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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May 07. 2024

피에르 보나르 <정원의 여인>

자포니즘 미술과 나비파(Nabis)

자포니즘 미술과 나비파(Nabis)

피에르 보나르 Pierre Bonnard <장식패널-정원의 여인들 Women in the garden>

1890,1891  개별 패널 155 x 45 cm. 쿤스트하우스 쥬리히, 스위스/ 오르세미술관, 파리, 프랑스.


쥬리히에있는 4부작 패널은 불완전한 첫 번째 버전이며, 두 번째 수정 버전은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 있다. 처음에는 일본식 병풍처럼 4개의 좁은 수직 패널로 제작했다. 한 폭이 그 자체로 완전한 그림같아서 개별 패널을 하나씩 분리하여 벽에 설치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여 작가는 패널을 분리했다. (왼쪽부터)첫 번째 패널의 여성은 신원을 확인할 수 없고, 두 번째는 그의 여동생 안드레, 셋째와 넷째 뒷모습은 사촌 베르트 섀들랭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나비(Nabis) 스타일 첫 번째 중요한 작품이다.

(왼쪽부터)첫 번째와 세 번째 여성 드레스의 프린트 원단의 원근법 처리(perspective)가 아닌 원근감 처리(aspective)에서 패턴 디자인은 옷의 주름과 곡선을 따르지 않았다. 옷의 물방울 무늬와 격자무늬  원단의 규칙적인 패턴은 화려한 원단의 멋을 연상시키며 반점과 컬러의 영역을 강조한다. 기하학적 모티브들을 반복하여 장식적인 효과를 강조하는 나비파(Nabis)의 특징이다. 배경의 풀잎, 꽃, 나무도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마치 텍스타일같은 느낌이다. 

이 그림은 1891년 살롱 데 앙데팡당(Salon des Indépendants)에 전시되었다. 당시 유럽에서 유행하던 자포니즘(Japonisme) 스타일이다. 그림에 개와 고양이가 등장하는 것은 일본 판화 우키요예 예술가 우타가와 히로시게(Utagawa Hiroshige, 1797~1858)의 그림이 연상된다. 

무광택 외관을 얻기 위해 보나르는 종이에 접합제가 거의 포함되지 않은 저광택 페인트를 사용했다. 불행하게도 이 방법은 곧 접착 문제를 일으켰다. 다층 페인트 부분에서는 밑에 있는 층에서 작은 박편이 떨어져 나와 흠집과 표면이 불규칙해지는 현상이  많이 발생했다. 이 작품은 방문객이 계속 접근할 수 있고 다른 박물관에 대여할 수 있도록 2014년 3월부터 9월까지 복원 작업을 거쳤다. 

복원할 때 현미경으로 개별 안료 알갱이를 식별하는 것이 가능했는데, 이는 당시에 사용되던 튜브 페인트를 사용하는 대신 보나르가 자신의 페인트에 안료와 결합제를 조합하여 색상을 혼합했을 것으로 본다. 인물의 윤곽선에 연필 선을 세게 적용한 것은 현재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두 번째 버전으로 옮기기 위한 방법이었을 것이라고 미술사가들이 말한다. 


아래 그림은 2021년 7월21일 쥬리히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그 당시에 바로 옆에 새로운 미술관 건물을 건축중이었는데 여러 작품들이 옮겨가기 위해 전시장에서 내려졌지만 보나르의 이 그림은 그대로 걸려있었다. 2층으로 계단을 올라가면 벽에 사진처럼 개별적으로 띠어서 전시했는데 역시 하나씩 분리한 것이 옳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림 옆에 붙은 캡션을 보면 1984년에 스위스 예술 보험사의 지원을 받아 복원했음을 알 수 있다.

그후 다시 2014년에 복원작업을 했다.


아래는 석판화 작품은 개별그림을 분리하지 않았다. 병풍처럼 4폭을 이어붙였다.

피에르 보나르 <보모의 산책로Nannies' Promenade> 1899. 마차 프리즈. 컬러 석판화. 

