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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밥

by morgen

큰 며느리 친정에서 보내주신 콩을 독일로 가져왔습니다.

원래 제가 이런 것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늙은이라는 핑계로 좀 뻔뻔해진 것 같아요.

옆지기와 아들은 항상 저를 경계해왔고, 저도 잘 지켜왔답니다. 생물이나 식물의 씨앗을 외국에 함부로 가지고 다니지 않아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물론 우리나라로 가져가도 안 되고요. 그전에 네덜란드에서 정말 사고싶었던 튤립 구근도 꾸욱 참고 안 샀지요. 외국에 나올 때면 참깨도 생으로 안가져오고 볶아서 가져왔고, 콩은 아예 안 가져왔었지요. 그런데 이번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그냥 중간크기의 지퍼백에 콩을 넣어왔어요. 규정을 찾아보진 않아서 잘 모르겠으나 본인이 먹을 것 조금은 괜찮을 것 같아요.

우리 부부는 복용하는 약이 있는데 좀 오래 머물 경우에는 그 약처방전을 병원에서 영문으로 발급받아서 가지고 나옵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약에 대한 질문을 받아본 적은 없지만, 혹시라도 약 성분을 의심받을 수도 있을테니까 미리 준비를 하는 겁니다. 만약의 경우에 병이 생겨서 병원에 갈 경우에도 복용하던 약들을 의사에게 알려줘야 할 테니까요.

어쨌든 콩을 가져와서 맛있게 먹고 있답니다.


까만 콩은 잡곡밥으로, 흰콩은 콩국을 만들어서 두유처럼 마시거나 콩국수를 해먹고, 비지찌게도 할 수 있고요, 작은 콩은 콩나물 콩입니다.

콩나물 콩을 하루정도 물에 담근 후 구멍뚫린 용기로 옮겨 키우는 거에요. 포도가 담겼던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했어요. 빛을 보면 콩이 초록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검은 그릇으로 위를 덮어야해요. 가끔 생각날 때마다 물을 부어주기만 하면 잘 자랍니다.


적당한 길이로 자라면 우선 짧은 콩나물이 필요한 요리를 하고, 더 길면 그대로 긴 콩나물 요리를 하면 돼요. 우리는 콩나물 밥을 해먹었어요. 콩나물의 마지막 사진(아래 우측)을 보세요. 참 잘 자랐지요? 곧은 뿌리가 하나로 짧게 자라서 좋아요. 어떤 경우엔 뿌리가 지저분하게 여러 갈래로 자라는데 그러면 다듬어야 하거든요. 이제 그릇에 남은 것은 다 뽑아서 다듬어 냉장고에 보관할 거에요. 더 크면 안 좋으니까요.

주의할 것은 물빠짐이 좋아야 썩지 않으니까 바닥이 짝 달라붙게 놓으면 안돼요. 좀 띄워 놓아야해요. 그래서 물빠지는 그릇에 넣어두고 키운 겁니다.


이렇게 단순한 글 써도 되나요? 귀한 시간 내서 읽은 독자들은 좀 짜증나지 않을지... 초록이를 감상하시면 좀 나아지려나요?

아침에 눈을 뜨고 커튼을 젖히면 보이는 창 밖입니다. 이 동네는 건물이 높아야 3층정도로 낮은 집들이기 때문에 나무의 키가 집의 키보다 더 커요. 지은지 100년 가까이 되는 낡은 집에서 발걸음 옮길 때마다 삐그덕 거리는 불편함이 있지만 창밖의 초록색이 모든 불평불만을 다 덮어주네요. 특히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점은 목욕탕과 부엌에 활짝 열 수 있는 창이 있다는 것이죠. 한국에서 지금 이 집보다 더 좋은 아파트에 살을 때도 목욕탕에 창이 없었고, 주방에 있는 작은 창은 베란다로만 통했거든요.

저는 지금 마치 피난민 살림같은 보따리를 늘어놓고 살고 있지만 주변의 초록색으로 마냥 행복합니다.


다음 발행할 글은 좀 읽을 가치가 있는 글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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