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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Jun 08. 2020

애프리, 마지막을 못 지켰구나


애프리, 너의 마지막을  지켰구나.


 털이 곱슬곱슬한 애완견 푸들을 키웠었다.

깔끔하신 어머니는 절대로 개는 못 키운다고 하면서 펄쩍 뛰셨다. 그러나 고3짜리 딸을 남겨두고 두 아들을 데리고 외국으로 나가는 나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어머니를 설득하고 딸을 달래는 수단으로 사랑을 나눌 애완견을 집으로 데려왔다. 그 개 한 마리를 안겨주고 나는 매정하게 어머니와 딸의 곁을 떠나 멀리 외국으로 나갔다. 여섯 명이던 식구가 반으로 나뉘어 셋은 서울에 남고 셋은 독일로 갔다.


 개는 살구빛의 아름다운 털을 가지고 있었다. 작명에 고심을 하던 우리들이 나누었던 이야기. 살구라고 할까? 아니 뜻은 다르지만 그래도 발음이 살구인데 개한테 살구(殺拘)는 너무 한 거 아니야? 그럼 영어 애프리콧(apricot)으로 하자. 아니 독일어로 아프리코제는 어때? 애프리콧이나 아프리코제나 너무 길다. 그냥 단축해서 하자. 그런데 독일어는 안되겠다. ‘아프리’는 안좋지, 자꾸 아프면 어떡해. 그러면 그냥 ‘애프리’로 하자. 이렇게우리집 곱슬머리 강아지는 ‘애프리’가 되었다.


개라면 펄쩍 뛰시던 어머니는 애프리를 무릎에 앉히고 쓰다듬고 때를 맞추어 밥을 주었다. 두 동생과 엄마가 빠져나간 집에서 딸은 애프리와 중얼거리며 대화를 나눴다. 그때만해도 화상통화가 일반화되지 않았을 때라 서울에서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인화해서 독일로 가져와야만 애프리를 볼 수 있었다. ‘본다’는 시각적인 개념은 사진으로 이룰수 있지만, 안아주고 싶고 쓰다듬고 만지고 싶은 사랑의 본능은 사진으로 채울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사람이 외로운 것처럼 애프리도 외로움을 탔나보다. 신문을 읽고 있으면 신문지를 끌어내려 그 위에 앉아버리고, 전화통화를 하면 저도 캉캉 짖으며 소리를 냈다. 남편과 통화중에 애프리가 짖는 소리가 나면 한창 뭐라고 말하고 있는 남편에게 나는 “어! 뭔 개소리?” 이렇게 무심코 말을 한다. 깜짝놀란 남편이 “개소리라니?” 소리가 좀 높아진다.“응, 아니 애프리 짖는 소리 말이야.” 이런우리들의 통화내용은 재미로 가끔씩 되풀이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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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리, 실물은 사진보다 털색깔이 더 붉음


애프리는 조금 어리숙했다. 띨띨했다. 고3 수험생인 딸도 마음이 여려서 애프리를 엄하게 다스리지 못했고, 어머니도 개를 어떻게 가르쳐야할 지 모르셨다. 아이를 여럿 길러본경험은 있어도 개를 길러본 경험은 없으신 어머니니까.

배변용 신문지를 깔아놓아 두었는데 애프리는 얼른 신문지쪽으로 조르르 달려가서 신문지 위에 몸을 단짝 올려놓고 엉덩이는 신문지 밖으로 향한 채 볼일을 보는 것이다. 늘 그랬다.

그렇게 띨띨한 애프리지만 가족들의 사랑은 독차지했다. 보살피는 손길이 바빴다. 정기적으로 심장 사상충 약을 먹여야 했고, 정기적인 목욕과 발톱깎기와, 일년에 두 번은 이빨 스케일링을 해야했고, 게다가 무좀까지 걸렸었다. 치질 수술까지도 했다. 발목 골절 때문에 철심을 박는 수술도 했다. 이렇게 손이 많이 갔다. 나는 일년에 몇 번 집에 다니러 오는데 애프리는 나를 잘 따랐다. 내가 목욕도 시켜주고 밥도 맡아서 주고, 배변용지 밖에다 쉬를 했다고 혼내지도 않으니까 나를 잘 따랐다. 귀국하여 함께 산 세월도 몇 년은 된다. 자기 자리를 놔두고 내침대 밑에서 잠을 자는 날도 많았다.


작은 아들을 기숙사에 입주시키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애프리는 원래 딸 때문에 입양했고, 애프리의 보호자는 딸이었지만나는 결혼해서 새 살림을 시작하는 딸에게 애프리를 보내지 않았다. 어머니도 애프리와 정이 듬뿍 들어서 딸이 애프리를 데려가는 걸 원치 않으셨다. 그렇게 애프리와 함께 살던 어느 해 가을, 독일에 여행중에 귀국해서 일하고 있던 아들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애프리가 이상하다는 것이다. 밥을 먹기 위해 사는 것처럼 먹는 것을 좋아하는 애프리가 밥도 잘 안 먹고 시름시름 아프단다.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특별한 병이 있는 것도 아니란다. 그때 애프리 나이 13세. 병원에 다녀온 후 애프리는 집안 이구석 저 구석을 두루두루 힘겹게 훑어보고 안방 내 침대 밑으로 들어갔단다. 잠시 머물다가 다시 나온 애프리를 어머니가 안았다. 나중에 얘기를 들으니 아들이 어머니에게 다급히 이렇게 말을 했단다. “할머니, 애프리 죽으려나봐 어서 기도좀 해봐. 어떡해…”


애프리는 그날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작은올케(아들에겐 외숙모)와 아들이 애프리를 화장하고, 애프리는 13년동안 함께 살던 우리곁을 떠났다. 마지막으로내 침대 밑으로 잠시 들어갔다 나왔다는 말에 아직도 가슴이 아리다. 끝내 나를 못보고 떠난 애프리가가끔 그립다.

애프리가 떠난 후 만든 북아트, 죽으면 별이 된다는 뜻으로 형태는 별 모양으로, 신문지가 배변장소였으므로 낡은 신문지로 상자를 만들어 책을 넣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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