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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Oct 02. 2023

신윤복 <월야밀회>

‘밀회’는 남몰래 만남을 뜻한다. 왜 몰래 만나야할까? 비밀이기 때문이다. 왜 비밀이어야할까? 금지된 만남이기 때문이다. 금지된 사연은 여러가지일 것이다. 로미오와 쥴리엣처럼 가문끼리 원수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미 배우자가 있는데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분이 달라 맺어질 수 없는 사이일 수도 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금지된 사랑은 수백 년 동안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되어왔다. 영화나 소설 속 애틋한 ‘밀회’는 안타깝고, 심지어는 아름답기까지 하다. 타인에게 불행을 안겨주는 밀회는 영화관람자나 소설독자를 분개하게 만든다. 작품 속 밀회의 주인공들은 영웅과 순정녀 커플이기도 하고, 배신자와 마녀 커플이기도 하다.

밀회는 시쳇말로 ‘로맨스’와 ‘불륜’이라는 말로 대치되기도 한다. ‘불륜’은 ‘상간’이라는 낯뜨거운 단어와 연결된다. 흔히들 말하기를 불륜의 당사자를 상간남, 상간녀라고 한다.

상간相姦의 사전 풀이는 “남녀가 도리를 어겨 사사로이 정을 통함.”이다. 상간의 다른 한자음으로는 상간桑間이 있다. ‘뽕나무 사이’라는 뜻으로 지명이다.

 『예기禮記』 <악기樂記>에 “상간·복상의 음악은 망국(亡國)의 음악이다. 桑間濮上之音 亡國之音也(상간복상지음 망국지음야)”라는 글에 상간이 등장한다.

이를 근거로 조선왕조실록에도 상간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중종 5년(경오, 1510)10월 13일(병신) 기록 (주 315)
상복(桑濮)의 음악 : 상간(桑間) 복상(濮上)의 음란하고 퇴폐한 음악. 상간은 땅 이름, 복상은 복수(濮水)의 물가라는 뜻인데, 그 곳에 뽕나무가 많아서 남녀의 밀회가 성행하였으며, 음란한 노래가 이곳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1  

상간相姦이 상간桑間지역에서 흔히 이뤄졌다는 것이다. “뽕나무 밭에서 통정을 했다.”는 말은 수백년 전부터 있어온 이야기인가? 증명할 수는 없지만 『예기禮記』 <악기樂記>에서 흘러나온 말이 아닐까 짐작을 해본다.


금지된 밀회가 들통나 처벌을 받은 기록이 종종 눈에 띈다.

세종실록에는 음부 유감동兪甘同에 대한 논의가 있는데 바로 그 이튿날 유감동과 관계한 간부奸夫들에게 형벌을 내린 것을 기록에 남겼다.

세종9년(정미, 1427) 8월17일(임신) 기록
임금이 대언 등에게 묻기를,
"사헌부에서 음부(淫婦)  유감동(兪甘同)을 가뒀다는데, 간부(奸夫)는 몇이나 되며, 본 남편은 누구인가. 세족(世族)이 의관(衣冠) 집의 여자인가." 2
세종9년(정미, 1427) 8월18일(계유) 기록
사헌부에서 계하기를,  
"평강 현감(平康縣監) 최중기(崔仲基)의 아내 유감동(兪甘同)이 남편을 배반하고 스스로 창기(倡妓)라 일컬으면서 서울과 외방(外方)에서 멋대로 행동하므로 간부(奸夫) 김여달(金如達)·이승(李升)·황치신(黃致身)·전수생(田穗生)   ·이돈(李敦)이 여러 달 동안 간통했는데, 근각(根脚)을 알지 못하므로 수식(修飾)해서 통문에 답했으니 직첩을 회수하고,감동과 함께 모두 형문(刑問)에 처하여 추국(推鞫)하기를 청합니다."  
하니, 윤허하였다. 3  

밀회는 동서양을 가리지않고 이뤄졌다. 1856년에 쓴 플로베르 (Gustave Flaubert,. 1821~1880)의 걸작 소설 <마담 보바리 Madame Bovary>에 나오는 엠마 보바리의 밀회는 그녀를 자살로 이끌었다. 밀회의 결과가 아름다운 이야기도 있을까? 어떤 밀회는 가슴이 아릿하니 애틋하고, 어떤 밀회는 화를 돋군다.

조선시대 풍속화에서 밀회장면을 살펴본다.


신윤복 <월야밀회> 《혜원전신첩》. 19세기 초반, 종이에 채색, 28.2×35.6cm, 국보135호,

간송미술관 소장. CC BY 공유마당.


첫눈에 기시감이 있는 그림이다. 신윤복의 <월야정인>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림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부감법俯瞰法 구도로 그렸다. 담장 안 조경수보다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구도이다. 달빛 아래 몰래 만난다는 제목만 들어도 은밀한 이야기를 상상하게된다.