각 패널 137.2 x 47.6cm. MoMA 뉴욕 현대미술관, 미국

대각선 구성과 제한된 색상 범위 및 넓은 백지에 패턴이 있는 실루엣을 사용하는 일본 디자인의 영향을 훨씬 더 많이 받았다.


나비파 Nabis

나비파(Nabis) 1888 무렵 파리의 사립미술학교인 아카데미 줄리앙(1867 로돌프 줄리앙이 설립)에서 프랑스 젊은 화가들이 모여 이룬 화파이다퐁타방학파(Pont-Aven School)와 상징주의(Symbolism) 에 소속된 프랑스 후기 인상파 예술가 그룹으로, 일본 미술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그림을 그리는 것 외에도 병풍,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등 많은 장식물을 디자인했다. 나비파는  10여년동안 지속되었는데 개성이 각기 다른 젊은 프랑스 화가들로 구성된 협회였다그들이 모여서 추구했던 것은 첫째 예술작품과 장식화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었다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둘째는 인상파 스타일이 깊이가 부족하고 감각적인 것에 기울어졌다는 비판을 극복하려고 했다


퐁타방학파 Pont-Aven School

브르타뉴 남부의 작은 마을인 퐁타방은 대지의 아름다움과 브르타뉴 농민들의 시골 생활에 흥미를 느낀 파리 출신의 수많은 예술가들이 몰려들었다. 고갱(Paul Gauguin)은 합성주의(Synthetism)로 알려진 추상 스타일을 옹호하면서 개념적 리더로 등장했다.

그림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퐁타방의 예술가들은 판화 작업도 적극적으로 실험하여 예술적 탐구의 출발점으로 브르타뉴의 "원시적" 생활 방식을 사용한 석판화, 목판화, 에칭을 제작했다. 나비파가 여기에 속한다.


자포니즘 Japonisme

서양의 일본 예술과 디자인에 대한 열풍을 묘사하기 위해 1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프랑스어 용어.

프랑스와 다른 지역을 휩쓸었던 일본 예술과 디자인에 대한 열풍으로, 일본 미술의 도상학이나 개념을 유럽 미술과 디자인에 통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1854년 미국과 일본의 가나가와조약(Convention of Kanagawa Treaty) 체결 이후 일본의 개항이 시작되었고, 서구 사회와의 인적, 물적 교류를 통해 일본 미술이 처음으로 서구 미술계에 소개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미 18세기부터 일본 도자기와 옻칠 공예품들이 서구에 유통되어왔다.  

18세기 중엽부터 파리의 전통적인 관습사고체제제도는 정치적사회적경제적 혁명(시민대혁명과 산업혁명)로 인해 낡고 타파해야 할 악습으로 공격받았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자연을 다룬 일본 예술, 특히 호쿠사이(葛飾北斎 Katsushika Hokusai)의 우키요에는 낮은 계급을 대변하는 공화주의적인 것으로 비추어졌다. 일본인 예술가 호쿠사이를 민중 예술가로 치켜 올리고 그를 권력의 반항자로서 자신들의 진영으로 끌어들이고자 했다.

일본 판화 우키요에 일본인들이 서구회화에서 받은 영향으로 탄생된 것이다일본은 17세기부터 유럽미술의 원근법그림자 처리색채 감각 등을 받아들였고 그것을 자신들의 기호로 독창성 있게 전시켜 우키요에를 만들어낸 것이다역으로 19세기 서구인들은 다시 우키요에에서 영감 받아 그들만의 독창적인 미술의 조형성을 개척하였다.  역사의 아이러니하고 할 수 있다. 

자포니즘은 파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동유럽과 미국에까지 전파되었다 나라마 자포니즘의 형식은 달랐지만 공통점은 전통으로부터의 해방새로운 창조의 발판으로자포니즘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Le Japon Artistique 표지 , 1888년 7월


자포니즘에 관한 글을 다음에 추가로 발행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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