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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Jun 02. 2023

김홍도  <주부자시의도朱夫子詩意圖>1

개요, 2폭 춘수부함도, 3폭 만고청산도, 4폭  월만수만도

<주부자시의도朱夫子詩意圖>는 김홍도가 1800년 정초에 정조(正朝)에게 진상한 8폭 병풍이다. 그 가운데 여섯 폭이 남아있고, 제1폭 <사빈신춘도泗濱新春圖>와 제5폭 <백운황엽도白雲黃葉圖>는 전해지지 않는다.


오래 전에 미술관에서 <주부자시의도>를 설명했었다. 그때는 눈에 보이는 그림만 수박겉핥기 식으로 설명하고 넘어갔다. 시간 관리도 중요하고, 듣는 관람객의 지루함을 유발하면 안되었다. 혼자 잘난 척하면서 어렵게 설명하면 그건 설명이 아니라 '자기과시'가 된다.  '자기 지식자랑'의 경계선을 넘지 않아야 한다. 그렇게 제한된 설명을 했다. 이제와서 솔직히 고백하자면 실제로는 그림이 담고있는 근본내용을 나 자신이 깊이 이해하지 못했다. 공부가 많이 부족한 채로 관람객 앞에서 입만 나불거렸다. 언젠가는 이걸 좀 깊이 파봐야겠다는 다짐을 마음 속에 넣어뒀었는데 십년 세월도 지난 지금 다시 펼쳐본다. 이곳은 대면한 관람객과 소통해야 하는 전시장이 아니다. 지면에서 아무 제한없이 천천히 내가 본 그림을 독자들과 함께 볼 것이다. 작품 개요와 그림 여섯 폭을 설명하기에는 너무 길어서 두 번으로 나누려고 한다. 이번 글에 그림 2번째 폭과 3, 4번째 폭을, 다음 글에 6,7,8번째 폭을 설명할 것이다. 첫번째와 다섯번째는 전해지지 않는다.


그림에는 "心醉好山水"(심취호산수-좋은 산수에 마음이 취하네)로 각인된 김홍도의 백문타원인白文楕圓印이 있어 김홍도 그림임이 확인된다. 주문방인朱文方印은 "臣弘道"로 어람용임이 밝혀지고, 아래 위로 나란히 찍힌 백문방인白文方印은 "醉畵士"이다.

조선의 치국이념은 성리학性理學이다. 정조시대에는 성리학이 중심사상으로 더욱 강화되었고, 김홍도는 정조의 총애를 받는 화원이었다. 정초에 정조에게 바친 그림, 어람御覽용 작품으로 당연히 성리학적 성격을 띠고있다.

 <주부자시의도>는 주희朱熹(1130-1200)의 시詩 칠언절구七言絶句를 [대학大學]의 팔조목八條目으로 해석하여 그렸다. [대학]을 읽었든 안읽었든 흔히 잘 알고있는 팔조목이다. 팔조목을 다 기억하지 못해도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수시로 인용하는 말이 아닌가. 팔조목을 다 꼽자면 "격물 치지 성의 정심 수신 제가 치국평천하"이다. 정조의 시문집 [홍재전서]에 기록으로 남아있다.


한국고전종합DB 《홍재전서(弘齋全書)》 해제

정조가 1800년에 지은 근화주부자시(謹和朱夫子詩)는 김홍도의 ‘주부자시의도(朱夫子詩意圖)’란 8폭의 병풍 그림을 보고 그 소감을 피력한 시이다. 김홍도의 그림은 같은 해 정초에 주자의 칠언 절구 8수를 소재로 한 것이었는데, 이는 바로 [대학]의 팔조목 즉 물리도(物理到), 지치(知致), 성의, 정심, 신수(身修), 제가, 시민(視民), 천하평(天下平)을 표현한 것이었다.  출처:한국고전번역원 김문식(金文植), 신승운(辛承云).1998.


