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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Mar 11. 2021

짝짝이 양말-자유로운 창조, 집단 괴롭힘 방지 운동

봄이다. 실내에 살고있는 화분의 식물들도 계절이 바뀜을 잘 알고있다. 원초적 DNA가 계절을 기억한다. 눈에 띄지 않게 계절을 준비하다가 내 눈에 띌 때쯤엔 벌써 계절 깊숙이 들어와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좁쌀만한 싹들이 몰래몰래 자라면서 갑자기 마법처럼 부푼 모습을 보여준다.

학교는 정상적으로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여섯 명의 손주들은 초등학교와 유치원의 새 학기에 모두 바쁘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외손자의 등교길 사진을 딸은 부지런히 보내온다. 볼 때마다 아이는 활기찬 모습이지만, 마스크로 얼굴 절반을 가린 모습이 안쓰럽다. 새로 만난 친구들의 얼굴이라도 제대로 봐야할텐데… 안타깝다.  


개학하기 전에 잠깐 우리집 식구들이 모였었다. 나라에서 정한 5인 이상 모임 금지 때문에 연말에도, 설에도,  내 생일에도 모일 수 없었는데 “부모와함께는 괜찮다”는 새로운 방침에 따라 모처럼 모인 것이다. 언제나처럼 어린 아이들은 집에서 발 뒤꿈치를 들고 걷다가 자유로운 놀이터로 몰려나갔고, 어른들은 식탁에 둘러앉아 이야기 꽃을 피웠다.

아이들은 실내복 차림으로 있다가 놀이터에 가려면 벗어던졌던 옷가지들을 주섬주섬 주워입고, 다시 돌아오면 겉옷은 다 벗어젖힌다. 몰론 양말도 벗는다. 어떤 아이는 양말 두 짝을 함께 엮어서 잘 간수해놓고, 어떤 아이는 잘 챙기지 않는다. 함부로 벗어놓은 양말은 이 사람 저 사람의 발에 치어 흩어지고 다시 신을 때는 그것을 찾느라고 낑낑댄다. 스스로 잘 챙겨두지 않았던 일을 소급해서 혼나는데 개선되지 않고 반복된다.

그럴 땐 그냥 아무거나 있는 대로 한 짝씩 신어버려라!

너희들은 한 나라의 총리가 될 수도 있고, 이름을 남길 예술가가 될수도 있으니까!


쥐스탱 트뤼도( JustinPierre James Trudeau ) 카나다의 젊은 총리는 정치적 입지와 더불어 양말 패션으로도 유명하다. 모임에 따라 신는 양말에 메시지를 담기도 한다. 먼 나라 지도자가 행하는 파격은 흥미진진하고, 내 나라 지도자가 그러면 어리둥절하게 된다. 아래 사진 모습은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이런 파격적인 스타일은 트뤼도 총리가 처음은 아니다. 환경운동가이며 예술가인 훈데르트바써는 이미 오래전부터 짝짝이 양말을 신었던 사람이다. 나는 여러 해 전에 북아트 작품으로 <훈데르트바써> 책을 만들었는데 그가 짝짝이 양말을 신던 사람이다.


The Second Skin ; Clothing  제 2의 피부:

훈데르트바써는 소비사회를 포기하고, 익명성으로 통일하고 기성복으로 획일화하는 패션의 지시에 따르는 일에서 멀어지라고 외친다. 모든 개인의 창조성을 강조하고 우리의 제 2의 피부를 창조적으로 디자인할 권리를 주장한다.  


다른 사람들이나 체제에 무조건 따르는 순응주의와 획일성 대신 자유로운 창조.

각 개인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이 각각 다른 의상, 같지 않은 의상을 입는다는 점일 것이다.  대량 생산된 옷을 입어서 익명성으로 통일되는 것은 사람이 그의 고유한 개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훈데르트바써는 유행에 무조건 따르는 순응주의나 획일화 대신에 창조적 디자인을 주장한다. 바로 패션의 독재에 대한 저항이라는 주제이다. 훈데르트바써는 창조적으로 옷을 입는 사례로써 그의 옷을 스스로 디자인하고 만든다.   


훈데르트바써에 대한 글을 옮겨온다.

