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전날 (안식일. 안식일 끝난 밤).
아름다운 문학소설
<소설 예수> 1권 운명의 고리
저자 ; 윤석철 출판 ; 나남, 560쪽, 2020/04/22
아름다운 문학 소설
많은 작가들이 예수를 이야기해왔다. 신학책으로, 신앙고백으로, 소설로. 예수는 어떤 작가에 의해 신의 아들이 되었고, 또 다른 작가에 의해 사람의 아들이 되기도 했다. 다시 예수의 이야기를 만난다. <소설 예수>. 독자로서 제일 먼저 ‘이것 기독교 책이야, 소설책이야?’라는 생각이 앞선다. 읽어보면 알게되겠지.
책을 살펴본다. 뒷표지에 <소설 예수> 전5권의 제목이 소개되어있다. 1권, 2권이 함께 출간되었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인 것이다.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책 소개가 흥미를 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꾼 혁명가 예수! 구원의 메시아라는 통념을 깨고 인간 예수의 얼굴을 다시 그리다. ‘나는 구원의 메시아가 아니오!’ 2000년 전, 유대의 해방명절 유월절을 앞두고 예루살렘은 불길한 예감에 휩싸인다. 한밤중 예루살렘 성전과 갈릴리의 분봉왕이 보낸 사자들. 그리고 예루살렘 주둔 로마군 위수대장까지 로마총독 빌라도의 군영으로 찾아와 예수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한편,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이끌고 내려온 예수는 여리고에 머물면서 다음 날 예루살렘 입성을 준비한다. 그가 메시아이기를 기대했던 제자들 앞에서 예수는 뜻밖에 ‘나는 메시아가 아니오’라고 선언하는데…”(책 뒷 표지 글 인용)
소개글을 읽으면 기독교를 아주 벗어난 완전 논픽션은 아닌 것 같다. 기독교 이론을 바탕으로 한, 그러나 작가의 새로운 해석으로 쓰여진 책일 것이다. 예수 얘기라면 뻔한 거 아닌가, 다른 재미있는 책이나 읽자, 이 두꺼운 책을 언제 다 읽나, 더구나 앞으로도 3,4,5권이 이어져 나올텐데, 망설임을 뒤로하고 책을 편다. 첫 구절을 읽는다. 깜짝 놀랄 정도로 매력있는 문장이다. 시작은 독자를 이끌어가는 동력이다.
피 묻은 손을 하늘 한 자락에 쓱 문질러 닦은 듯 저녁노을이 섬뜩했다. 석양을 정면으로 받은 예루살렘 성전은 잘 달궈져 모루 위에 올려놓은 쇳덩어리처럼 붉게 빛났다. 17쪽 첫 시작.
종교적인 관심이 아니더라도 문학적인 호기심이 확 달아오른다. 멋진 문장 아닌가! 무명작가의 글이라고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섬세하고 감성적인 촉촉함과, 묵직한 힘과 속도감을 잘 안배한 문장들에 사로잡히면 이 두꺼운 책은 빠르게 읽힌다.
한 번 더 아들을 가슴에 깊이 안아주어야 한다. 어미는 안다. 자식에게 위험이 닥치는 순간을. 공연히 가슴이 떨리고 울렁거리기 시작하면, 불길한 예감이 슬쩍슬쩍 얼굴을 내비치며 그림자를 남기기 시작하면 세상 모든 어미는 그 때를 안다. 예감이 훌쩍 날아와 가슴에 내려앉으며 날개를 접기 때문이다. 19,20쪽.
이런 글을 읽는데 종교적 성향이 무슨 역할을 한단 말인가. 예수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누구의 이야기라도 독자는 이 어미의 마음에 가까이 닿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예수는 누구인가?’에 대한 한 가지 답을 얻는다. 예수는 한 어미의 아들이구나. 한 어미의 아들 예수.
“얘야! 예수야! 얘야! 내 아들아….”