정조正祖와 [대학大學]

[대학]은 20여년 전에 활자만 읽고 덮어뒀던 책인데 다시 훑어본다. 활자는 그대로인데 다른 뜻이 느껴진다. 노란색 밑줄이 "8조목"으로 바로 김홍도의 <주부자시의도> 내용이다.  

<大學 . 中庸集註> 譯註 成百曉. 발행-사단법인 전통문화연구회. 1995 재판6쇄. 25쪽.


아래 사진은 [홍재전서] 판본 사진이다.

홍재전서 제182권 / 군서표기(羣書標記) 4. 어정(御定) 4. 대학유의(大學類義) 20권 간본(刊本) -기미년(1799, 정조23) 편찬.

번역

제1권이 제왕위치지서(帝王爲治之序)와 제왕위학지본(帝王爲學之本)이고, 제2권에서 제3권까지는 격물치지지요(格物致知之要)이고 - 명도술(明道術)ㆍ변인재(辨人才)ㆍ심치체(審治體)ㆍ찰민정(察民情)의 4항목이다. -, 제4권은 성의정심지요(誠意正心之要)이고 - 숭경외(崇敬畏)ㆍ계일욕(戒逸欲)ㆍ심기미(審幾微)의 3항목이다. -, 제5권은 수신지요(修身之要)이고 - 근언행(謹言行)ㆍ정위의(正威儀)의 2항목이다. -, 제6권은 제가지요(齊家之要)이고 - 중비필(重妃匹)ㆍ엄내치(嚴內治)ㆍ정국본(定國本)ㆍ교척속(敎戚屬)의 4항목이다. -, 제7권에서 제20권까지는 치국평천하지요(治國平天下之要)이니 - 정조정(正朝廷)ㆍ정백관(正百官)ㆍ고방본(固邦本)ㆍ제국용(制國用)ㆍ명예악(明禮樂)ㆍ질제사(秩祭祀)ㆍ숭교화(崇敎化)ㆍ비규제(備規制)ㆍ신형헌(愼刑憲)ㆍ엄무비(嚴武備)ㆍ어이적(馭夷狄)ㆍ성공화(成功化)의 12항목이다. -, 모두 20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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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화가들은 그림을 잘 그릴 뿐 아니라 대부분 시서화詩書畵에도 능했다. <주부자시의도>야말로 시서화의 종합예술 작품이다. 주자의 원시原詩, 웅화熊禾(1247-1312 )의 주註, 정조의 화운시和韻詩, 김홍도의 화제시畵題詩가 들어있다. 이들의 시에 관한 이해도 함께 해야 좀더 원작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주부자시의도>의 낱폭에는 원래 제목이 없다. 미술사학자 오주석吳柱錫(1956-2005)이 그림 속 시와 회화적 내용을 종합하여 각 폭에 이름을 붙였다.


영조英祖와 [대학大學]

[대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정조 때 시작된 것이 아니다. 영조가 세손 정조에게 [대학]을 강조했다. 왕세손으로 책봉(1759)된 이듬해(1760) 정초부터 세손강학을 시작했고, 그해 6월 [소학]을 마치자 바로 [대학] 공부에 들어갔다.


영조 36년(1760) 6월21일(계사) 기록.

강서원(講書院)에서 계품하기를,
"왕세손이 《소학(小學)》의 강독을 이미 마쳤으므로 《대학(大學)》을 이어서 강독하되, 《사략(史略)》 책자도 가져다가 그 줄 수를 헤아려서 고적(古蹟)을 토론하겠습니다."하니,
임금이 말하기를,"《대학》은 주석을 빼놓고 하되, 많이 하려고 애쓰지 말고 쉬는 날이나 임강 전에는 혹 《소학》도 읽도록 하라."하였다. 출처: 조선왕조실록.

왕세손(정조)은 2개월여만에 [대학]을 마치고 [논어]에 들어갔다. 나이 아홉살이었다.


영조 36년(1760) 8월27일(무술) 기록.

