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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Oct 28. 2020

에드워드 호퍼 - 바닷가의 방

비전문가의 그림 감상

감상鑑賞이 아닌 감상感想입니다.


Edward Hopper - Rooms by the Sea


가을 햇살이 좋다.

시인 릴케는  "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라고 노래했는데, 나도 그렇게 간구한다.

이 햇빛과 햇볕을 며칠만 더 주세요.

햇빛은 우리의 삶을 유지하는데 절대적 영향을 끼친다.  육체적인 생명은 물론, 정신 건강까지도 햇빛이 좌지우지한다. 우울증 환자를 치료하는데  "가정용 일광 치료기"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만큼 햇빛은 우리 삶의 질을 높여준다.


수많은 화가들이 햇빛을 그렸다. 햇빛이 어떤 형태로 정해져있는 것이 아닌데도 우리는 그림 속에서 햇빛을 볼 수 있다. 햇빛 그림을 하나 살펴본다.


에드워드 호퍼는 주로 방(room)에 관한 그림, 도시인의 고독을 주제로 한 그림들을 많이 그렸다. 그의 그림에는 톡쏘는 환한 빛이 많이 보이는데 그 빛이 너무 밝아 섬뜩하니 차가운 느낌을 주기도 한다.


미국 예일 대학에 있는 이 그림은 내가 직접 감상하지는 못했다. 사진과 인터넷 이미지에서만 봤을 뿐이다. 원화의 감동은 없었지만 이 빛은 내 가슴 속으로 듬뿍 들어와 오래도록 머물었다. 내가 햇빛을 절실히 필요로 하던 런던 시절에 봤던 그림이기 때문이리라. 나는 밝은 햇빛, 따뜻한 햇빛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그림은 빛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도 따뜻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빛은 있으되 볕은 없었다.

한 발 내디디면 바다로 풍덩 빠질 것같은 두려움도 슬쩍 일어났다. 멋진 다이빙을 할 수 있겠다는 설렘도 일어났다. 초현실적이고 신비로운 느낌이다.


                               https://artgallery.yale.edu/collections/objects/52939

Hopper, Edward
1951, Oil on canvas, 29 x 40 inches
Yale University Art Gallery, New Haven, Connecticut


이 그림은 <빛>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를 설명해주는 것 같다.   화가가 어떻게 이런 구도를 생각해냈는지 정말 놀랍다. 에드워드 호퍼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스투디오를 지었다. (미국 메사추츠주 코드 곶) 바다를 내다볼 수 있는 스투디오였다.

이 그림에는 원래 <The jumping off place.>라는 부제가 달려있었는데 지인들이 그 제목은 좀 해로운 영향을 주는 것같다고 지적하자 호퍼는 부제를 지워버렸다고 한다. "Jumping"은 그림을 본 첫 순간에 연상되던 단어인데, 역시 그런 부제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빛은 지구상 어디에나 다 있지만, 특히 바닷가엔 빛이 더욱 강렬하지 않은가. 화가가 그 바닷가의 빛을 잡아내면서, 백사장에 쏟아지는 빛을 낚은 것이 아니라, 바닷물 위에 번쩍이는 빛을 떠온 것이 아니라, 놀랍게도 이 방을 택했다.
그런데 이렇게 쏟아지는 빛이 왜 따뜻해보이지 않을까?  빈벽을 비추고 있기 때문일는지…  빈 방에 빛만 있어도 꽉찬 느낌이 들텐데, 이상하게도 이 방은 텅빈 느낌이다.
대공황과 전쟁이 휩쓸고 간 도시를 화폭에 옮긴 화가 호퍼에 대한 사전지식 때문인 것 같다. 사전 지식이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정답을 낼 수는 없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사람들은 진리처럼 믿고 있지만, 사실은 아는 것이 훼방을 놓는 겨우도 많다.
화가에 대하여 전혀 아무것도 모른 채 그림을 보았을 때 받는 느낌과, 화가에 대해 잘 알고난 후 본 그림에서 받는 느낌은 다르다.
이렇게 되면 그림을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지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어쩜 내가 쓰는 이런 글들이 그림이 가슴속으로 담박 들어와 앉는 것을 훼방하는 건지도 모른다.  머리로 이해하도록 부추기는 것일지도…

그런 갈등은 접어두고, 여기서 무엇에 홀린 듯 빛을 실컷 구경하자. 텅 빈 벽을 한참 응시하고 있노라면 거기에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 나타나 보일 것이다. 마음이 검은 사람은 못 볼 거라고 하면 너무 강한 협박일까?

여기서 빛을 보는 연습을 해두면 나중엔 작은 잎새 사이에 있는 빛이든지, 구름 사이로 창살처럼 가늘게 쏟아지는 빛이든지, 깜깜한 날 슬쩍 내비친 빛이든지, 다 찾아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햇빛이 있어야 살 수 있는 것처럼, 빛을 볼 수 있어야 그림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빛이 한 가득 담겨있는 그림을 보면서 그림과 빛의 관계를 잘 생각해보자. 나중에 다른 빛을 보기 위해서. 빛을 눈으로 볼 뿐만 아니라 온 몸으로 볕을 듬뿍 받아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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