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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Mar 09. 2021

선물

두 어머님들을 그리워하며

이른 봄비가 풍년을 예고하듯이 넉넉히 내리던 날 시어머님의 산소에 갔었다. 어머님의 기일이었다.

3월1일. 천안에 있는 어머님의 묘소에 가는 길은 언제나 교통체증이 심했었다. 올해엔 삼일절에 독립기념관을 찾는 인파가 없고 비는 폭우로 쏟아져서 도로는 한산했다.


시어머님은 며느리 다섯을 거느리시는 입장에서 사랑의 분배에 공정성을 발휘하시느라 힘드셨을 것이다.

시골에서 직접 지은 농산물을 분배하시는데도 어머님의 지혜는 며느리들의 생각을 뛰어넘었다. 나는 껍질을 벗기기 쉬운 작은 통마늘을 받았고, 세째 동서는 한통에 쪽이 여러개인 마늘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이러하다. 세째는 아이가 하나이고 둘째는 아이가 셋이니 일손이 더 딸릴 것이라는 어머니 나름의 이론이었다. 사려깊은 시어머님이셨다.(세째는 그리 생각 안할지도 모르겠다.)


선물을 받으면 기쁘다. 선물을 줄 때는 더 기쁘다.


어느해 내 생일에 나는 크리스탈 텀블러 셋트를 스스로에게 선물했다. 그 즈음엔 예쁜 그릇들에게  마음을 빼앗겨 핑계거리만 있으면 값나가는 식기들을 사모을 때였다.

시어머님께 새로 산 컵을 보여드리며 자랑을 하다가 깜짝 혼난 생각이 갑자기 무덤앞에서 떠올랐다.

혼내실 때의 목소리도 크셨다.

“아니 이 바보야, 니 생일에 선물로 왜 살림을 사? 니 생일이니 살림살이 말고 너한테 필요한 걸 사야지.”

“어머니, 저는 이게 갖고싶었어요. 비싸서 평소엔 못사고 생일 핑계로 산 거에요.”

“그래도 나중에 아범한테 니 생일엔 니 옷이나 반지 그런거 사달라고 해라.”


그때는 어머니가 나를 무척 아끼신다는 생각밖에는 못했다. 이제 그때의 어머님 나이보다 더 나이많은 내가 되어 어머니 무덤앞에서 문득 다른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어머니의 젊은 날, 어머니는 제대로 된 선물이나  받아보셨을까? 만삭의 몸으로 밭에서 일하다 들어와 아이를 낳았다던 그 시절을 보내신 어머님, 당신이 못 누렸던 것들을 누리며 사는 며느리를 시샘 한 번 안하시고, 당신이 누리지 못했던 것을 며느리는 누리며 살기를 바라셨던 시어머니셨다.

생일 선물로 살림살이를 산 내게 “아니 이 바보야”라고 하셨던 어머니는 그 “이 바보야”를 당신 스스로에게 하셨던 것이 아닐까?

당신 가지고싶은 것을 한 번도 마음놓고 사 본 적이 없었을 시어머님의 삶이 내게 아릿한 연민으로 다가왔다. 아, 그때 바로 그 말씀을 깊이 새겨봤더라면 좀더 좋은 것 많이 사드렸을텐데... 지금 내가 선물해 드릴 수 있는 것은 무덤앞에 놓을 꽃다발 뿐이다.

돈으로 드리면 그 돈으로 다 다른 사람들에게 뭐 사주고 당신 것은 아무것도 안 사셨다. 옷도 자식들이 사드리는 것만 좋아하며 입으셨고, 먹거리도 자식들이 사다드리는 것만 잡수셨다.. 우리가 드린 돈이 넉넉하고 풍족해도 당신 것을 사는 일에, 당신을 위해 쓰는 일에는 인색하셨다.


어머니는 내게 값비싼 옷이나 반지를 사주시진 않으셨다. 그러나 내 생일날 애정어린 말씀으로 가장 값어치있는 옷을 내게 선물하셨다. 가장 값어치있는 반지를 내게 선물하셨다. 나는 시어머니에게서 말씀으로 큰 선물을 받았고, 나에게는 직접 크리스탈 텀블러를 선물했다. 선물을 받으면 기쁘다. 선물을 줄 때는 더 기쁘다. 선물을 받기도 하고 주기도 했던 그 해 내 생일날은 참 흐믓하고 행복한 날이었다.



상대방이 갖고싶은 것이 가장 좋은 선물이다.


시어머니는 맞벌이하는 아들네서 살림을 돕고 계셨고, 친정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우리집에서 같이 살았다. 두 분 모두에게 이런저런 선물을 했는데 시어머님은 다른 집에 계시니 방문할 때나 무슨무슨 날에 특별히 더 신경을 써서 선물을 했고, 친정 어머니는 늘 곁에 계시니 수시로 사소한 선물들을 드렸다. 

당연히 나보다 나이가 30여년 가까이 많으시니 어머니께 드리는 선물은 어른들에게 어울리는 종류들이었다. 비타민, 건강보조식품, 보온성 의류... 마치 어르신 선물용으로 정해진 것처럼 이런 선물들을 사드렸다. 

남편은 일년에 반 이상 해외출장 생활을 했기 때문에 오가며 자잘한 선물들을 들여오곤 했다. 거래처에서 받은 것들은 종류가 다양했지만 자신이 직접 산 기내 면세품들은 매번 중복되었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별 부담없는 사소한 것들, 주로 콤팩트나 여성용 화장품들이었다. 그러나 어머니것은 별도로 사온 "어르신용" 선물이었다. 

지금 내 나이 70넘겼는데 나는 아직도 노인이라는 말이 낯설기만 하다. 그러나 내 어머니는 환갑 지나면서부터 아주 노인으로 대접을 해드렸다. 그땐 그것이 효도인줄 알았는데, 이제 생각하니 너무너무 큰 불효였던 것이다. 어느 날, 어머니는 선물용 콤팩트가 남아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는 당신도 하나 가지면 안되겠냐고 하셨다. 그후로는 아이 크림, 영양 크림, 립스틱, 메이크업 셋트... 젊은이용(?) 선물을 어머니께 드렸다. 어머니는 활짝 웃으시며 좋아하셨다. (아, 내가 딸 맞아? 내가 여자 맞아? 나는 30대 후반부터도 꼰대 사고방식이었던 거야?)


고인이 되신 시어머님과 친정어머님, 함께 모신 여행길에서.


봄이다. 

많은 새생명들이 움트고 생기를 뿜어낸다. 마치 죽은 것 같았던 나무들에게서 눈록색 잎들이 새로 돋아난다. 우리가 의식하든 않든 자연의 순환은 계속된다. 창조주는 수시로 새로운 선물로 우리를 기쁘게 하신다. 창조주의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생명이다. 생성과 소멸이 한 덩어리속에 녹아든 생명을 선물로 주셨다. 


봄놀이를 함께 갔던 두 어머님들이 생각난다. 

시어머님께서 내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바로 당신의 아들이다. 친정 어머니께서  주신 가장 큰 선물은 바로 나다. 내가, 남편이, 두 분 어머님들 생전에 여러가지 선물을 드렸었지만 두 분이 안계신 지금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우리들의 행복한 삶일 것이다. 

두 분 어머님들, 보고 계신가요? 봄처럼 생기있게 따뜻하게 보드랍게 포근하게 사는 모습을 명주보자기에 곱게 싸서 당신들께 선물로 보내드립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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