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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Apr 17. 2023

섬 여행

기억 0416, 4월은 잔인한 달

북아트 작품; 아코디언 스타일 북 <바다에>


바다에

네가 아프면 나도 아파

너, 수많은 너들과

나, 수많은 나들이 뭉쳐진

우리, 우리들

그렇게

네가 아프면 우리도 아프다.

네가 울면 우리들도 다 운다.


2010년 3월 26일

해군 PCC772 천안함 피격으로 46명이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304명이

3월이면 흐드러지게 피는 진달래를

4월의 벚꽃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진도항(팽목항)과 목포신항에 다녀왔다.

나는 영정사진의 전체를 쓰윽 훑어봤고, 옆지기는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영정사진속 한 사람 한 사람과 모두 눈을 맞췄다. 

이제 스물 일곱, 스물 여덟쯤 되었을 단원고등학교 아이들(그때 고2), 대학을 졸업하고 병역의무를 마치고 취업을 했을 나이다. 이성친구와 손잡고 풋풋한 사랑을 나눌 나이다. 

나는, 우리 부부는 그들과 사실 아무런 관계도 없다. 남남이다. 그런데 4월이 되면 가슴이 아프다.

우리도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서, 그냥 '부모'라는 연대감으로 참척의 가슴을 안고 남아있는 그 아이들 부모의 아픔 언저리에 살짝 접근한다. 그래봐야 아주 옅은 아픔이겠지만...

그 당시 우리 손주와 나이가 같은 어린 아이가 침몰한 배안에 있어서 가슴이 저렸다. 권혁규, 아직도 흔적을 드러내지 않은 그 아기가 우리 손주와 같은 어린 아이라는 것, 다만 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아무런 관계도 없는 남남인 사이, 남의 아픔이 내게 전이되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털끝만큼만한 연대감은 같은 세상에서 같은 시간을 보낸다는 그것 만으로도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래서 아픔도 전이되고, 전이된 아픔은 위로의 손길이 되고,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 아닐까.


왼쪽- 목포 신항 세월호 거치장, 끝내 찾지 못한 다섯 명.  오른쪽-진도 팽목항 0416 기억관

그때 그 아이들은 지금도 새우깡을 좋아하고 있을까, 초코파이를 좋아하고 있을까, 콜라를 좋아하고 있을까...

영정사진 앞에 "조율시이" 이런 제사상을 차리지 않은 엄마들은, 자식의 제사상을 차리다니 이건 말도 안되는 일, 엄마들은 살아있는 아이들에게 하듯이 새우깡을 먹으라고 올려놓고, 초코파이와 콜라를 올려놓았다. 너희들 어서 먹어, 좋아했잖아, 어서 먹어. 나도 우리 아이들의 엄마인데, 엄마인 내 가슴이 어찌 찢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

목포 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팽목항에서 노란리본이 낡고 삭은 채 매달려있는 것을 보고 옆지기는 관리를 않고 방치한다고 속상해했다. 목포 신항쪽에 매달린 노란리본들은 그렇게 삭은 것은 없었다. 옆지기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나는 생각했다. 낡고 헤지고 삭아서 거의 찢겨나간 리본을 정리할 필요는 없다. 그대로 두는 것이 무관심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관심일 수도 있다. 잊지않겠다고 다짐하며, 좋은 곳으로 가라고 염원하며 매단 리본들인데 그것을 어떻게 떼어낼 수 있나... 혼자만 생각했다. 관리를 안하는 것에 속상해하는 옆지기 마음을 건드릴 필요는 없어서.


수학여행길에 오른 아이들

너희들은 이제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배를 타지 않아도 제주도에 갈 수 있겠구나

모두들 나비가 되어 스스로 날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

예쁜 나비가 되어 

멀리멀리 날아간 너희들

오늘 밤엔 

네 아비의 꿈속으로 날아오너라.

네 어미의 품속으로 날아오너라.



단원고등학교 학생이 아니어서, 소속된 단체가 없어서, 개인의 목소리는 너무 작아 들리지 않던 시간들, 낱낱이 흩어져 홀로 아픔을 견뎌야했던 일반인 승객들에게도 추모의 마음을 전합니다. 시신 수습을 하지 못한 다섯 분, 어느 곳에 계시든지 우리들 마음이 거기 함께 있음을 알립니다. 편한 영면을 기원하며. 

아, 진정 4월은 잔인한 달입니다.



