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이해
“글”이 무엇인지 정의내리기도 어렵지만, 오랫동안 글을 써오면서 한번쯤은 “수필”과 “에세이”에 대한 글을 쓰고싶었었다. 수필을 에세이라 하고, 에세이를 수필이라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한 단어로서 그 뜻을 같이 사용하지만, 같은 것 외에 다른 개념도 있다는 것을 쓰고싶었는데 내 능력으로는 좀 벅찬 일이었고 게으름에 미적미적하다가 늦어졌다.
단어의 뜻을 가장 정확히 알기 위해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인용한다.
https://stdict.korean.go.kr/main/main.do
수필4(隨筆)
『문학』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글. 보통 경수필과 중수필로 나뉘는데, 작가의 개성이나 인간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유머, 위트, 기지가 들어 있다. 에세이(essay)
「1」 『문학』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글. 보통 경수필과 중수필로 나뉘는데, 작가의 개성이나 인간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유머, 위트, 기지가 들어 있다. =수필.
「2」 『문학』 주로 무거운 내용을 담고 있는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수필. 비개성적인 것으로, 비평적 수필ㆍ과학적 수필 따위가 있다. =중수필.
인용했듯이 수필과 에세이「1」의 풀이는 같다. 그런데 “에세이(essay)”에는 풀이가 하나 더 있다.
「2」의 풀이에는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의 설명이 없고 “논리적이고 객관적인”이라는 설명이 있다. 외국어가 외래어로 정착하는 과정에서 원래의 뜻이 정확히 전달되기는 어렵다. 그리고 수필과 에세이의 경우에는 에세이「1」의 풀이처럼 그 뜻이 틀림없이 같은 경우도 있다. 영어 “essay”라는 단어를 단순히 “수필”로 받아들이고 수필과 에세이의 다른 개념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글 쓰는 사람들의 머리속에 사전이 장착되어있지 않는한 글쓰는 자리에 사전이 늘 곁에 있는 것이 대부분의 글 쓰는 사람들의 모습일텐데, 기왕이면 사전을 찾아볼 때 앞머리에 있는 풀이만 보지말고 뒤에 붙은 여러 개의 풀이와 쓰임도 다 읽어보면 좋겠다. 정확한 개념의 혼동이 좀 가실 것이다.
몽테뉴의 수필이나 “용재수필”, 연암 박지원의 수필까지 들추지 않더라도 국어사전의 풀이 한 가지만으로도 “수필”과 “에세이「2」”의 차이는 충분히 이해될 것이다.
주변에서 잘못 사용되는 단어를 하나 더 예로 들자면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이다. 중학교 교사, 고등학교 교사, 교사들은 모두들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을 정확히 구분한다. 그런데 고등학생의 학부모들이 종종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의 개념을 혼동하고 잘못 말하는 경우를 여러 번 경험했다. 하찮은 일 같지만 단어의 정확하지 않은 사용이 불러오는 사회적 파장은 크다. 연관되는 몇 가지 단어들을 계속 추적해본다.
학교 홈웍(Homework) 에세이(essay)
홈웍은 우리의 숙제, 과제와 같지만 에세이는 생활에세이와 학문적에세이가 구분된다. 아래의 예는 외국학교에서 경험한 것이다.
과제 홈웍 1.
교사--“달moon”에 대하여 조사해 오기.
학생1--어려서 할머니에게 듣던 이야기로 달에서는 토끼가 방아를 찧는다고 했다. 둥근 달을 쳐다보면 정말 그런 모양의 그림자가 보인다.
학생2--달은 지구로부터 000Km떨어져있다.
학생3--월식, 인력에 대해 조사함.
학생4--달의 변화, 태양력과 달력에 대해 조사함.
학생들의 “달에 대한 숙제”는 자유롭고 다양하다. 각자에게 개인적인 성향을 방해받지 않고 생각할 자유를 준다. 교사는 학생들의 개성을 파악하고 실질적인 지도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교과과정의 지식전달도 중요하다.
