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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Apr 04. 2021

인사동 소회

코로나 시대의 인사동

회색빛으로 낮게 가라앉은 하늘이 우울하지 않다. 오히려 북적대지 않는 거리를 독점한듯 쾌적하다. 갤러리 ‘이즈’에 들러 추상회화 작품을 감상했다. 작가의 설명을 들었다. 작품에 작가의 사인이 있으니 그 글자로 보아 작품의 위 아래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현장에서 설명을 해주던 작가에게 질문을 했다. 정말 궁금했다. 이 그림을 그릴 때 원래 아래 위를 정하고 그렸느냐고.

추상화를 볼 때마다 그런 궁금증이 있었다. 잭슨 폴록의 드립페인팅 그림들을 볼 때 들었던 의문이다. 올 오버 페이팅으로 이해하지만 오늘은 마침 전시작가를 대면한 길에 질문을 한 것이다.

작가의 답은 이랬다. 방향을 애초에 정해놓고 그린 것은 아니다. 완성 후에 여러 방향으로 돌려보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방향을 확정하고 사인을 한다.

작가의 말을 듣고 나도 머리속에서  그림을 여기저기로 방향을 바꿔가며 상상을 해봤다. 역시 작가가 정한 현재의 방향이 가장 좋았다.

비구상작품은 어느 방향으로 놓든지, 어느 한 부분을 잘라놓더라도 완벽한 한 작품이 되도록 표현해야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내 옆지기는 차돌된장백반을, 나는 조기구이 백반을 먹고 한옥찻집에 왔다. 별 변화를 모르는 옆지기는 언제나처럼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나는 뜨거운 계피차를 마셨다. 계피차의 뜨거움과 짙은 향과 맛이 낮게 드리워진 회색 구름을 힘껏 밀어부치고 걷어냈다. 그는 자리에 남아 글을 쓰고, 나는 밖으로 나가 경인미술관엘 갔다.

다섯개 전시관들 중에 2개 전시실만 열려있다. 일년 스케쥴이 꽉 차있어서 대관하려면 이전 해부터 날짜를 잡아야 했는데, 코로나시대를 실감한다.

쌈지길을 짯짯이 돌아봤다.

언젠가 동행했던 누구누구가 쏟아놓았던 말들이 어느 구석엔가 숨어있다가 튀어나왔다. 기억은 장소의 지배를 받는다! 장소는 시계를 거꾸로 돌려준다. 인사동 곳곳이 온통 추억이다. 추억의 힘은 대단하다. 함께 했던 사람들을 다시 내곁에 불러다 놓는다.


국제 자수원에 진열된 자수품들을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외국살이를 접고 귀국한 후 전통 자수를 배우러 다니던 일이 생각났다. 큰아들 결혼예물로 보낼 함보자기, 사주단자보, 혼서지보를 직접 수놓던 일, 아들들 붓글씨를 쓰라고 지필묵을 사던 일도 차례로 떠올랐다. 그 지필묵으로 남편은 밤을 새워가며 혼서를 직접 썼다.

서툴게 놓은 자수의 함보자기, 하얗게 밤을 밝히며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며 직접 썼던 혼서. 우리의 큰며느리 맞이는 온통 정성이었다.


2012년에 경인 미술관에서 북아트 전시회를 했다. 초대전은 아니고 자비로 연 전시회였다. 이젠 북아트 작업을 접을 때가 되었다. 남아있는 많은 자료들은 처분하고 잊기로 했다. 어디 북아트 뿐이랴.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차례로 다 없애야 할 나이가 되었는데...

모든 물건들에는 나의 감정이 묻어있고, 속까지 들어박혀 있어서 그것들과 이별하기는 어렵지만 마냥 미루고 있을 수는 없다. 미루고 미루다가 작별인사조차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다 버려야 할 때가 올 것이니.


인사동 고샅마다 자리잡은 나의 추억들은 버리지 않아도 되는 것이니 참 다행이다. 대학생이 되는 딸과 함께 갔던 다원, 홍콩에서 막내며느리 가족들이 오셨을 때 함께 했던 한식밥집과 찻집들,  손녀가 유치원 다닐 때 함께 구경하던 쌈지길의 오밀조밀한 가게들. 참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인사동 길을 벗어나 안국동으로, 경복궁으로, 또는 정독 도서관이나 삼청동 길로, 헤매고 다니던 젊은 나는 이제 흰머리를 뒤집어 쓴 모습으로 찻집에 앉아있다. 젊은 날의 길들을 다시 걷기 위해 일어서 밖으로 나가는 것을 주저하며 거리와 시간을 가늠해보기만 한다.


찻집 내 앞에서 글을 쓰고 았는 그와 나..
경인미술관 뜰에 있는벚나무.
한옥찻집의 나무를 켜켜로 쌓은 담장.

한옥 찻집에 충전기 꽂을 곳이 없어서 글쓰기를 접고 책을 읽었다. 점심 식후에 들어갔으니 4시간쯤 찻집에 머문 셈이다. 남편과 나는 카페에 들어가 2시간이 지나면 추가 주문을 한다. 나이가 이만큼 되어 세상 살기 어려운 맛을 알고 있으니 영업하는 사람 입장도 이해하는 것이다. 젊어서는 절약만 생각했었는데.

 

내가 다니던 한지잡화상이 문을 닫았고, 군데군데 “임대안내”가 붙은 가게들이 눈에 띄었다. 필방, 공예품점, 갤러리 몇군데가 비어있었고, “폐업처분” “폐업할인”이라는 광고지를 붙인 곳도 여러군데 있었다. 코로나 시대에 겪는 아픔이다. 마스크 쓰느 것이 귀찮고, 외출 삼가는 것이 답답하다고 내가 투정하는 사이에 어떤 이는 생업을 포기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들은 다들 어떻게 무얼 먹고 살아가나,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시대의 아픔이다.

갈 때 마다 늘 설레고 즐거웠던 인사동 나들이가 오늘은 마냥 즐길 수만은 없는 분위기였다. 지금 더 바랄 것 없이 행복한 나의 삶이 죄짓는 일은 아니지만, 어쩌면 굶주릴지도 모를 누군가의 앞에서 나의 행복을 드러내는 것은 부끄럽다.


오전엔 날이 잔뜩 찌프린 날씨였지만 모처럼의 나들이 길이 즐거웠다. 인사동 여기저기를 기웃대며 지난 날들을 회상하며 행복했다. 찻집에서 글을 쓰면서 감상에 젖어있었다.

그 평화로운 시간을 갑자기 강한 바람으로 뒤흔들어 놓은 것은 “임대문의”가 붙여진 빈 가게들, “폐업정리” 피켓을 들고 할인 행사를 하는 가게들이었다. 일년내내 매일 붙어있는 호객용 폐업정리가 아니다. 바보인들 그걸 모를까. 아프다. 많이 아프다. 코로나가 주는 상처는 광범위하고, 감염되지 않은 사람까지도 생계의 위협을 받고있다.


오후엔 햇살이 내리쬐어 맑고 청량한 날씨였다. 오전에 머리위로 뒤덮였던 구름은 햇빛을 피해 내 가슴 속으로 숨어들었나보다. 거리는 밝고, 내 속이 어두워졌으니.

이른 저녁식사로 칼국수를 먹고 돌아와서 아까 찻집에서 쓰던 글을 마무리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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