강서원(講書院)에서 왕세손(王世孫)이 계속하여 《논어(論語)》를 강(講)할 것을 계품(啓稟)하였다. 출처: 조선왕조실록

영조는 1776년 3월에 승하했다. 그의 생애 마지막까지 [대학]을 강의하고, 왕세손(정조)에게 성군이 되기를 당부하였다.


영조 52년(1776) 1월20일(임진) 기록.

임금이 집경당(集慶堂)에 나아가 주강(晝講)하여 《대학(大學)》을 강(講)하였는데, 왕세손이 시좌(侍坐)하였다. 임금이 세손에게 이르기를,
"너는 신하들이 주대(奏對)할 때에 마음에 맞지 않는 것이 있더라도 반드시 넉넉하게 수용하고 너그러이 용서해 주고서 우선 뒷날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니, 만일 취할 바가 있다면 천금(千金)을 얻는 것과 같을 뿐이 아닐 것이다." 하고, 또 하교하기를,
"대신(大臣)을 공경하고 뭇 신하를 예우하는 것은 임금이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임금이 된 자는 높은 자리에 있으므로 번번이 뭇 신하를 낮추어 보는 마음이 있으니,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고, 또 하교하기를,
"반드시 네 할아비의 오늘 〈부탁한〉 마음을 생각해야 한다. 대개 편안한 것을 좋아하고 부지런하기를 좋아하지 않기가 쉬우니, 너는 힘쓰라." 하였다. 출처: 조선왕조실록

이러한 교훈이 어찌 옛날 조선의 왕에게만 필요한 이야기겠는가. [대학]의 8조목을 공부하고 가슴에 새기면 그 치하에 있는 국민들이 행복하련만... '참어른'이 절실히 필요하고, 간절히 그리운 시절이다.


시의도 詩意圖

시詩에 대한 감상을 표현한 그림을 '시의도'라고 한다. 현대용어로 '시화詩畵'와 같다.  사진이 발달한 요즘은 '디카시'라는 용어도 있는데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에 시를 곁들이는 것이다. 중국 북송北宋의 화가 곽희郭熙(1023-1085)는 [임천고지林泉高致]에서 "시는 형상이 없는 그림이고, 그림은 형상이 있는 시"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조시대에 특히 시의도가 발달했다.


주부자 朱夫子

주희朱熹(1130-1200)는 남송南宋의 유학자이다. 주자朱子, 주부자朱夫子, 주문공朱文公은 존칭이다. 주희의 봉호는 송태사휘국문공宋太師徽國文公이다. 성리학을 창시하고 완성시켰다.

'주부자朱夫子'는 존칭으로 '자子' 가 '스승님, 선생님'을 의미한다. 공자의 이름은 '공구孔丘', 맹자의 이름은 ‘맹가孟軻’인데 감히 스승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아 '공자' '맹자'로 부르는 것과 같다. '부자夫子'도 같은 존칭이다.

주자는 [대학(大學章句)] <서序>에서 [대학]이 나라에서 백성을 교화시키고 아름다운 풍속을 이룩하려는 의도와, 학자들이 자신을 수양하고 백성들을 다스리는 방도에 도움을 준다고 뜻을 밝혔다. "國家化民成俗之意 學者 修己治人之方"

일찌기 [대학]을 공부한 정조는 늘 주자의 가르침을 가슴에 담고 있었다. 정조실록의 여러 부분에서 주자를 존경하는 정조의 마음이 드러난다.


정조 23년(1799) 7월16일(임신) 기록.

연경에 가는 사신들에게 하유하였다.
"주부자(朱夫子)는 곧 공자 이후 일인자이다. 당요(唐堯)·우순(虞舜)·하우(夏禹)·상탕(商湯)의 도는 공부자(孔夫子)가 태어남으로써 밝혀졌고 공자·증자·자사·맹자의 학문은 주부자가 태어남으로써 전해졌으니, 주부자가 높아진 뒤에야 공부자가 비로소 높아지게 되어 있다.
천지를 위하여 중심을 세우고 백성을 위하여 천명을 세우고 자손만대를 위하여 태평을 열어놓았으며, 떳떳한 가르침을 끝없는 우주에 밝히고 올바른 법도를 당대에 베풂으로써 이단이 소멸되고 민심이 안정된 것은 오직 공맹의 도를 밝히고 올바른 학문을 옹호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 근본을 찾아보면 우리 주부자를 높이는 것이 곧 그것이다. 한편 나는 지극한 정성과 애타는 마음으로 가슴속에 높이 받드는 가운데 그 분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귀로 직접 말씀을 듣는 것만 같았다. 출처: 조선왕조실록