과제 홈웍 2
교사--과제 1에서 자신이 제시한 테마로 에세이 써오기. 참고서적은 백과사전 제외한 4개의 책을 선택. 00까지 참고서적 목록과 기획안 제출할 것.
학생1,2,3,4--자신이 참고할 책, 인용할 문장, 에세이의 방향, 분량, 제출시기를 기획하여 제출함.
교사-학생들의 제출기록을 검토하여 참고서적 조언, 글의 방향 조언.
학생1,2,3,4-- 교사의 자료 피드백에 따라 글쓰기 시작.
위의 예는 중등교육에서의 에세이 쓰기이다. 실제로 우리 아이들이 “영화 라이언 킹의 언어에서 나타나는 인종차별”과 “기타줄 길이와 두께와 음의 관계”에 대한 에세이를 고등학교(중등교육) 과정중에 썼다. 이 에세이의 장점이 부각되며 국내 교육에 도입되었는데, 단계적인 과정이 간과된 결과로서의 에세이는 “논문”으로 여겨지게 된 것 같다.
중등교육의 에세이(essay)와 고등교육의 논문(thesis)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쓰는 에세이는 그 자체로서도 완성된 것이지만 앞으로 전문교육기관이나 대학에서의 깊은 연구를 위한 준비로 볼 수 있다. 자기의 에세이를 위해 자료를 어떻게 수집하고 선택하고 주어진 분량에 맞게 정해진 기간안에 쓸 수 있는지 훈련을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배워가는 그 과정은 학문을 할 사람에게 정말 중요한 과정이다. 과정을 무시한 결과의 비극은 필연이 아닐까? 학령에 맞지않게 완벽하고 훌륭하게 잘 써서 제출한다는 목표를 가지면 타인에게 부탁하고 표절하고 그런 부끄러운 결과를 낳게 된다.
고개를 숙이고 감히 고백하건데 내가 바로 그 오류를 범한 사람이다. 낯설고 두려운 생소한 환경에서 아이의 학교생활은 내게 최고로 중요한 이슈였었다. 숙제를 잘 해가도록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해서 정말 훌륭한 숙제를 해보냈다. 그 결과 학교 선생님께 철퇴를 맞고 말았다. “숙제를 해주지 마세요. 교사는 이 학생이 다 아는 줄 알고 더 안가르칩니다. 학생이 모르면 자세히 가르쳐주고요. 부모가 숙제를 해주는 것은 학생이 학교에서 교육받을 기회를 빼앗는 것입니다.” 부끄럽고 챙피해서 도망가고 싶었다. 선생님은 옳은 말씀을 하셨지만 처음엔 그에 대한 반발심도 일었다. 살빛 누렇고 눈이 째진 나를 무시하는 것 같은 자격지심도 일었다. 그래도 그 말씀 자체는 옳은 것이므로 그에 따랐고, 스스로 발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흐뭇함을 느끼게 되었다.
에세이와 논문을 구분해보자.
역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인용한다.
논문(論文)
「1」 어떤 것에 관하여 체계적으로 자기 의견이나 주장을 적은 글. 그 체계는 대개 서론, 본론, 결론의 세 단계이다.
「2」 어떤 문제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 결과를 체계적으로 적은 글.
논문은 한줄한줄이 모두 증명되어야하는 글이다. 그 출처와 인용을 밝혀야함은 당연하다. 어떤 경우엔 한 페이지에 본문보다 주석(footnote)이 더 긴 쪽도 있고, 책 전체를 보면 참조(reference), 인용 출처가 여러 페이지씩 차지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논문은 고등교육의 책임있는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글이기 때문이다. 글 한줄씩 쓸 때마다 유사한 논문을 검색해봐가면서 확실히 나의 글을 써야하는 것이다.
바라기는 수필에서 생활수필과 essay의 구분도 했으면 좋겠고, 에세이와 논문도 구별하면 좋겠
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은 것은 결과에 대한 기대치는 허공에 뜬 희망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거쳐야할 바른 과정의 길을 걷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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