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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Sep 11. 2020

장 밥티스트 카미유 코로 -들에서 책읽는 여자

비전문가의 그림 감상

 감상鑑賞이 아닌 감상感想입니다.


Jean-Baptiste Camille Corot, Woman Reading in a Landscape,



나는 문학책 읽기를 좋아한다.  소설, 수필, 시, 희곡, 다 재미있고 좋아한다. 그러나 문학이 독서의 절대적 고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며, 책 속에서 영혼의 양식을 얻을 수 있다고도 하며 독서를 장려하고 있다. 그것은 책이 우리의 생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뜻일 게다. 우리는 길을 알아야하고, 양식을 먹어야 삶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각자의 필요에 의한 선택이다. 고속도로를 질주해야되는 사람이 있고, 한적한 오솔길을 사색하며 걷는 사람이 있으니, 그 성격에 따라서 필요한 길을 택하면 된다.

비타민 A를 필요로하는 사람, D를 필요로 하는 사람... 칼슘이 필요한 사람, 요드가 필요한 사람... 각자 자신에게 필요한 영양소를 선택해서 섭취하는 것처럼.

정치하는 사람이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보다는 마키야벨리의  '군주론'을 선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닌가. "이 책은 꼭 읽어야 해." 이런 권유는 언어 폭력이다. 저녁 반찬이 궁금한 주부가 앙드레지드의 '좁은 문'보다는 모 잡지사의 요리 월간지를 집어드는 것이 자연스러운 책읽기이다.


이렇게 고른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정독,속독, 남독, 다독... 수세기를 거쳐오면서도 그치지 않은 논쟁이지만 결론은 정답이 없다. 책의 종류가 많은만큼 독자들의 성격도 다 다르니까. 각자의 성격에 따른 독서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내가 문학작품을 주로 읽는 이유는 우리의 삶속에서 진행되는 현실 뿐 아니라 현실에 없는 상상의 세계도 구경하고 싶은 마음에서, 내가 직접 경험하지 못했던 여러 갈래의 세상을 간접 경험하고자,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을 미리 당겨서 이루어볼 수 있는 가능성의 매력, 내가 이룰 수 없는 것을 주인공을 통해 이루는 대리만족, 현생에서 불가능한 완벽한 인간의 창조를 엿볼 수 있는 점, 세상에선 천덕꾸러기 소외자가 작품 속에선 주인공으로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할 수도 있다는 것, 불가해한 모든 일들이 환상적으로 펼쳐져도 전혀 불안하지 않고 오히려 불가항력으로 그 속에 빨려들어가는 쾌감... 뭐, 이런 것들이 내 취향에 맞아서 나는 문학작품을 좋아한다.

꿈을 그릴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은 또 그 사람 나름대로 취향에 따라, 필요에 따라 자신이 선택한 책을 읽으면 될 것이다.

내가 보라색 스웨터를 입는다고 내 친구에게 자꾸만 너도 보라색 스웨터를 입으라고 강요 할 수는 없다. 그렇치만, 내가 그 보라색을 너무 예쁘게 생각해서 내 친구에게 너도 한번 입어보라고 권할 수는 있다. 그럴때 내 친구가 그럼 한번 나도 입어볼까,하고 응해줄 수도 있을테고. 전혀 마음에 당기지 않는다고 거부할 수도 있을것이다.

그러면 그 뿐...


장바티스트카미유 코로- 들에서 책읽는 여자, 프라고나르-책읽는 소녀


사진출처 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435991  

Jean-Baptiste Camille Corot,  Woman Reading in a Landscape, 1869 Oil on canvas,

21 3/8x 14 3/4 in.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마음도 편하고 몸도 편하고, 느긋하니 행복한 시간을 즐기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창가의 흔들의자에 앉아 베란다의 초록이들과 눈맞춤하는 시간도 참 평화로운 시간이다. 편안한 소파에 앉아 발 받침에 두다리를 쭈욱 뻗어 올려놓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있어도 무아지경이다.

