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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Sep 20. 2023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
<세 명의 노부인들>

다보스 키르히너 뮤제움 전시작품


2022년 6월 다보스에 있는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 뮤제움에서 그의 작품들을 만났습니다.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Ernst Ludwig Kirchner <세 명의 노부인들 Die drei alten Frauen /The three old women> 1925. 캔버스에 유채. 110 x 130 cm . 키르히너 뮤제움, 다보스, 스위스.


전시장에 들어서서 휘익 둘러보는 순간 제일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그림이다.  세 명의 신부님들이라고 생각하며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신부님들은 아니다. 캡션을 보니 <세 명의 노부인들>이라는 제목이다. 키르히너의 우울이 묻어있는 색감이다. 푸른 빛, 보라색, 물감에 우울 한 덩어리 풀어서 칠했다. 

녹색의 어둠을 배경으로 발끝까지 검은 옷으로 덮인 세 사람이 우뚝 서있다. 사람이 어찌 산보다 클 수 있을까? 그림 정면을 가득 채운 검은색 드레스의 세 사람은 마치 알프스 산간에 전설처럼 존재하는 신화 속 주인공 같은 느낌이다. 키르히너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운명의 세 여신(모이라이 Moirai / 로마신화 파르카이 Parcae)을 마음 속으로 상상했다고 한다. 실제 모델은 키르히너가 다보스로 이주한 후 살던 슈타펠알프의 뤼쉬Rüesch 세 자매들이다. 그림 제목을 <세 명의 뤼쉬 자매 Die drei Schwestern Rüesch>로 부르기도 한다.

다보스 고산시대 목초지 공기속에서 보낸 세 자매의 얼굴에 세월의 흔적이 담겨있다. 얼굴을 저렇게 색칠한 작가의 의도는 어느 곳에도 설명이 없다. 표현주의 작가의 과감한 색칠이려니...

해석이 필요없는 작품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파란 색, 붉은 색, 녹색이 모여 얼굴을 이루고 있다. 하늘과 땅과 목초지가 얼굴에 다 담겨있는 것 같다. 슈타펠알프의 원초적인 색채가 평생을 그곳에서 늙어가는 세 여인의 얼굴 속에 다 들어있다. 키르히너씨, 당신의 생각도 그러했나요? 전혀 아니라구요? 괜찮아요. 감상하는 사람은 작가가 아니라 관람객이니까요. 키르히너씨 당신이 아니라 나니까요, 내 마음대로입니다.

다시 상상을 이어간다.

세 자매의 눈매에서 운명의 여신을 본다. 왼쪽(보는 사람의) 노인의 눈은 크다. 태중의 인간을 10달동안 관장하는 “실 잣는 여신 (클로토/ 노나)”이라고 하자. 가운데 노인의 눈은 적당한 크기이다. 인간 생명의 길이를 “할당하는 여신(라케시스 /데키마)"이다. 오른쪽 노인은 실눈을 뜨고있다. 생명의 실타래를 자를 역할을 담당하는 “되돌릴 수 없는 여신(아트로포스 /모르타)"이다. 상상이지만, 그림 속 노인들이 운명의 여신이라면 지금 내 운명의 실은 어느 노인의 손에 잡혀있을까? 라케시스의 손은 이미 실(나의 생명)의 길이를 재고 할당해놨을 것이다. 그럼 나는 아트로포스의 손에 잡혀있단 말인가. 되돌릴 수 없이, 가차없이 가위로 싹둑 실을 끊을 준비를 하고있는 저 실눈을 가느다랗게 뜨고있는 노인의 손에.

작품을 만든 창작자에게 다가가고 그의 의중을 꿰뚫는 것만이 감상은 아니다. 창작자가 제공한 작품을 바라보면서 한 편의 소설을 쓰는 것은 감상자의 권리이다. 이 그림 앞에서 그 권리를 누렸다.


<발코니 Balkonszene /Balcony Scene> 1935. 캔버스에 유채. 136x178Cm. 키르히너 뮤제움, 다보스, 스위스.


발코니에 한 쌍의 부부가 마주 앉아있다. 키르키너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접근하기 쉬운 것처럼 보인다. 이 그림에는 직선 도형과 곡선 도형이 어우러져 있다. 파라솔은 삼각형이고, 파라솔이 만드는 그늘은 평행사변형이다. 수평과 수직선으로 이루어진 발코니 난간은 몇 개의 사각형을 품고있다. 부드러운 곡선을 보이는 의자 등받이, 남자의 머리위 모자는 곡선이다. 파라솔의 둥근 그림자는 짙은 색으로 여자의 다리 위로 떨어져있다. 그들 사이에 놓인 테이블로 착각하기 쉽다. 호평을 하자면 조화가 잘 이뤄진 그림이고, 혹평은 모순 덩어리의 통합이다. 테크에 누워있는 개는 짙은 그림자속에 들어있어 선뜻 눈에 띄지않는다. 

