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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Apr 10. 2021

내 몸 아끼기

오랫동안 미뤄왔던 일을 한 가지 끝냈다.


사후 시신기증하겠다는 마음도 굳혔고, 일가친척들에게 공표도 했고, 자식들의 동의도 받았었다. 병원에서 서류를 가져다 써둔 지도 여려 해가 되었다.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당장 죽을 것 같지는 않아서 서류 제출하는 것을 서두르지는 않았다.

여러 번 이야기는 하였으나 정작 자식들에게 동의서 서명받는 일이 늦어졌다.

명절, 생일, 휴가, 자식들이 다함께 모이는 날은 언제나 즐거운 날들인데 하필이면 그때 시신기증서에 서명하라고 하기는 좀 불편해서 미뤄왔었다. 그러다가 지난 설무렵에 자식 셋 중에 두 명의 서명을 받아뒀고, 며칠 전에 제출을 했다.



뇌사판정시 장기기증하기로 한 것은 벌써 20여년 전이었다. 내 생명의 공간을 공유했던 사람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위급한 상황은 생기지 않았고, 그동안 살아온 날들보다는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확실히 짧게 남아있는 시점에 이르렀다. 시신 기증이 필요한 때인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지금처럼 내 삶을 내 의지대로 경영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 한계점이 언제일지는 모르나 때가 되면 능동적인 삶에서 수동적인 삶으로 경계를 넘어갈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기도 어렵고, 생각한 대로 움직이기도 어려운 시절이 오고, 결국은 '어려운' 지경을 넘어 '못하는' 지경에 이를 것은 앞서간 사람들이 증명한 일이다.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그야말로 증인이 너무너무 많은 가장 확실한 앞 일이다. 때가 이르기 전에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은 게으름부리지 말고 부지런히 처리하려고 한다.

그중 한 가지 일이 내가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길 수 있는 내 육신을 선물하는 것이다. 그것이 함께 살아온 사람들에게 얼마만큼의 도움이 될지는 모른다. 빛나는 성과가 아니어도 좋다. 내 육신이 질병의 바다를 건널 디딤돌  하나가 되면 그것으로 족하다.


시신을 연구용으로 기증하기로 한 곳은 우리가 1988년부터 지금까지 다니고 있는 병원이다. 그곳에 우리 의료기록들이 그대로 남아있으니 연구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무작정 갑자기 던져진 시신 한 구가 아니라, 수십년간 의료 기록이 함께 넘겨진 시신으로 체계적인 연구가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 병원을 택했다. 물론 우리는 모른다. 우리가 죽은 후에 어찌어찌 연구를 할 것인지는.

우리 자식들에게는 연구가 끝난 후에 화장한 재 한 줌으로 돌아갈 것이다. 공원묘지 유골을 뿌리는 곳에 뿌리라고 했더니 자식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렇게 아무 흔적도 없으면 우리가 보고싶고 생각날 때 찾아갈 곳이 없어서 안된다는 것이다. 가끔 생각날 때 가서 만나야 한다고.


남편과 내가 같은 뜻인 것은 참 다행이다.

우리는 형제들을 만나면 가끔 앞으로 우리가 더 늙고 병들면 어떻게 할지, 죽으면 어떻게 할지에 대해 이야기를 해둔다. 집에서 돌보기 힘들어지면 요양원으로 갈 것이니 우리 자식들에게 "네 부모가 너희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너희들이 이럴 수가 있느냐"는 질타를 하지 말아달아고 부탁해둔다. 남편의 형제자매는 8남매이다. 우리를 요양원으로 보내면 우리 자식들에게 삼촌들과 고모들의 비난이 쏟아질 수도 있다. 우리는 친척들을 만나면 모든 것은 우리의 의지이니 우리 아이들을 비난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것이다. 누구도, 아무도 우리 자식들을 비난하지 않도록 단단히 일러두곤 한다.


봄철 깊숙이 들어와있는 지금, 꽃이 피네지네 감탄할 시기도 지났다. 이미 많은 꽃들이 피었고, 졌고, 여러 종류의 꽃들이 앞다투며 피고지고 한다. 지난 주에 내린 비로 벚꽃은 이미 제 철이 다 끝났다. 벚꽃이 핀다고 감탄하던 사람들은 함박눈처럼 쏟아지는 꽃비에 탄성을 지른다. 그렇다. 낙화까지도 감탄이다. 우리네 생도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떠나는 모습까지 아름다우면 좋겠다.



아래 글은 20여년 전에 장기기증을 결심하고 쓴 글이다. 詩라고 할 수 없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마음을 옮긴 것 뿐이다.


몸 아끼기

- 신체 기증의 뜻을 되새김하며


이미 오래 전부터 이 몸은당신의 것입니다.
미지의 그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표피의 솜털에서부터 몸 가장 깊은 곳 창자 속까지
나는 모든 것을 당신에게 바쳤습니다.
미지의 그대.


까맣게잊고 지냈습니다.
 몸이 당신의 것이라는 것을.
 몸이  것인양
 마음대로 부리고 소홀히 다루었습니다.
늦은 깨달음입니다.
 영혼을 담은 당신의 !
미지의 그대, 당신의 .
당신에게 돌려드릴 때까지
소중히 간수하고 아끼겠습니다.
언젠가  몸을 당신이 찾아가는 
귀하게 쓰임 받는 몸이 되도록
 보살피겠습니다.
미지의 그대.

빌려쓰는 당신의 
당신의 몸이 더렵혀지지 않을 
정결한 것만을 담아두겠습니다.
맑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담아두렵니다.
상처나지 않도록 부드럽고
따뜻한 영혼을 담아두렵니다.
당신에게 돌려드리는 
온전한 몸이 되도록 아끼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몸은 당신의 것입니다.
미지의 그대.
 몸이  것이 아니라는 
잊지 않겠습니다.

미지의 그대, 당신의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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