남자의 차림새가 전립氈笠을 쓰고 전복戰服에 남전대藍纏帶를 매었으며 왼손에 휴대용 무기인 철편鐵鞭을 들고 있다. 영문營門의 장교將校 차림이다. 오른쪽에는 남녀를 바라보는 여인이 옆 담장에 바짝 붙어 서있다. 여인은 사람의 기척에 무척 신경쓰면서 가슴을 졸이고 있는 듯하다.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벽에 얼마나 착 붙으려고 노력했으면, 발 모양까지 일(一)자로 하여 서 있을까? 커다란 얹은머리에 떨잠이 꽂혀있다.  조선 시대에 왕비를 비롯한 상류 계층 여자들이 의식 때 꽂았던 머리 장식이다. 바로 이 연인이 밀회를 성사시킨 장본인일까? 헤어졌던 남녀의 재회를 주선하였는지, 아니면 불륜의 현장을 목격해서 분노에 떨고 있는 건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기생이 저 둘의 밀회를 위해 망을 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둘의 밀회가 기생에게 들킨 장면일 수도 있다. 등장인물 셋이 삼각관계? 밀회의 주인공인 남자의 부인아닐까? 그러고보니 눈매가 측은하고 슬퍼 보인다. 남편의 외도를 목격한 부인의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분하겠지만(돌부처도 돌아 앉는다고 한다), 조선시대 칠거지악七去之惡중 하나인 투기는 시집에서 쫓겨나기 때문에 참아야 하는 여인은 속이 터질 듯.

차림새가 여염의 여인은 아니다. 조선왕조 시대의 화류계를 주름잡았던 사람들이 대개 각 영문의 군교나 무예청별감 같은 하급 무관들로서 이들이 기생의 기둥서방 노릇을 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아닐까? 그들에겐 이러한 애틋한 밀회가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노상에서 체면 없이 여인을 끌어안는 것은 둘이 만나기 어려운 관계인 때문일 것이다.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버린 옛 정인 관계일까? 줄이 닿을만한 여인에게 구구히 사정하여 겨우 불러내는데 성공했는데 다시 헤어져야만 하는 듯하다. 애틋한 사연은 감상자가 상상으로 써내려갈 일이다.

많은 사람이 신윤복의 그림을 보고 일상에서 표출되는 인간의 다양한 욕망이 생동감 있게 담겨 있다고 말한다. 신윤복은 막중한 무게의 유교적 도덕관에 짓눌린 인간의 욕망을 표현함으로써 유교의 허상을 드러냈다. 그 시대 여인들의 사회적 위치를 보여주었다.

 

보름달이 저 정도 높이에 위치해 있으면 초저녁이다. 깊은 밤이 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사연이 있는가? 통행금지 시간이 되기 전에 만나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인 샤이에 롱 Charles Chaillé-Long (1842–1917)은 1880년대 말 조선의 야간 통행금지 후의 풍경을 기록으로 남겼다.

인경이라 불리는 커다란 종이 울리면 조선인들은 부랴부랴 자신의 집으로 발길을 재촉해야만 한다. 아울러 모든 상점 문이 닫히고 인파로 북적대던 거리가 눈 깜짝할 사이에 황량한 적막에 휩싸인다. (……) 그럭저럭 밤이 깊어가고 어둠이 온 도시를 휘감는 순간 이따금 어슬렁거리며 순찰을 도는 순사들이 거들먹거리며 흔들어 대는 철봉의 쇠사슬 소리만 어렴풋이 정적을 깨뜨린다. (……)
(샤이에 롱, 「코리아 혹은 조선」, 조정육, 『조선의 미를 사랑한 신윤복』,
 아이세움, 2014, 88쪽에서 재인용)
밤이 되자마자 짙은 어둠이 도시를 뒤덮고 쇠사슬이 달린 희귀한 경찰 몇 명을 제외하고는 침묵이 거의 깨지지 않습니다. 그 소음은 멀리서도 들립니다. 멀리 이동하고 그들을 막지 않기 위해, 또는 그들이 국가의 약국과 도로에 제공하는 서비스 외에도 쿨리 거주지의 충실한 수호자이기도 한 개 짖는 소리로. 성문은 저녁 8시경에 닫히며, 수호병들이 문을 여는 규정시간인 새벽 3시 이전에는 누구도 출입할 수 없습니다. 4


인용

1 https://sillok.history.go.kr/id/WKA_10510013_001   

2 https://sillok.history.go.kr/id/kda_10908017_002  

3 https://sillok.history.go.kr/id/kda_10908018_003  

4 https://fr.wikisource.org/wiki/Page:Charles_Chaill%C3%A9-Long_-_La_Cor%C3%A9e_ou_Tch%C3%B6sen.djvu/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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