여섯 폭의 그림을 한 폭씩 살펴본다. 유감스럽게도 그림을 한눈에 보기 어렵다. 그 시대에는 종이나 비단의 폭에 제한이 있어서 작품은 폭이 좁고 긴 족자형이거나, 가로 그림으로 파노라마형이 주를 이룬다. 이 그림은 세로형이라 한 화면에 다 들어오기 어려운 상황이다. 모바일에서는 그림을 클릭하면 크기는 작아지나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춘수부함도 春水浮艦圖 (봄물에 큰 배 뜨다) - 주부자시의도 2폭

125.0×40.5cm. 비단에 수묵담채. 호암미술관 소장. CCBY 공유마당.


파란화살표--주희의 원시. 빨간화살표--웅화의 주.

1. 두인頭印 백문타원인白文楕圓印 "心醉好山水" 25x11mm. 

2. 작가인 주문방인朱文方印 "臣弘道" 14x14mm. 3. 호인號印 백문방인白文方印 "醉畵士" 14x14mm.

(김홍도의 호는 단원檀園·단구丹邱·서호西湖·고면거사高眠居士·취화사醉畵士·첩취옹輒醉翁이다.)


--->주희(주자)의 원시 <觀書有感> (글을 읽고 느껴 짓다.)

昨夜江邊春水生 艨衝巨艦一毛輕 向來枉費推移力 此日中流自在行
어젯밤 강가에 봄물이 불더니만

싸움배 거함조차 터럭  올인  가볍게 뜨네.

 동안 밀고 옮기려 들인  잘못 애쓴 것이더니

오늘은 흐름 가운데서 자재롭게 가는구나.

---> 웅화의 주註

義理熟時 知自致 而自然好

의리가 익은 때에 () 저절로 다다르게 되니 ( 때는 만사가) 자연히  되어 간다.


정조의 화운시和韻詩 (정조의 화운和韻은 [홍재전서]에 수록되어있다.)

庭前行樹太疑生 一羽輿薪孰重輕 道不遠人人自遠 回頭是岸岸頭行

 앞의 대나무가 의심날 만큼  자라니 가볍고

( 하나) 무거운 (장작 실은 수레) 경중 따져 무엇하리.

도가 사람 멀리 않고 사람이 스스로 멀리하는 

고개 돌리면  언덕이니 언덕으로 가야하리.

[弘齋全書] 卷七 / 詩三

 謹和朱夫子詩 八首 삼가 주 부자(朱夫子)의 시에 화답하다 8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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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묵담채의 특징은 여백이다. 흔히들 말하기를 '여백의 미 餘白 美'라고 한다. 그러나 여백이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미美가 아니다. 여백은 무엇이든지 될 수 있는 공간, 관람자가 자신의 생각으로 채워넣는 공간, 신비로운 공간이다. 빈 공간은 하늘이 되고, 물이 되고, 벽이 되고...... 수묵담채에서 강을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곳은 강이다'하고 알 수 있도록 강물을 색칠했던가? '이곳은 하늘이다'하고 알 수 있도록 하늘색을 칠했던가? 그냥 채색하지 않은 빈 공간으로 남겨뒀을 뿐이다. 그래도 관람객들은 안다. 하늘인지, 강인지, 바다인지.

서양의 유화에서는 흰 캔버스에 그리는 그림의 흰 부분을 비워두지 않는다. 흰색으로 칠한다. 이것이 동양화의 여백과 다른 점이다. 흰색을 꼭 칠해서 물질을 보여주고 관람객이 그것이 무엇인지 인지하는 그림과, 칠하지 않고 둔 여백을 드러내어 관람객이 보여주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는 그림은 다를 수 밖에.

