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이든 “글”을 써온지는 꽤 오래되었다.
어려서 검사받기 위해 쓴 일기에서부터 길고 긴 세월동안 쓴 이런저런 편지들까지 다 합쳐서 연륜을 따지자면 수십년이 되었다. 심지어는 이런 글까지 써봤다. 남편이 예비군 훈련을 안받아서 주민센터(동사무소)에 사유서를 써낸 일도 있다. “무식의 소치로...” 이렇게 시작되는 글을 내가 쓰다니. 무식하다고 해야 벌금이 덜 나온다는 바람에. 연애편지가 감성 폭발, 화려한 수사의 향연인데 그것도 참 많이 해 본 짓이다.
감히 내 일기장에도 솔직히 쓸 수 없었던 속깊이 박혀있는 생각들까지 가끔은 살짝 ‘글’이라는 이름을 뒤집어쓰고 나타났다가 재빨리 사라진 적도 많이 있었다. 풋내가 싱그러워서 좋다는 평도 받아봤고, 글쓰는 법을 전혀 모르고 끄적인 낙서라는 평도 받아봤다. 누가 어떤 평을 하든지 나는 별로 흔들리지 않고 내 스타일의 글을 써왔다. 조언은 받아들여야지 무시하는 것이 아닌데, 나는 글쓰기에 대한 조언들을 그냥 흘려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아직도이 모양이다. 때로는 독자에게 보여주려고, 때로는 독백으로 내 멋대로 써왔다.
젊은 시절 몇 군데 공모전에 응모도 해보았지만 당선된 적은 없었다. (자랑할만하지 못한 소소한 상들은 몇 번 받기는 했었다.) 그럴 때마다 당선작들을 정독하며 내가 무엇이 부족한지 깨달았지만 그 깨달음이 내 글쓰기를 향상시키지는 못했다. 나는 참 나쁜 방향으로 고집이 세다. 뺄 것은 빼고, 고칠 것은 고쳐야지, 어쩌자고 그 어설픈 글들을 그냥 방치해둔단 말인가.
글에 대한 글을 쓰자면 중요한 '글감'에 대해서 빼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글이 내 공책 안에서 숨죽이고 숨어있느냐, 타인에게 드러내놓고 읽히기를 기다리느냐에 따라 글감도 쓰는 방법도 달라질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집에 칩거하고 있는 동안은 편한 실내복을 입고 있는데 사람들 앞에 나아갈 때는 단정하고 멋진 차림으로 치장을 하고 외출한다. 글도 마찬가지 아닐까. 내 노트 안에 있을 때와 발표할 때의 모양새는 완전히 다르게 될 것이다.
나의 공책에는 <안경>에 대해, 그것을 처음 쓰게 된 동기와 이력, 디자인, 기타 슬프고 괴롭고 화딱지나던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 이야기들을 다 글감삼아 발표한다면 누가 무슨 재미로 읽겠는가. 단 한 명이라도 공감을 느끼는 독자가 있어야 글이 글로서 자리잡고 서있을 수 있다. 결국 글 쓰기는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재미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가슴 뭉클한 감동이 퐁퐁 솟아나는 글이면 읽은 사람이 시간 아깝다고는 안 할 것이다. 내 <안경>이 글감 노트에서 햇빛을 쬐러 나오려면 ‘초고압착 렌즈가 없었던 옛날에는 소주잔 밑바닥같이 두꺼운 안경을 썼다’는 괴상한 표현의 낚시라도 던져야 하지 않겠나.
브런치에서 여기저기 글맛집을 탐방하는 재미가 쏠쏠한 이 즈음, 나는 감탄사를 연발하는 사춘기 소녀가 되었다. 소똥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고, 낙엽지는 것만 봐도 눈물 흘린다는 소녀처럼 웃고 운다. (사실 소똥 얘기도 진짜 웃기고, 낙엽 얘기도 진짜 슬픈데)
글감이 나는 상상치도 못했던 소재여서 놀라고, 그 내용이 눈부시게 빛나서 놀라고, 문장이 시리도록 아름다워서 놀라고, 사연이 눈물나게 기구해서 놀라고, 고소한 냄새가 진동하는 재미 때문에 또 놀란다. 자연히 내 글과 비교가 되는데, 나는 요즘 글 손을 놓을 지경이다. 어떻게 써야한담?
