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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과 <공동경비구역 JSA>

영화 속 경계

by morgen

5부 예술의 경계 - 실제 작품 중심

23화 영화 속 경계 – 기생충과 공동경비구역 JSA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은 한국 영화의 위상을 세계적으로 끌어올린 작품이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계급 문제를 전 세계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냈다.

봉준호 감독 특유의 블랙코미디적 시선과 날카로운 사회 비판이 조화를 이루어, 단순히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세계 어디서든 공감할 수 있는 불평등의 문제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2000)는 박찬욱 감독이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작품이자, 분단 현실을 정면으로 다룬 대표적 영화다. 송강호, 이병헌, 신하균, 이영애 등 당대 최고 배우들이 출연했고, 개봉 당시 큰 흥행을 기록하며 분단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남북한 병사들이 마주하는 비무장지대를 무대로, 경계가 인간적 관계를 어떻게 가르고 또 연결하는지를 묘사했다.

이 두 영화는 시대와 소재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보이지 않는 선’이 인간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가를 묻는다. 하나는 계급의 경계, 하나는 국가의 경계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단면을 보여준다.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경계 위를 걷는다. 집과 거리,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 ‘우리’와 ‘남’의 구분 같은 작은 선들이 우리의 삶을 규정한다. 이 선은 너무 익숙해 잘 보이지 않거나, 때로는 무심히 넘어서는 순간에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영화는 이러한 경계의 문제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매체다. 스크린 위에서는 우리가 보통 외면하는 보이지 않는 선들이 이야기가 되고, 인물들의 운명을 바꾸는 힘으로 작동한다. <기생충>(2019)과 <공동경비구역 JSA>(2000)는 서로 다른 현실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경계가 인간의 삶을 어떻게 갈라놓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계급의 경계 – <기생충>

<기생충>은 오늘의 한국 사회에 깊숙이 새겨진 계급의 경계를 날카롭게 보여준다. 반지하에서 살아가는 가난한 가족은 햇빛이 겨우 스며드는 창문 너머로 세상을 바라본다. 반대로 언덕 위 대저택에 사는 부유한 가족은 유리창 너머로 탁 트인 정원을 즐긴다. 물리적 공간의 차이가 곧 삶의 질서를 말해주는 구조다.

이 영화에서 가장 섬세한 장치는 바로 냄새다. 부자 가족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들의 코끝에 스며드는 ‘가난의 냄새’는 결코 지울 수 없는 경계의 선이다. 언어로 규정되지 않아도, 감각적으로 서로를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스포일러) 영화 후반부, 폭발하는 폭력은 단순한 계급 갈등을 넘어서, “인간은 얼마나 쉽게 선을 긋고, 그 선을 넘는 자를 얼마나 잔혹하게 배제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관객은 웃음과 긴장의 순간을 지나 결국 불편한 침묵 속에 남겨진다.


국가의 경계 – <공동경비구역 JSA>

"JSA"는 남북을 가르는 군사분계선, 그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견고한 국가적 경계를 배경으로 한다. 영화는 총격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는 과정을 따라가면서, 남북 군인들의 은밀한 교류를 드러낸다. 처음에는 경계심을 품던 병사들이 담배를 나누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인간적인 면을 알아가게 된다.

이 장면들은 국경이라는 거대한 벽이 사실은 얼마나 얄팍하게 인간성을 가로막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선을 넘어 함께 웃고 먹는 행위는 그 자체로 경계의 무력함을 증명한다. 하지만 제도와 정치, 이념이라는 구조는 끝내 이 우정을 용납하지 않는다.

(스포일러) 결말은 비극으로 치닫는다. 총성과 피의 장면은 단순한 사건 해결의 과정이 아니라, 경계가 인간적 신뢰를 어떻게 부숴버리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두 영화의 대화

두 영화는 전혀 다른 세계를 다루지만, 닿아 있는 지점이 분명하다. <기생충>의 경계는 같은 도시 안에서, 같은 언어와 같은 문화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한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경계는 국가와 이념이라는 거대한 힘에 의해 강제된다. 하나는 집 안의 구조와 냄새로, 다른 하나는 철조망과 총부리로 표현된다.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은 이렇다. 경계는 결코 추상적이지 않다. 그것은 우리의 몸과 감각, 삶의 자리와 선택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으며, 인간관계를 지배한다.


경계의 아이러니

경계는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질서와 안전, 국가의 존립, 사회적 구분을 위해. 그러나 경계는 동시에 인간의 자유와 가능성을 억누른다. <기생충>의 반지하 가족은 아무리 교묘하게 속이고 침투해도, 끝내 넘어설 수 없는 선에 가로막힌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병사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우정을 나누었지만, 국가가 그은 선을 넘는 순간, 그들의 운명은 비극으로 뒤바뀐다.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경계는 정말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두려움 속에서 만들어낸 허상인가. 또 묻는다. 경계는 인간적 연대를 영원히 가로막을 수 있는가.

<기생충>과 <공동경비구역 JSA>는 서로 다른 층위의 경계를 보여주지만, 관객에게 남기는 울림은 같다. 보이지 않는 선은 인간을 끊임없이 나누고, 그 선을 지키려는 힘은 언제나 더 강력하다. 동시에, 웃음과 대화, 식사와 우정은 경계를 잠시나마 무너뜨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경계는 단절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그 너머를 꿈꾸게 만드는 자리이기도 하다. 우리는 스크린 속 두 편의 영화를 통해, 현실의 경계가 어떻게 우리를 가르고, 또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지 다시 묻게 된다.


다음 글에서는 시선을 영화에서 음악으로 옮겨, 소리의 경계를 탐구하려 한다. 카운터테너, 카스트라토, 크로스오버 같은 서로 다른 음색과 장르의 목소리가 어떻게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표현의 길을 열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5부 예술의 경계 - 실제 작품 중심

24화 소리 표현의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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