<춘수부함도>는 문자 그대로 봄물에 배가 떠있는 그림이다. 강물이 보이는가? 푸른 물을 채색했는가? 아니다. 배가 떠있는 곳이 강인줄 그냥 아는 것이다. 어디는 강이고, 어디는 바다인지 여백을 보면 안다. 창작자와 감상자의 소통과 교감이 이루어진다.


그림을 보면(위로 스크롤해서 올라가야 볼 수 있는 불편함은 어찌할지) 가운데 여백(강)의 넓이 때문에 마치 위와 아래 2개의 그림같다. 강을 이렇게 넓게 묘사한 것은 화제畵題에 쓰였듯이 "춘수春水(봄물)"가 불었기 때문이다. 위쪽의 버드나무 기둥 아래가 물에 잠겨있는 것으로 보아 물이 불어난 것을 알 수 있다.

艨衝巨艦오른쪽 위와 왼쪽 아래의 대각선으로 마주본 모양새이다. 강안江岸과 나란히 선 전함들(몽충거함 艨衝巨艦)이 곳곳에 알맞게 배치되어 있다. 윗부분에 홀로 떠있는 배는 돛대를 지금 마악 올리고 있는 중이다. 이 돛에 매단 깃발과 모든 배의 깃발을 보면 바람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불고 있다. 무형의 바람도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감상의 맛 아닌가.

사공이 열심히 노를 젓고 있는 중앙의 작은 배에는 차일을 쳤고, 작은 서안書案(책상)이 놓여있다. 미술사가들은 그 차일 아래 동자와 마주앉아있는 선비를 '주자'라고 한다. 인물은 두 눈을 점으로 찍고, 수염을 간략하게 그렸다. 남종화법에 흔히 보이는 인물묘사이다. 그 오른 쪽의 큰 배에 있는 인물들의 묘사는 자세히 보기 어렵다. 윗쪽에 홀로 떠있는 배는 돛을 펼치고 있는데 마치 먼 바다로 떠나기 위한 채비를 하는 것 같다. 이미 모여있는 다른 배들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넓은 물 가운데 홀로 떠 있는 이 배는 자유로워 보인다. 그림에 있는 주자의 시 구절 "오늘은 흐름 가운데서 자재롭게 가는구나.此日中流自在行"을 묘사한 것이다. 함께 나란히 모여있는 배들과 달리 자유롭게 떨어져있다. 화가는 이 자유로움을 묘사하여 진지眞知(참 앎)에 도달한 경지를 나타내고자 했다. [대학]의 팔조목중 '치지致知'로서 학문을 묘사한 그림이다.


만고청산도萬古靑山圖 (만고에 푸르른 산) - 주부자시의도 3폭 

125.0×40.5cm. 비단에 수묵담채. 호암미술관 소장. CCBY 공유마당.


--->주희(주자)의 원시 <寄胡籍溪> (만고에 푸르른 )

罋牖前頭翠作屛 晩來相對靜儀形 浮雲一任閒舒卷 萬古靑山只麽靑

둥근 들창  편으로 푸르름이 병풍 둘러

저녁 되어 마주하니 우주 만물이 고요하네.

 구름에 만사를 맡겨 한가롭게 책을 펴니

만고의 청산이야 다만 그저 푸르르네.

---> 웅화의 주註

誠意者 有主宰 而通動靜

성의(誠意)라는 것은 (마음에) 주재(主宰)함이 있어 (사물의) 정동(動靜) 간에 통하는 것이라.


정조의 화운시和韻詩

玉鑰金關一疊屛 主翁閒坐視無形 春來物物皆生色 取次牛山草樹靑

 자물쇤가  빗장인가 병풍  첩을 둘러놓고

주인 늙은이 한가로이 앉아 무형(無形) 바라보네.

봄이 와서 사물마다 모두생명의  띠었으니

민둥산  우산(牛山)  나무 다시금 푸르르리.


