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브런치 구독자님들께.
모든 것이 일단락된 느낌으로 마음의 평화를 찾았습니다.
노령에 기저질환자인 우리부부는 정말 조심조심 코로나감염을 철저히 대비하며 다녔답니다.
귀국하기 위하여 검사를 받고 음성판정이 나와서 비행기에 탈 수 있었지요. 그 증명서가 없으면 체크인할 수 없으니까요. 체크인이 안되니 당연히 탑승은 불가하고요. 저희는 예방접종도 4차까지 했어요.
귀국한 날 보건소에 가서 pcr검사를 받았어요. 지방에 사는 우리는 잠시 서울 오피스텔에 머물며 코로나 감염이 아닌 것을 확인하고 집으로 올 계획이었거든요. 사랑하는 가족들을 만나기 전에 확실히 해두려고요. 검사한 이튿날 질병관리청에서 음성확인이라는 메세지를 받았어요. 안심했지요. 다음날 밤부터 남편이 감기기운이 있었고, 평소보다 좀 심하게 앓는 건 긴 여행의 피로 때문이라고 생각했지요. 서울에서 하루 더 쉬고, 장기간 주차해둔 자동차의 방전된 밧데리를 살리고 집으로 왔어요. 남편의 감기기운은 낫지를 않더군요. 저는 괜찮았고요. 집에 마련해둔 자가검진 키트로 검사해보니 코로나 감염이었습니다. 저는 검사를 안한채 병원에 가서 검사를 했는데 둘 다 코로나 감염 확진이었습니다.
귀국하여 장충동의 냉면집, 광화문 교보문고, 오피스텔 가까운 식당, 이렇게 세 군데를 다녔는데 아마도 그곳 어디에선가 감염됐을 것같아요. 교보에서는 마스크를 벗은 적이 없었으니 아마도 식당일까요? 잠복기를 감안해도 귀국 후에 감염된 것이에요. 다행히 우리는 이미 집에 와있었고, 다른 가족들은 만나기 전이었고, 둘이 다 확진되었기 때문에 특별히 조심해야할 불편함도 없었답니다. 이런 일에 왜 부창부수? 남편을 따라 저도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여 각자 끙끙 앓고, 가끔 불안한 마음에 서로의 방을 살곰살곰 쫓아가서 숨을 쉬는지 확인하며 지냈답니다.
격리 기간이 끝나고도 한 사흘쯤 넋놓고 멍때리며 지내다가 엊그제 주말에 가족들을 만나 함께 식사했어요. 두달이 넘도록 못만난 손주들은 훌쩍 커있고, 나이 40을 넘은 자식들도 반갑게 만났어요. 작은 선물들을 나눠주다보니 아들들과 사위 것만 빠졌더군요. 늘 손주들 것 먼저 챙기고, 며느리와 딸 것을 챙기는데 이상하게 아들이나 사위 것은 별로 신경을 안쓰게 되네요. 남자들도 이런 것을 서운해할까요? 아니겠죠? 손주들은 저희들끼리 노느라고 모두들 우리집에서 자고간다고 버텼고, 예쁘지만 귀찮은 아이들 다섯을 맡아 주말을 보냈네요. 아들 며느리 딸 사위가 1박2일 휴가를 받은 셈이지요.
모바일폰에 저장된 사진들을 몇 가지 꺼내봅니다.
에르딩에 있는 그리스 식당이에요. 벽면 장식인데요, 이것이 오브제를 설치한 것인지, 아니면 트롱포뢰유(trompe-I' oeil)인지는 한번 상상해보세요. 저희는 외식할 때 가끔 그리스 식당으로 가요. 해물요리가 넉넉하고 음식값도 싸거든요.
왼쪽 요리는 제가 선택한 메뉴. 하얀 통오징어가 세 마리, 엄청 큰 문어다리 한 개와 감자입니다. 언제나 저는 해물을, 남편은 고기를 선택해요. 옆은 식당 통유리창 밖 풍경이에요. 식당이 에르딩 공원과 붙어있어서 이런 연못을 볼 수 있지요. 유리창을 통해서 찍은 사진인데도 아름답네요.
이날 특별히 외식을 한 이유는 우리의 46번째 결혼기념일이었기 때문이죠. 그러고보니 고령사회인 요즘은 금혼식을 함께 기념하는 부부도 많을 것 같아요. 4년 후에는 우리 부부도 금혼식을 맞이하게 됩니다. 아직도 생경한 그의 언행이 보일 때가 있어서 깜짝깜짝 놀라기도 하고요, 말 안해도 눈빛, 아니 뒷모습만 봐도 속내를 다 알 수 있기도 해요.
