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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Jun 25. 2020

나무에 대한 기억

나무에 대한 기억 


지금은 입산 금지된 계룡산 속 숲에 파묻힌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 숱한 나무들과 친구하며 놀았는데 나무에게 이름을 묻지도 않았고, 이름을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나무 곁을 떠나 도시에서 사는 동안 옛 친구들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아주 어려서, 초등학교 입학 전이니까 여섯 살 이전의 기억이다. 나무를 껴안고 맴돌던 기억이 난다.

나무를 안았는데 두 손을 맞잡을 수 없었다. 손을 맞잡기 위해, 왼 손으로 나무를 꼭 안고 오른 손을 벌려 왼쪽으로 마구 돌았다. 두손은 만나지 않았다.

다시 반대로 오른 손을 만나기 위해 왼손을 벌려 오른 쪽으로 돌았다. 아무리 돌아도 왼손과 오른손은 만나지 않았다. 그렇게 나무를 껴안고 맴돌며 지내는 날들이 많았다. 그 때 한 아름이 넘던 나무들을 지금도 나는 품을 수 없다. 내품보다 나무는 더 많이 자랐기 때문이다.


일년에 한 번 쯤은 그 곳을 찾아가지만 입산금지 팻말이 가로막아 살던 집에는 갈 수 없다. 집이 그대로 폐허가 된 채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아마 아주 오래 전에 폐가가 되어 흉물스럽다고 헐어버렸을 것 같다.

하루 종일 친구가 되어 놀아주던 나무들도 지금은 어느 나무들인지 알아볼 수 없다.

산으로 들어오는 긴 길을 따라 벚나무들이 주욱 늘어서 있고, 절간엔 감나무가 많다. 껴안고 맴돌았던 나무들은 아마 벚나무들이었을 것이다.

내가 나무에게 들려준,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무가 들어준 나의 숱한 이야기들은 나이테 속에 파묻혀 새어 나오지 않는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들을 수 없다. 다만 내 친구가 되었던 나무만이 나의 이야기를 듬직한 기둥 안에 품고 있다.

그 친구를 찾고자 기웃기웃 한창 서성이며 나무들 곁을 맴돌면 그가 나를 먼저 알아보고 켜켜이 덮인 나이테 속에서 옛 이야기들을 꺼내어 들려준다.

그 이야기라는 것이 제대로 된 말도 아니고, 토막토막 끊어진 외마디 말들이지만 내겐 무엇보다도 소중한 보물이다.  세상에 떠도는 기교 넘치는 환락의 언어들에 신물이 날 즈음, 친구가 꺼내 준 말도 안 되는 나의 유아어들은 나에게 몽환적인 행복을 선물해준다.


몽환적인 행복 -그것은 참 신비로운 꿈이다.

시간여행이 자유로운 꿈이다. 옛날과 지금의 분별이 없는 시간여행. 그 여행 중에는 미래도 살짝 끼어든다. 길고 짧음을 제대로 느낄수 없는 시간여행. 눈 깜짝할 찰나에 수 십 년이 흐르고, 수십 년이 흘렀는데 겨우 한 순간이 지났을 뿐인 그런 시간여행의 꿈이다.


꿈을 꾸는 동안 친구는 싱싱한 수액을 내게 수혈해주고 나는 새로운 사람으로 깨어난다. 덕지덕지낀 세상의 때가 벗어진 몸, 무겁게 달고 다니던 욕심 보따리를 내려놓은 가벼움,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희망, 그렇게 나는 다시 태어난다.

내 친구 나무의 도움으로.

<행복해지는 약> 수록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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