아래 내용은 그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발췌 번역한 것이다. https://hundertwasser.com/en/texts/ueber_die_zweite_haut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건축물이 사람의 세 번째 피부이듯 의상은 사람의 두 번째 피부다. 만일 두 번째 피부인 옷을 잘못 입거나 균일화된 옷을 입거나 맞지 않는 옷을 입거나 그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게 입으면, 피부 아래에 있는 조직이 피부에 따라 그렇듯 사람자체도 병이 들게 된다.  가치 없는 것을 그대로 모방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오늘날 문명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특별히 강조된다. 거의 완성품으로 생산됐거나 공장에서 만들어진 옷은, 사람들이 그저 겉에 걸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 옷, 우리의 그 고유한 의상의 창조적 디자인으로부터 우리를 점점 멀어지게 만든다.From: ON THE SECOND SKIN (excerpt), 1983
Hats That Wear You ; Mixed media  810 mmx 1160 mm  1982  Collection: KunstHausWien
사람이 모자를 쓴다. 사람들이 높은 모자를 쓰고 거리를 지나갈 때, 도시의 건축적 외형이 변한다. 사람이 좀더 커 보이고 싶으면 굽을 높힌 구두를 신거나 각주(stilt) 위에 서서 걷거나 왕관을 쓰거나 머리 위에 높은 모자를 쓴다. 만일 머리에 쓴 모자가 너무 높고 크다면 모자를 쓰고 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된다면 모자에 매달릴 수 밖에 없다. 이러면 사람이 모자를 쓴 것이 아니고, 모자가 사람을 걸친 것이 된다.(출처 Hundertwasser 1928-2000,Raisonné 카탈로그 제2권. Taschen, 쾰른, 2000.644쪽)
    얼마나 우리가 따르는 패션이, 그리고 의상이 잘못되었고 무미건조하며 겉으로만 멋지게 만들었는지는 그 옷을 돌려보기만 해도 즉 겉과 속을 뒤집기만 해도 쉽게 증명될 수 있다. 그것이 여자용이든 남자용이든 상관없이 바지나 셔츠 쟈켓, 위에 걸치는코트를 벗어 안쪽을 겉으로 나오게 해서 그 옷의 안쪽이 겉에 나오게 입어보라. 그리고 나서, 이렇게 옷을 입은 다음 사람들이 있는 거리로 나가보라. 그러면 얼마나 부끄러운지 알게 될 것이다. 왜냐면 우리 옷의 안쪽은 정말로 형편없기 때문이다.  1949년부터 나는 내가 입을 옷을 직접 디자인했다. 신발과 양말도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자면 나는 지난 20년동안이나 두 가지 서로 다른 양말을 신는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인식하지 못하고 실수로 그랬지만 그 다음에는 일부러 그랬다. From: ON THE SECOND SKIN(excerpt), 1983                                                                                 


양말을 짝짝이로 신는 것을 이제 더이상 실수로 여기지 않는다. 패션의 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연예인들은 오래 전부터 짝짝이 양말을 멋으로 신어왔다.  이나영은 2011년, 지금으로부터 10년전에 자신의 홈페이지에 짝짝이 양말 패션 사진을 올렸다.

이나영 홈페이지에서.


그 이후 2013년,  아이유는 KBS드라마 '예쁜 남자' 5회에서 짝짝이 스타킹을 선보였다. 다리 전체가 흑백으로 표현되어 발목양말보다 더 시선을 끌었다.


짝짝이 양말은 패션 아이템의 경계를 넘어 국제 회의에도 등장하게 되었다.

2013년 사회혁신 국제회의에서 한 연사가 일부러 다르게 신은 양말과 신발을 보여주며 그 취지를 설명했다. 창의와 혁신은 다른 생각들이 섞일 때 왕성하게 발휘된다는 것이다.

마른 빨래 갤 때 양말 짝 맞추기가 얼마나 귀찮은데, 나도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짝지어서 접어둘 걸 그랬다. 그랬으면 패션의 선두주자에서 창의와 혁신의 아이콘으로 추대됐을지도 모르는데... 아쉽다. 이젠 검은색과 감색을 구분해서 맞추려고 애쓸 것 없이 되는대로 접어두자.

http://heri.kr/column/77516

짝짝이 양말은 동화책으로 출간되어 그 범위를 넓혀왔다.  어린이들이 '달라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든 책이다. 다른 것은 틀린 것도 아니고, 옳지 않은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그냥 서로 다를 뿐.

2015년에 출간된 <티나의 양말> 홍순영 글, 그림


짝짝이 양말에 대한 이야기는 한도 끝도 없이 이어진다.

