함으로 너의 애끓는 마음을 대신하여라!

눈물을 철철 흘리던 유리창은 아직도 젖어있다. 비는 그대로 주룩주룩 내린다. 베를렌의 시 <거리에 비내리듯....>따위는 집어 던진다. 대신 맥주를 마신다. 차고 쓴 맥주를. 그리고 빗소리에 스며드는 마림바의 소리를 듣는다. 아, 슬픈 맥주, 그리고 슬픈 마림바.


-끝-


<행복해지는 약> 수록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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