나의 자세는 고상하고 우아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품위없이 침대위에 구겨진 자세로 드러누워서 뒹굴거리며 소설을 읽는다.
그림속의 책읽는 여자들은 어쩜 그리도 우아한 자세로 책을 읽는지, 내 자세가 부끄럽기까지 하다.


위의 사진, 프랑스의 바르비종파 화가 코로의 그림을 본다. 바르비종의 풍경은 화가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밀레가 그곳에 살며 <만종>을 그린 곳으로 유명하다. 루소나 코로도 바르비종의 아름다운 풍경을 많이 그렸다.

주로 풍경을 그려오던 코로가 만년에는 인물에 눈을 돌렸는데 60세를 넘기니 사람을 보는 노인의 지혜가 생긴 모양이다.
<들에서 책읽는 여자>를 보면 인물이 마치 풍경화의 한 부분처럼 자연속에 잘 조화되어 있다. 인물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코로의 그림이다.
여자는 독서 삼매경에 빠진 것일까, 책을 읽다가 잠시 다른 사색에 빠진 것일까.
여인의 눈을 총기 가득한 영롱한 눈동자로 그리지 않고 검은 음영으로 처리한 것이 그윽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여인의 풍만한 가슴선이 가리워져 있어도 이 여인에게선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알순없지만, 이 여인이 읽는 책의 내용도 여인의 분위기처럼 우아하고 고상한 내용일 것같다.


Jean Honore Fragonard,  The Reader,

사진출처 https://www.nga.gov/collection/highlights/fragonard-young-girl-reading.html

Jean Honore Fragonard,  The Reader, c. 1770-72 Oil on canvas, 82 x 65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프라고나르는 코로보다 백여년 전 먼저 <책읽는 소녀>를 그렸다.

그의 그림에선 무엇보다 먼저 소녀의 노란색 옷 색깔이 보는 이의 마음을 환하게 해준다. 첫 눈에 강하게 시선을사로잡는 밝은 노랑색 때문에 소녀가 읽는 책이 진지한 인문서가 아닐 거라는 짐작까지 하게 된다.
코로의 그림을 보면 들판에서 책 읽는 여자를 우연히 발견하고, 그녀의 조용한 분위기에 사로잡혀 화가가 붓을 든 느낌이다.
그러나 프라고나르의 그림에선 모델에게 책 읽는 모습을 연출시킨 느낌이 든다. 책을 든 손에 한껏 멋을 부린 모습이나, 단정히 허리를 펴고 앉은 모습이 왠지 자연스럽지 않고 작위적인 모습이다. 이 소녀는 책 읽기에 열중한 것 같지 않다. 책 읽기보다는 자기를 그리고 있는 화가의 시선에 더 신경을 쓰고 있을 것 같다.

프랑스 혁명 이전에 상류사회의 라이프 스타일은 문화를 중요하게 여겼다. 이 무렵에  볼테르의 캉디드 같은 작은 책들이 출판되어 엘리트들이 손에 들고 다니며 읽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내가 스무 살 이전에 이 두 그림을 보았다면 어쩌면 프라고나르의 소녀를 더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노년의 나이에 보는 이 그림들. 웬지 코로의 여인에게 더 마음이 끌린다. 인물이 강조되는 것보다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미술사적인 평과 그림 자체의 평가는 차치하고 그림이 내게 주는 느낌은 순전히 나 개인적인 취향에 따름이다.

그의 그림에선 무엇보다 먼저 소녀의 노란색 옷 색깔이 보는 이의 마음을 환하게 해준다. 첫 눈에 강하게 시선을 사로잡는 밝은 노랑색 때문에 소녀가 읽는 책이 진지한 인문서가 아닐 거라는 짐작까지 하게 된다.
코로의 그림을 보면 들판에서 책 읽는 여자를 우연히 발견하고, 그녀의 조용한 분위기에 사로잡혀 화가가 붓을 든 느낌이다.


여기저기 뒤적거리며 찾아봐도 나처럼 침대에 마구 흩어진 자세로 누워서 책 읽는 여자의 그림은없다. 나도 우아한 자세로 바꿔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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