시인 엘리옷의 <황무지 The Waste Land by T.S. Eliot>에 나오는 구절 "4월은 잔인한 달"은 매년 4월 마다 소환되는(?) 구절이다. 말로 글로 흔히들 사용하는 "4월은 잔인한 달"이 원작자의 뜻에 맞든 변형되었든 엘리옷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되풀이하는 말이다. "4월은 잔인한 달". 어떤 단체에게도 개인에게도 걸핏하면 4월은 잔인한 달이다. 

옆지기는 대학시절에 <황무지> 전체를 필사했고, 통째로 읊었었다. 나는 몇 구절만 알 뿐이다. 우리는 독일에 갈 때 마다 '슈탄베르그 호수 Stsrnberg See'에 가고, 다 잊어버리고 기억에 남은 몇 구절의 <황무지>를 슈탄베르그 호숫가에서 읊는다. 이제 그 몇 마디마저 점점 잊혀지겠지만...

그가 필사한 대학시절 노트 표지를 갈아서 새로 만들었다. 다행히 내가 그것을 할 수 있어서.


우주를 상징하는 이미지의 수제 마블지로 표지를 새로 하고, 면지는 한지를 사용.  가운데는 <황무지> 필사 부분.
<황무지>의 시작.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노란 밑줄 추가.




진도 앞바다, 왼쪽-발가락섬, 중앙-손가락섬, 오른쪽-세방낙조 관망대 길


세방낙조 관망대에서 일몰을 보았다. 날씨가 흐린 탓에 환상의 낙조 감상은 못했지만 저물어가는 시간속에 잠겨 묵상을 했다. 뜨거운 불덩이를 품는 바다를 보고싶었는데 흐린 날씨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구름이 끼어있어서 해가 바다물에 잠기기 전에 구름속에 가려졌다. 

2023.04.10. 왼쪽부터 18시42분, 18시51분, 18시55분.


2023.04.10. 오른쪽부터 18시59분, 19시, 19시1분.


2023.04.10. 19시4분 일몰.


다도해 상조도 관망대에서 바라본 바다.

섬여행은 계획했을 때의 예상과 완전히 빗나갔다. 

어항에 드나드는 통통배, 활기찬 어촌마을, 검게 그을은 어부들, 그건 옛날 이야기였다.

우리가 포항과 구룡포에 가서 알아볼 때는 그곳엔 큰 배들만 있고 작은 어선은 없으니 남해바다에 가보라고 했었다. 진도 앞바다 다도해. 젊은이들은 육지로 떠나고 노인들이 섬을 지키고 있다. 어선을 타고 출항할 젊은이들은 없고 해초를 긁어 햇볕에 널어놓고 말리는 노인들만 있다. 해풍쑥 농사를 짓는다.  배는 낚싯배가 주를 이룬다. 진도 앞바다 조도군도에 있는 상조도 하조도는 큰 섬에 속한다. 그곳 식당에서 우리는 목포에서 사왔다는 갈치로 조리한 음식을 먹었다. 물고기는 낚시로 잡는 것 뿐이다. 2박3일 섬사람들과 어울려 생생한 대화도 하고, 바다에 시선을 두고 한없이 물멍때리기도 하면서 지내려 했었는데 당일에 진도로 나와버렸다.  진도에서 저녁 7시가 넘으니 8시도 안됐는데 거의 모든 식당이 문을 닫아서 난감했다. 선뜻 내키지 않는 모텔에서 자동차 트렁크에 넣고 다니던 시리얼과 장기보관 멸균우유를 저녁으로 먹었다. 먹을 것을 안 가지고 다녔다면 옆지기는 저혈당으로 쓰러질 뻔했다. 

다음 날 만재도에 갈 계획을 포기하고 목포에 머물렀다. 목포에서는 삭힌 홍어를 실컷 먹었다. 잠자리도 깨끗하고 편했다. 목포는 도시가 깨끗하게 정돈된 느낌이다. 한달 살기 해볼까하는 생각도 든다.

5월 어느 날, 우리는 만재도에 가기로 했다. 


다도해 하조도 등대, 관망대, 조형물

진도항에서 여객선(카 페리)을 타고 하조도(창유리)에 갔다. 여행은 사람을 들뜨게 만드는가. 단체여행객인 아주머니들은 모두들 소프라노, 아니 여자지만 최고의 테너음색으로 대화를 했다. 보청기가 필요하신 분들 같았다. 남자분들 몇 분 끼어있었는데 일행인 여자분들이 '김박사님' '박사장님' 부르면서 알뜰히 챙긴다. 김박사님도 박사장님도 얼마나 부끄러우셨을까... 배가 움직인지 5분도 채 안되어 맥주캔을 따기 시작한 그분들의 자유가 은근히 부럽기까지... 평생 그렇게 맘대로 살아보지 못한 내가 바보같다.


5월, 우리는 만재도에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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