이 그림의 아랫부분은 약간 잘려나간 것 같다. 표구가 일본식으로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식 표구는 작품을 병풍 바탕에 얹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작품 가장자리를 바르게 다듬기 때문에 잘려나가는 부분이 생긴다. 조선식 표구는 바깥천으로 작품을 덮어씌우는 방식이다. 작품 가장자리에 큰 손상이 없다.

이 그림은 화면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산이 중심 주제이다. 산의 아랫부분을 연운烟雲으로 처리하여 대지로부터 고요히 솟아오른 주산은 우주만물을 상징한다. 

기와집의 둥근 들창 안을 살펴보자. 뒷모습의 선비(주자朱子)가 있다. 주자의 원시에 있는 "저녁 되어 마주하니 우주 만물이 고요하네.晩來相對靜儀形"처럼 무심하다. 정조는 화운시和韻詩에서 "주인 늙은이 한가로이 앉아 무형을 바라보네.主翁閒坐視無形"라고 읊었다. 집앞에 버티고 선 두 그루의 푸른 소나무는 그야말로 낙락장송落落長松이다. 집의 뒤쪽(그림 왼쪽 가장자리)의 키큰 나무는 곧게 서있는 모습이 전나무이다. 집 주변에 푸르름이 병풍처럼 둘러있다. 역시 주자의 시처럼 "만고의 청산이야 다만 그저 푸르르네.萬古靑山只麽靑"를 잘 묘사했다. 시와 글과 그림의 일체감을 느낀다. 

기와집 지붕과 대칭을 이룬 산기슭 아래 마당은 텅 비었꼬 학 두 마리가 있다. 나무가지와 기와집 지붕으로 빡빡한 왼쪽과는 달리 마당이라는 여백을 두어 학의 모습이 한가롭게 느껴진다. 

이 좁고 긴 화폭 속에서 큰 산의 깊이를 어떻게 표현했을까. 실루엣으로 드러나는 높은 산, 단정한 윤곽선을 그린 산은 왼쪽으로 멀어지면서 축소되고 흐려진다. 그 앞에 강한 색으로 뚜렷이 그린 산과 어우러지며 입체적인 공간감이 느껴진다. 산은 듬직히 버티고 있다. 정靜을 뜻한다. 주산 옆에 여백으로 표현된 구름은 동動이다. 주자의 시 "뜬 구름에 만사를 맡겨 한가롭게 책을 펴니 浮雲一任閒舒卷" 구절을 그린 것이다. 

[대학]의 8조목중 "성의誠意"를 상징하며 뜻이 성실함으로써 우주만물이 그대로 수용되는 경지를 보여준다. 



월만수만도 月滿水滿圖 (달 가득 물도 가득) - 주부자시의도 4폭

125.0×40.5cm. 비단에 수묵담채. 호암미술관 소장. CCBY 공유마당.



--->주희(주자)의 원시 <武夷燿櫂歌第四曲> (무이도가 넷째 굽이)

四曲東西兩石巖 巖花垂露碧㲯毿 金鷄叫罷無人見 月滿空山水滿潭

넷째 굽이 동서 양 편에 큰 암벽 솟았는데

암벽 꽃엔 이슬 달리고 푸르름이 드리웠네

금빛 닭 울음 그친 후에 보는 이가 없으니

빈 산에 달빛 차고 못엔 물이 가득하네

---> 웅화의 주註

正心只是 無昏味散亂

정심正心이란 다만 어둡고 어리석지 않아 어지러움이 없음이라.