이 그림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남자와 여자의 얼굴이다. 여자 얼굴은 마치 두 사람이 겹쳐진 느낌이고, 남자 얼굴은 옆모습만 그린듯하다. 포인트는 얼굴에 칠한 파란 색 부분이다. 여자의 머리와 목을 살펴보면 얼굴은 하나인데 코와 입술윤곽을 또렷이 표현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남자 얼굴도 파란색으로 코와 턱의 윤곽을 뚜렷이 표현했다. 입체파 그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중 얼굴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인간의 이중적인 내면을 나타낸 것 아닐까? 

남자의 머리 위에 우산이 솟아있어 꼿꼿한 남성상을, 여자를 부드럽게 감싼 듯한 산의 나무들과 오렌지색 그림자는 여성의 약함을 나타낸 것일지도 모른다. 그 시대에는 남녀를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던 시대였으니까. 


<교회가 있는 여름 다보스 Davos mit Kirche;Davos im Sommer / Davos with Church; Davos in Summer> 1925. 캔버스에 유채. 121 x 170.5 cm. 키르히너 뮤제움, 다보스, 스위스.


다보스 거리에서 시선을 산쪽으로 향하면 어디에서나 흔히 보이는 풍경이다. 서있는 높이에 따라 이러한 풍경은 시선 위쪽일 수도 있고, 시선 아래쪽일 수도 있다. 어쨌든 가슴에 남아있을 다보스에 대한 인상이다. 키르히너 그림의 풍부한 색상과 그의 주관적인 색채가 파노라마로 펼쳐진 그림이다. 

그림은 남쪽 계곡 끝과 틴젠호른Tinzenhorn이 배경이다. 틴젠호른 산은 키르히너의 그림 속에 많이 등장한다. 보라색으로 초록색으로 핑크색으로... 갖가지 색상으로 그렸다. 가운데 뾰족탑이 있는 교회와 평평한 지붕의 아파트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흔한 풍경이다. 유럽 도시 풍경 그림을 보면 이런 구도가 흔하다. 교회 지붕이 오니언 돔 Onion dome이냐 뽀족탑이냐가 다를 뿐이다. 

얼핏 박목월의 시 <산도화>의 구절이 생각나기도 한다. "산은 구강산/ 보라빛 석산". 그야말로 얼핏 지나간 생각일 뿐, 박목월이 묘사한 보라빛은 아니다. 표현주의 화가의 색감과 키르히너의 독특한 색이 합해져 묘사된 보라색이다. 핑크빛이 감도는 보라색.


다보스 프라우엔 교회 (Frauen Kirche)


<가을의 세르티그 계곡 Sertigtal im Herbst / Sertig Valley in Autumn> 1925/26. 캔버스에 유채. 136x200Cm.  키르히너 뮤제움, 다보스, 스위스.


아름다운 가을 산을 보고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누구라도 찰칵찰칵 셔터를 누르느라 바쁠 것이다. 그림 속에서도 붉은 나무들이 가을을 말해주고 있다. 색상은 밝다. 전쟁을 겪고 사람들이 우울증에 시들어가도 자연은 똑같이 무성하다. 

청색 울타리 속 사람들은 산을 지키는 보초처럼, 또는 토템 기둥처럼 놓여있다. 산으로 뻗은 핑크색 길은 느리게 기어가는 뱀처럼 산계곡을 훑어 올라간다. 예술적인 영감은 자연에서 많이 얻게되는데 세르티그 계곡이 키르히너의 눈길을 피해 숨어있을 리 없다. 

또 생각나는 한 사람은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1955)이다. 독일의 대 문호 토마스 만은 그의 아내가 폐렴증상으로 다보스의 요양원에 입원했을 때 소설 <마의 산 Der Zauberberg>을 썼다. 그 책속에 다보스의 산이 준 영감이 숨어있다.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다보스에 가면, 슈타펠알프에 오르면, 틴젠호른 산자락을 밟으면, 세르티그 계곡에 서면 나도 아티스트가 될까? 대단한 화가? 문학가? 가끔은 망상에 사로잡히는 것도 좋다. 순간의 행복이니까.


https://stock.adobe.com/kr/search?k=sertigtal&asset_id=541073932 

세르티그 계곡의 실제 가을 모습. 


다보스 키르히너 미술관 전시장 내부.  


다보스 기행문은 따로 쓸 예정입니다.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토마스 만의 <마의 산> 책리뷰도 욕심을 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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