마켓팅의 혁명가 세스 고딘(Seth Godin)은 짝짝이 양말로 유명하다. 세스 고딘이라는 사람은 혹시 모르더라도 장기간 베스트 셀러였던 특이한 제목 <보랏빛 소가 온다>라는 책 이름은 기억날 것이다. 그를 설명하는 말은 대개 이렇다. "정상의 범주로 정의되지 않는 변종들의 리더"라는 것이다. 그가 짝짝이 양말을 신고 연사로 강단에 서면 마켓팅을 배우러 온 많은 청중들이 숨죽이며 그의 강연을 경청했다. 그의 마켓팅 지론은 "지루한 것은 죽음이다"라는 것이다. 우선 자신의 양말부터 파격!

왼쪽https://lovehateadvertising.files.wordpress.com/2010/04/m1t3114-seths-socks.jpg             오른쪽https://chrisguillebeau.com/visit-to-seth-godin-alternative-mba/


이 영화배우를 거론하지 않으면 그가 좀 서운해 할 것 같다. 미국의 영화배우 조셉 고든 레빗(Joseph  Leonard Gordon-Levitt)도 짝짝이 양말을 신는다.

https://fyeahjosephglevitt.tumblr.com/


짝짝이 양말은 멋으로만 신는 것은 아니다. AFC 윔블던 청소년 그룹에서는 훈련과정중에 짝짝이 양말을 신긴다.  약한 발을 인식하고 훈련하여 경기능력을 향상시키려는 목적이다.

https://www.fourfourtwo.com/performance/training/why-afc-wimbledons-academy-wear-odd-socks

"약한 발"의 팀원은 짝짝이 양말(훈련용 흰색과 경기용 노란색)을 신기고 훈련을 하면서 정기적으로 전력평가를 하여 "두 발"로 여겨지면 두 짝이 같은 색의 양말을 신을 수 있다. 짝짝이 양말이 축구 훈련에도 이렇게 사용한다니 의아할 따름이다.

이렇게 다양한 쓰임의 짝짝이 양말이 이제는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짝짝이 양말의 날(Odd socks day)>까지 생겼다. 집단 괴롭힘을 물리치고 이겨내려는 사회운동이다.


https://nationaltoday.com/odd-socks-day/

<짝짝이 양말의 날>은 2017년에 처음 시작되었다.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Anti-Bullying Alliance가 시작했다. 판단에 대한 두려움없이 자신을 표현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가 충분하다는 생각을 재확인하자는 기획이다. 다른 사람의 이상한 양말, 짝짝이 양말에 감사할 수 있다면 개인의 차이점에도 감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취지이다.

우리가 모두 다르며, 아이들이 서로를 받아들이고 차이를 축하해야한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2021년에는 11월15일이 Odd socks day이다.


요즘 사회문제의 화두는 여러가지이지만 학교폭력과 집단 따돌림, 집단 괴롭힘도 우선 손꼽히는 이슈이다.

올해 아들을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딸은 학교폭력에 대해 벌써부터 걱정을 하고 있다. 이제 갓 입학했는데.

딸의 걱정은 아들이 피해자가 되는 것도 무섭지만, 혹시 어떤 실수로 가해자의 낙인이 찍혀 그 오명이 평생갈까봐, 그것도 무섭다고 한다. 잘 가르치겠지만 걱정이 지나칠까봐 염려된다. 아직 아무짓도 하지 않은 어린 아이를 잠재적인 피해자로, 잠재적인 가해자로 여기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다. 그저 예쁘기만한 내 외손자.


양말에 대한 긴 생각들이 글로 엮어지는 동안 내 머리는 좀 부드러워졌으려나...

평생을 제대로 맞추며 살려고 애써왔는데 어찌 그게 그리 쉽게 깨질 수 있을까.


남의 파격은 신기하게 생각하며 재미있는 구경거리로 삼지만, 내 아이가 그런 것은 많은 걱정거리를 안긴다. 아이들은 내가 가르친 대로 잘 따르고 규범을 벗어나지 않아야 착한 아이다. 이런 사고의 틀이 깨어지지 않는한 내 아이는 나 정도의 사람밖에 될 수 없다. 나를 능가하는 아이를 키우려면 나의 굳은 생각이 단단한 껍질을 깨어야 가능할 것이다. 여섯 손주들에게 말한다.

“양말 짝 찾느라고 애쓰지 마라. 다른 것은 틀린 게 아니란다."


훈데르트바써에 대하여 북아트로 책을 만든 내용.

https://brunch.co.kr/@erding89/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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