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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Oct 12. 2020

프란즈 마르크 - 푸른 말 1

비전문가의 그림감상

감상鑑賞이 아닌 감상感想입니다.


Marc Franz, Blue Horse I (Blaues Pferd I)


우리집엔 말(horse)이 많다.

두 아들들이 어렸을 때부터 모아왔던 말들이 선반 여기저기 진열돼 있다. 사기, 유리, 크리스탈, 나무, 금속, 석고로 만든 말들이 그 재질이 다양함같이 모양 또한 다양한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다.
곧 땅을 박차고 힘차게 뛰어나갈 자세에서부터 초원의 쉼터에서 평화롭게 휴식을 취하는 자세까지 각양각색의 말들이다. 그 하나 하나에는 여행지의 추억이 함께 묻어있고, 선물한 사람들의 정성도 들어있고, 이런저런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베니스에서 산 유리 말은 못생겼다. 그래도 귀엽긴 하다. 아무도 만져보지 않고 예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그 못생긴 말을 산 이유이다. 다른 누구도 사지 않을 것 같아서 내가 사기로 했다.


윗 선반 왼쪽이 베니스에서 산 유리 말.


큰 아들이 어렸을 때 일주일에 한 번 씩 소아과에 알레르기 치료 주사를 맞으러 다녔었다. 병원은 시장을 통과해서 걸어들어가는 곳이었다. 주사를 맞고 돌아올 때는 이것저것 식료품을 산다. 재래시장인데 좌판을 벌이고 앉아있는 아주머니들이 여럿 있었다.

큰 아들은 애호박을 사자고 했다. 볼품없는 호박 몇개가 놓여있었다. 사고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러잖아도 나는 물건 고를 줄도 모르고 제대로 살 줄도 모른다고(채소, 과일) 어머니께 자주 트집을 잡히곤 하였는데 그 못난 호박을 사라니. 큰 아들을 살짝 끌고 자리를 옮겨 "저거 못생겼는데 사가면 할머니한테 엄마가 또 혼나."라고 말했다. 그래도 아들은 그걸 사자고 했다. "아무도 안 사가잖아, 그러니까 엄마가 사요. 할머니한테는 내가 졸라서 샀다고 하면 되잖아요."

이 때 아들이 한 말이 평생을 두고 가끔가끔 생각이 나서 나는 엉뚱한 물건을 살 때가 있다. (아들, 이 어미가 너만큼 착하지 않아서야 되겠느냐.) 베니스에서 속에 금가루(가짜)가 가득 든 못생긴 유리 말을 산 것도 이런 옛 일이 내 마음을 움직여서였다.




말을 그린 그림들을 살펴본다.

특히 생각나는 말 한 마리가 있으니 바로 프란즈 마르크가 그린 <푸른 말 1>이다.

프란즈 마르크는 노란 말, 빨간 말, 파란 말, 여러 마리의 말, 두 마리의 말, 한 마리의 말, 참으로 많은 말들을 그렸다. 그 많은 말 중에 나는 <푸른 말1>을 좋아한다.

https://www.lenbachhaus.de/entdecken/sammlung-online/detail/blaues-pferd-i-30019621

Marc Franz, Blue Horse I (Blaues Pferd I)
1911, Oil on canvas, 112.5 x 84.5 cm
Stadtische Galerie im Lenbachhaus, Munich


뮌헨의 렌바흐 하우스에서 그 그림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베니스에서 구입한 유리제품의 말과 이미지가 같기 때문이기도 하다. 날렵하지도 못하고, 잘 생기지도 못한, 별로 멋이 없는 말, 수줍어하기도 하고.

서부 영화에서부터 숱한 옛날 전쟁 영화를 보아온 우리에게 말이라면 활력있고 날렵한 준마가 자연스레 떠오르지만, 동화에서처럼 멋진 왕자가 탄 늘씬한 백마도 떠오르지만, 프란즈 마르크의 말들은 모두가 순하디 순한 모습이다.
이 그림을 들여다 보노라면 말이 주는 동적인 힘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신비롭게도 평화로움을 느끼게 된다. 색조는 칸딘스키의 것과 같지만, 선과 전체적인 이미지는 프란즈 마르크의 독특한 평화가 깃들어있다. 자연에서하늘의 평화를 추구하던 마르크의 정신이 그의 그림 마다 담겨있기 때문이리라.
푸른 하늘, 붉은 땅, 노란 벌판, 모두가 둥글둥글 부드러운 느낌을 준다. 왼쪽에 치우친 말의 무게가 버거운 화폭에 균형이라도 잡듯이 오른쪽에 싱싱하게 버티고 있는 짙은 녹색 식물은 그 색깔만큼이나 강한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풀잎이 아주 조금만 더 흐린 색깔이었다면 이 그림의 균형은 깨어질 것이다.
둔하게 접힌 목주름으로 오동통한 귀여움까지 느껴지는 말의 얼굴이 수줍어 보임은 얌전히 감은 눈의 속눈섭때문일까? 바짝 치켜세운 귀는 하나만 보이니 마치 유니콘 같은 신비로움이 있다.

매스컴에서 말의 해마다 빼놓지 않고 내놓는 뉴스엔 말띠 여자가 말괄량이이고 팔자가 세다고 말띠 해엔 딸 낳을까 무서워서 아기를 안 낳는단다. 이 그림의 말처럼 얌전하고 수줍어하는 말, 우리에게 평화로움을 주는 귀여운 말이라면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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