정신을 차려보면 얼굴에 떨어지던 어머니 눈물이 뜨거웠었다. 아들을 끌어안고 어머니는 소리 죽여 울었다. 갑자기 왜 어머니가 생각나는지 알 수 없다. 돌아보면 참 먼 길 걸어왔다. 이제 되돌아설 수 없는 문턱을 넘는다. 481쪽.
예수의 이야기니까 이 책에서 예수는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살펴본다. 예수는 누구인가?
예수는 큰 힘을 가진 사람이다.
거친 파도에 당당히 맞서는 거대한 힘이 아니라 파도를 잔잔하게 가라앉히는 힘이 예수 안에서 조용히 운동하고 있다. 302쪽.
예수는 폭력보다 더 깊고 큰 무엇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이미 폭력으로 꺾을 수 없는 세상에 들어간 사람, 폭력보다 더 깊고 큰 무엇을 가진 사람이다. 제국이 가진 것이 폭력뿐이라면 제국도 그를 멈출 수 없으리라고 느껴진다. 317쪽.
예수는 더러움과 죄의 구분을 넘어선 사람이다.
가족들도 만져주지 않던 상처, 문둥병이라 부르는 상처를 만져주고 쓰다듬어줄 때, 병자들은 눈물을 흘렸다. ~~~예수가 무릎 꿇고 옆에 앉아 상처를 씻어주고 싸매주고 위로할 때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다정한 음성으로 위로하고 기도하는 예수는 더러움과 죄의 구분을 넘어선 사람이다. 416쪽.
예수는 고독한 사람이다.
그 여러 제자들 중 오직 마리아만 안다는 말인가? ~~~저들은 손에 쥐여 주어도 무엇인지 모르고, 눈앞에 들어 보여주어도 못 보고, 입안에 넣어주어도 삼킬 줄을 몰랐다. 서로 다른 공간에 정신이 머물러 있고, 다른 시간 속에 몸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는 그때까지 철저하게 혼자일 수밖에 없다. 534쪽.
예수가 누구인지 묻는 말에 예수는 이렇게 답한다. 자신이 누구라는 답이 아닌 자신이 무엇인지를 답하고 있다.
“선생님은 누구이십니까?”
“들과 밭, 하늘 아래 온 땅에 심어지는 씨앗이요. 때로는 씨를 뿌리는 사람이기도 하고…” 549쪽
이 소설은 두껍지만 한 번 손에 잡으면 내려놓기 힘든 이야기의 힘이 있다. 단단한 서사 구조를 매력적인 문장들이 잘 이끌어가고 있다. 먼 옛날이라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고, 먼 나라라는 공간이 여기로 다가와 그 시간과 공간이 빚어내는 문화는 어찌 그리도 우리네 감성을 닮아있는지 놀랍다. 그가 살던 마을의 정서가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피던 우리 마을의 정서와 똑같다.
이 책을 기독교인들만의 책으로 지레 짐작한다면 참 안타까운 일이다. <소설 예수>는 내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이 나를 끌고 달려가는 참 아름다운 문학책이다.
<소설 예수> 1권 “운명의 고리” 줄거리 요약.
예루살렘 입성하기 전날(안식일, 안식일 끝난 밤).
로마황제 티베리우스 19년, 4월(니산월 8일), 유대의 유월절 명절을 기해 로마총독 빌라도가 주둔지 가에샤라(지중해 연안에 헤롯왕이 세웠던 항구도시)에서 군대를 이끌고 유대의 도성 예루살렘으로 이동한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히브리를 야훼가 해방한 사건을 기념하는 유월절은 로마제국 통치아래 살아가는 유대인들이 새로운 해방을 꿈꾸는 시기다.
갈릴리에서 제자무리를 이끌고 내려온 예수도 여리고에 이르러 다음 날 예루살렘 입성을 준비한다. 예수의 정신적 쌍둥이 히스기야는 <의적 하얀리본>이라 불리는 무리를 이끌고 유월절 봉기를 계획한다. 거사에 예수를 끌어들이려고 여리고로 그를 찾아가 설득한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자마자 움막마을 화재현장에서 체포되어 성전 지하 감옥에 갇힌다.