정조의 화운시和韻詩

毿毿幾曲淸溪幾曲巖 花盈盈處柳毿毿 朗然魚鳥披襟久 直到雲光瀉碧潭

몇 굽이 맑은 계곡 몇 굽이의 암벽이냐

꽃 넘치게 피어나고 버들 길게 드리웠다

명랑한 새와 물고기 마음껏 노닌지 오래인데

구름 빛은 푸른 못에 바로 닿아 쏟아지네


그림에서 달이 보이면 우선 감성적인 마음이 들어 그림은 더욱 서정적으로 보인다. 달 주변을 연한 담채로 바림하여 달이 더욱 환하게 보인다.  아래쪽의 대장봉大藏峰이 서있는 모습은 위태로워 보인다. 계곡 건너 맞은 편에는 선조대仙釣臺가 있고 가운데로 폭포 물줄기가 수직으로 내려오다가 아스라해진다. 오른쪽에 안쪽으로 깎여들어간 대장봉은 농묵선 윤곽에 진한 채색으로 강하게 표현했고, 왼쪽 선조대와 폭포는 어렴풋하다. 왼쪽 암벽은 거의 여백이고 아래쪽에 간단한 윤곽선만 그렸다. 물결은 보일락말락 흐린 선으로 가로로 길게 그은 후 담채 바림을 해서 깊고 잔잔한 느낌을 준다. 

대장봉 암벽 아래에 굴이 있었고 옛날에는 그 안에서 닭이 울어 금계동金鷄洞이라고 했었다. 주자의 시에는 "금빛 닭 울음 그친 후에 보는 이가 없으니 金鷄叫罷無人見"라고 표현하여 적막함을 돋운다. 

달에서 곧게 아래로 내려오면 깊은 못물이 달빛을 받아 환하다. 달빛 가득한(月滿 월만) 산과 여백의 하늘, 깊은 못에 가득한 물(水滿 수만)의 고요한 정경은 [대학] 8조목의 '정심正心 '의 경지를 상징한다. 웅화의 주註에 쓰였듯이 "다만 어둡고 어리석지 않아 어지러움이 없음이라.無昏味散亂"를 뜻한다.


<주부자시의도> 1폭은 없으나 2, 3, 4폭은 주로 산수山水를 소재로 했는데 여백이 많다. 몸을 수양하는 과정을 주제로 한다. 구성은 점증법적 구조인데 성리학 이념을 전개하는데 필연적이다. 

[大學 . 中庸集註] 譯註 成百曉. 발행-사단법인 전통문화연구회. 1995 재판6쇄. 24쪽.


<주부자시의도>는 [대학]의 내용에 따라 그림도 점증적으로 진행했다. 

"그칠 데를 안 뒤에 定함이 있으니, 定한 뒤에 능히 고요하고, 고요한 뒤에 능히 편안하고, 편안한 뒤에 능히 생각하고, 생각한 뒤에 능히 얻는다. 知止而後 有定 定而後 能靜 靜而後 能安 安而後 能慮 慮而後 能得" 위의 책 [대학]의 노란 밑줄 부분.


웅화熊禾의 주註 내용은 [홍제전서]에 등장하는 [대학구의광의 大學口義廣義]에 있는 내용일 것으로 추정한다. 

弘齋全書卷五十六 / 雜著三 대학유의(大學類義)에 쓰다.

인군(人君)이 된 자가 이 책을 읽으면 태평스러운 교화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고, 인신(人臣)이 된 자가 이 책을 읽으면 정치에 참여하여 돕는 공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인해서 명명(命名)하기를 《대학유의(大學類義)》라 하였는데, 그것은 대체로 유(類)를 모아 편집하였기 때문이다, 
웅화(熊禾)가 저술한 《대학구의광의》 이하의 여러 서책들도 모아서 질(帙)을 만들어 표장(表章)하는 자료로 삼으려고 하였으나, 사냥철에 가깝기 때문에 우선 이를 써서 나의 뜻을 나타낸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MO_0584A_0560_010_0120_2006_A263_XML 


시작하는 1폭(격물格物)이 없어서 많이 아쉽다. 그림은 없지만 다행히 주희(주자)의 시, 웅화의 주註, 정조의 화운시和韻, 김홍도의 화제畵題가 남아있으니 8폭까지 그림을 다 본 후에 없어진 1폭과 5폭을 살펴보려고 한다.


다음 발행은 김홍도 <주부자시의도> 6, 7, 8폭과 그림없는 1,5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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