왼쪽; 뮌헨의 마리님이 주신 독일의 명품 도자기 Hutschenreuther. 과분한 선물 어떻게 보답해야할지...
오른쪽; 철학자 진민님이 주신 작약꽃. 기사와 아틀라스와 대포 사이에 끼어 아름다움을 뽐내네요.
뮌헨에서 브런치 이웃님들 두 분을 만났는데 이렇게 선물을 받았어요. 우리의 결혼기념일 선물로 여기고 두분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위 동영상으로 보는 요리는 좀 특별하죠? 요리는 맛 이외에도 여러가지 요소들이 감각을 자극합니다.
스위스의 루가노와 다보스를 다녀왔어요. 루가노에서는 호숫가에 머물며 헤르만헤세가 거주하던 집을 방문했고, 다보스에서는 독일 표현주의 대표 화가인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 미술관에 갔었어요. 헤세와 키르히너에 관한 내용은 별도로 쓸 예정이에요.
루가노 호수의 구름낀 모습과 밝은 모습입니다. 호숫가의 날씨는 참 변덕이 심해요. 햇볕이 쨍하다가도 금방내 울음을 터뜨릴듯 어두워지더군요. 그곳에 있을 때 하루는 정말 무서운 장대비를 만났는데 사진에 담지는 못했어요. "퍼붓는다"는 말 외에 어떤 단어로 표현할 지 모르겠어요. 양동이에 한가득찬 물을 그대로 쏟아붓는 것처럼 비가 쏟아졌거든요.
몇백년이나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까요? 올리브나무가 시선을 끌었습니다. 저는 나무의 기둥밑둥을 보며 많이 놀랐답니다. 시간이 축적된 흔적이 경이롭습니다.
왼쪽 몬타뇰라 헤르만헤세의 집 현관에 붙은 사진, 오른쪽은 루가노에서 다보스로 넘어가는 길. 다보스는 해발 1560미터에 위치했답니다. 루가노 호수에서부터 그 높이까지 올라가는 길이 얼마나 아슬아슬하고 멋지던지! 지나온 길이 까마득히 아래에 있습니다.
헤르만헤세의 집에서 <데미안>을 샀습니다. 독일어 책을 저는 다 읽을 수는 없고요, 사촌에게 줄 선물로 샀지요. 명문대에서 독일어를 전공한 그가 한평생 전공과 상관없는 길을 걸어왔고, 지금 나이 70을 넘겼는데 이 책을 선물로 주고싶었어요. 본인은 읽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하는데... 늙어가는 나이에 이 책이 상서로운 바람이 되기를 바라며.
다보스 콩그레스입니다. 국기가 보이지요? 일본국기는 중앙에 자리잡았고, 눈을 씻고 봐도 태극기는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이 항상 다보스포럼에 대표단을 보내고 참가했는데... 태극기를 찾다가 눈에 안띄어서 서운했는데 일장기가 가운데 보이니 괜히 힘이 쭉 빠졌습니다. 회의에 참석했던 대표단은 왜 이런 것 하나도 항의를 못합니까? 그냥 속상했어요.
이제 저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물론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을 읽는 것도 한참 밀려있으니 부지런을 떨어야겠고요. 갑자기 많이는 읽지 못해도 제 글을 구독하시는 귀한 이웃님들의 글을 꼼꼼히 챙겨서 볼 것입니다. 저의 글은 그동안 쓰던 '풍속화'를 이어서 쓸 것이고, 가끔 생활이야기도 쓰려고 해요.
"조선과 서양의 풍속화"는 여행지에서 쓸 수가 없었어요. 제가 가진 모든 자료책들이 이곳 집에 있고, 여행지에서는 인터넷에서 검색된 자료밖에 참고할 수가 없었거든요. 이제 든든한 반려책(?)들이 곁에 있으니 다시 열심히 써야죠.
출판사에 넘긴 책 원고는 한창 편집중입니다. 교보문고 서가들을 훑어보며 내 책이 출간되어 여기 꽂혀있다면 누구의 눈에 띨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캄캄하더군요. 절대로 눈에 띨 수 없을 것 같아요. 어찌할까요? 책을 파는 건 출판사의 몫이겠지요. 저는 쓰는 사람이고요. 출판사와 첫 만남을 할 때 저는 제 의사를 분명히 밝혔습니다. 나는 소셜 미디어 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다. 인스타그람 팔로워같은 건 한 명도 없다. 그리고 내가 책을 사서 지인들에게 공짜로 기증하는 일도 절대로 안한다. 이렇게 확실히 말했는데도 출판사에서 괜찮다고 하며 출간작업을 시작했으니까 저는 책 판매에는 손 놓고 있어도 될는지, 슬쩍 불안하긴 합니다.
덥고 습한 날씨에 모두의 건강과 건필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