브런치 작가가 된 이후로 평생 무관심했던 ‘글쓰기 글'들도 읽어봤고, 강연 동영상도 살펴봤다.
글쓰기에도 “수학의 정석”같은 정석이 있는 듯하다. 여러 글쓰기 강사들이 하는 말들을 종합해보면 분명히 글 잘 쓰기의 정석은 있는 것 같다. 부사를 남발하지 말아라. 길게 서술하지 말아라. 간결하게 써라. 접속사를 쓰지 말아라. 그(?) 유명한작가는 책 한권을 다 훑어봐도 접속사가 없다. 이런 것은 다 글쓰기 방법이고, 글감 찾기와 글 구성하기는 더 중요한 일이다. 나는 그동안 글쓰기의 근본인 글감 찾기부터 글 구성하기는 차치하고 글쓰는 방법조차 제대로 익히지 못한 채 써왔다.
흔한 말로 무식해서 용감한 생각들을 써보려고 한다. 이 자체가 또 글쓰기의 일(1)도 모르는 나의 글쓰기 만행에 가까운 글이 되려나…?
“간결하게 써라.” 명심하고 있다. 다 쓴 뒤에 읽어보면 글이 치렁치렁 늘어져서 싹둑 잘라내기 일쑤다. 지웠다 다시 썼다를 반복하며 겨우 몇 마디 줄여본다. 역시 간결한 것이 좋다. 쓸데없는 수사들을 왜 그렇게 너절하게 늘어놨었는지 내 자신이 답답할 때도 많다. “간결하게 써라.” 수긍하고 따르려고 노력한다. 그래도 싹둑싹둑 잘라버린 문장들이 아까워서 궁시렁궁시렁 혼잣말을 해본다.
나는 유장한 문장들이 참 좋아. 문장의 매력이 바로 그런 것 아닌가!
운율이 詩에만 있으라는 법이 있나. 수필에도 소설에도 글의 리듬감이 좀 있어야지. 단문으로 강하게 던져놓기도하고, 유장하게 부드러운 서사로 독자를 끌고 들어가야 글읽는 리듬감이 있지. 독일 책들을 안 읽어봤나? 친구랑 독일책에서 마침표 찾기 놀이를 할 정도로 ‘간결’과는 거리가 먼데… 간결체가 돋보이는 것은 만연체가 있기 때문이지, 전부 다 간결체로 써버리면 장문은 작문도 못하는 작가 취급받기 십상이지. 만연체로 쓴 글을 읽다보면 대 서사시가 내 몸에 휘휘 감기는 느낌까지 드는 걸! 궁시렁궁시렁.
“부사,접속사를 삼가라.” 옳소! 수사가 화려한 글을 읽으면 첫 맛은 달콤한데 거듭되면 슬슬 짜증이 나니까 좀 삼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 혼잣말을 해본다.
신문기사도 아닌데 좀 감정을 드러내면 어떤가. 깜짝 놀랄만한 비유도 좋고, 부사와 형용사로 수식한 멋진 문장이 있어야 읽는 사람의 건조한 가슴을 촉촉히 적실 것 아닌가. 글이란 어차피 마디 세기 놀이가 아닌데 접속사로 부드럽게 이어주면 친절해서 좋지. 또 궁시렁궁시렁…
“쉼표를 많이 쓰지 말라.” 나는 쉼표를 많이 쓴다고 했더니 스스로의 글에 대해 자신감이 없고 불안해서 자꾸만 쉼표로 설명을 덧붙이는 거라는 소리를 들었다. 맞다. 그렇다. 나는 써놓고 부족한 느낌에 쉼표를 연장삼아 덧붙이고 덧붙인다. 결국 누더기가 되는 글 모양새라니…
나의 글쓰기 고민은 많다. 개선할 점이 수두룩하다.
어떤 성공한 작가는 자신의 글 한 상자를 다 불태워 버렸다는 이야기도 돈다. 나는 그렇게 못한다. 내가 만든 문장 한 문장이 너무너무 아까워서 포기하지 못한다. 이 글에 안 맞는 것 같으면 빼놓고, 아까워서 버리지는 못해 저 글에 다시 끌어다 끼워 맞춰본다. 그래서 나는 작가가 못된다.
새해맞이 인사를 두 번째로 여기저기 했고, 여기저기서 덕담을 또 들었다.
두 번째로 새해 다짐을 해본다. 작가가 되리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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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