예루살렘에서 한나절 거리에 도달한 총독 빌라도는 군영을 설치하고 야영한다. 성전 대제사장 가야바가 보낸 사자 마티아스, 갈릴리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가 보낸 알렉산더, 예루살렘 로마군 위수대장으로부터 각각 보고를 받는다. 그들은 한결같이 유월절 명절을 기해 그 기간에 갈릴리 사람 예수가 일으킬 위험한 일들을 경고한다.
그날 밤, 예루살렘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에도 성전 지도부가 모여 예수와 제자, 그리고 별도로 봉기를 꾸미는 의적 <하얀 리본>에 대해 상의한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아들에게 커다란 고난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감하고, 작은 아들 야고보를 재촉하여 예루살렘 길을 재촉한다.
명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올라온 갈릴리 분봉왕 안티파스는 성전과 로마군의 힘을 빌어 예수를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매일 밤 유대 제사장들의 딸들을 침실에 끌어들여 쾌락을 즐긴다. 알렉산더는 갈리리에서 유대로 몰아낸 예수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 올가미들을 준비한다.
예루살렘에 사는 백성들은 알 수 없는 두려운 예감에 휩싸인다. 힐렐파 바리새 지도부는 랍비 시몬의 집에 모여 갈릴리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야기할 소요를 예상하며 지방에서 올라온 유대인들을 보호할지 대책을 세운다.
여리고로 마리아를 찾아온 알렉산더의 부하가 마리아에게 즉시 일행을 떠나 갈릴리로 돌아갈 것을 종용한다.
소설의 배경과 등장인물
<소설 예수>는 한 권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시작하는 1권에서 등장인물들을 알아두면 앞으로 독서에 도움이 된다. 이야기의 전체적인 배경과 등장인물들을 소개한다.
소설은 예수를 중심으로 동시대(BC.150~AD.33)의 정치 경제 사회 역사 지리적 상황을 반영한다. 예수의 출생 시기는 BC.5~4의 겨울, 처형은 AD.33년 4월(AD.30년 학설의 모순). 예수의 나이 37세. 예수가 세례자 요한의 제자가 된 시기 AD.29년(티베리우스 황제 15년).
소설은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를 발견해 드러낸다. 로마제국과 이스라엘(유대, 갈릴리) 정치체제 아래 살아가면서 “새로운 해방”을 통하여 “하느님 나라”를 이루려는 “참사람 예수”를 소설 속에 살려냄. 1세기 지중해 연안이라는 social context(social world)속에서 예수의 걸음을 21세기에 비춘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역사적 인물(예수, 부모 및 형제 자매, 제자, 예루살렘 성전체제의 지배자, 로마제국 통치자, 유대 및 갈릴리 지방의 역사적 인물. 특히 예수의 여제자 막달라 마리아의 역할을 주목)과 창조한 허구적 인물(히스기야, 알렉산더, 아레니우스, 느나헴 등)들 간에 얽힌 인연, 애증 및 갈등이 펼쳐진다.
각 인물의 처함 위치에 따라 다른 시각으로 시대와 사건을 바라본다.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분으로 인물을 평가할 수 없다. 소설은 등장 인물 중 누구도 미워할 수 없고 그들 모두에게 나름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음을 보여준다.
<소설 예수>의 작가 윤석철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아흐레 전, 충청남도 공주, 계룡산 밑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면서 학내 이념 동아리 활동으로 날을 보냈다. 사회과학적 접근에 눈뜬 이후, 사람이 더불어 살아가는 일에 대해 끊임없이 물었다. 41년째 사업을 운영하고 있고, 2005년부터 <한국일보>와 <hankooki.com>에 2년여 동안 매주 기명칼럼을 연재했다. 2012년 진보적 기독교 신학자, 목회자 등과 <내게 찾아온 은총>이라는 신앙고백서를 동동 저술했다.” 책날개 인용.
다음 글은 <소설 예수> 2권 “세상의 배꼽”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