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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표현의 다양성

by morgen

5부 예술의 경계 - 실제 작품 중심

24화 소리 표현의 다양성 - 카운터 테너, 카스트라토, 크로스오버


인간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경계를 넘어선다. 언어가 달라도, 가사를 이해하지 못해도, 소리는 감정과 분위기를 전한다. 목소리의 세계 안에도 오랫동안 구분과 위계, 즉 경계가 존재했다. 남성과 여성의 음역, 고전과 대중의 장르, 전통과 현대의 구분이 그것이다. 하지만 음악은 언제나 그 경계를 시험해왔다. 카운터테너, 카스트라토, 크로스오버라는 세 가지 목소리의 세계는, 경계가 어떻게 허물어지고 또 새로운 방식으로 그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카운터테너 – 남성 목소리의 또 다른 가능성

카운터테너(countertenor)는 남성이 훈련을 통해 알토나 메조소프라노 영역까지 소화하는 음역을 말한다. 바로크 시대의 헨델 오페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이 목소리는, 20세기 이후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카운터테너는 단순히 여성의 음역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남성의 신체와 호흡으로 만들어내는 독특한 울림을 지닌다.

현대에는 세계적인 카운터테너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안드레아스 숄(Andreas Scholl, 독일)은 헨델과 바흐 레퍼토리로 명성을 얻었고, 필리프 자루스키(Philippe Jaroussky, 프랑스)는 맑고 투명한 음색과 기교로 대중적 인지도를 넓혔다. 데이비드 대니얼스(David Daniels, 미국) 역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며 카운터테너의 영역을 확장했다. 이들의 무대는 고정된 성역할의 경계를 허물고, 인간 목소리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다양하고 넓은지를 보여준다.

이처럼 성별의 경계를 허무는 목소리도 있지만, 역사 속에는 훨씬 더 극단적인 방식으로 경계를 넘어선 목소리도 있었다. 그것이 바로 카스트라토다.


카스트라토 – 역설적 아름다움의 그림자

역사 속에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특별한 목소리, "카스트라토(castrato)"가 있었다. 어린 소년이 변성기를 거치지 않도록 신체를 훼손해 성인이 되어서도 소년의 고음을 유지하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 성인 남성의 폐 용량과 발성력에 소년의 고음이 결합된 독특한 음색이 만들어졌다. 사람들은 이 목소리를 신비롭고 강렬하다 여겼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어린이들의 희생이 있었다.

카돌릭 교회에서는 1903년에 공식적으로 금지시켰다. 이후 19세기 후반 교회와 사회가 이러한 관행을 금지하면서, 카스트라토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알레산드로 모레스키(Alessandro Moreschi, 1858∼1922)가 기록된 마지막 카스트라토로, 그는 바티칸 시스티나 성가대에서 활동하며 1902년과 1904년에 축음기 기술로 몇 곡을 녹음했다. 그의 음성은 오늘날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카스트라토의 실제 기록이다. 그 소리는 어딘가 낯설고 기묘하게 들리지만, 바로 그렇기에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오늘날 카스트라토의 레퍼토리는 카운터테너나 소년 합창단이 이어가고 있다. 바로크 오페라 속 카스트라토의 아리아는 이제 카운터테너의 무대에서 다시 살아나고, 소년 합창단은 변성기 전의 맑은 목소리로 그 색채를 간접적으로 재현한다. 카스트라토의 목소리는 사라졌지만, 그 유산은 다른 방식으로 여전히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목소리는 성별이나 신체적 조건의 경계를 넘어, 장르의 경계마저 흔들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크로스오버다.


크로스오버 – 장르의 경계를 넘는 목소리

크로스오버(crossover)는 성별이나 음역의 구분과는 달리,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개념이다. 클래식과 대중음악, 오페라와 팝, 국악과 서양음악이 서로를 넘나들며 새로운 울림을 만들어낸다.

대표적으로 안드레아 보첼리(Andrea Bocelli)는 오페라와 팝 발라드를 오가며 크로스오버의 상징이 되었고, 사라 브라이트만(Sarah Brightman)은 뮤지컬과 팝, 클래식을 넘나드는 목소리로 세계적 인기를 얻었다. 보컬 그룹 일 디보(Il Divo)는 팝송을 성악 창법으로 편곡해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한국에서도 조수미는 세계적 소프라노이면서 대중적인 무대를 아우르고, 임형주는 팝페라 가수로서 크로스오버를 한국에 알렸다. 포르테 디 콰트로, 포레스텔라는 팬텀싱어 프로그램을 통해 결성되어, 클래식 창법과 대중음악을 결합한 무대로 큰 사랑을 받았다.

크로스오버는 고급과 대중, 순수와 통속의 구분을 흐리게 한다. 그것은 음악이 본래 인간의 목소리와 감정을 담는 그릇임을, 장르라는 울타리보다 더 큰 자유 속에서 존재함을 보여준다.


경계를 넘어선 소리

카운터테너, 카스트라토, 크로스오버. 이 세 가지는 서로 다른 맥락에서 존재하지만, 모두가 공통적으로 소리의 경계를 확장했다. 카운터테너는 성별의 경계를 넘어, 카스트라토는 아름다움과 폭력의 경계를 드러내며, 크로스오버는 장르의 경계를 흐렸다.

우리가 즐겨 듣는 음악 속에서도 이미 수많은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성악가가 대중가요를 부르거나, 팝 가수가 오페라 아리아를 소화하는 무대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목소리는 늘 새로운 길을 찾아내며, 익숙한 구분을 넘어 우리를 다른 세계로 이끈다. 어쩌면 음악이야말로 가장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드는 언어일지 모른다.

우리가 음악을 듣는 순간, 목소리는 우리 안에 있는 또 다른 경계를 건드린다. 익숙한 감정과 낯선 감각 사이에서, 목소리는 늘 질문을 던진다. 소리란 무엇인가, 목소리란 누구의 것인가.

소리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 우리는 상처와 기억 또한 새로운 방식으로 노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예외적 사례

장르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음악에는 전형적인 크로스오버뿐 아니라, 특정 범주로 묶기 힘든 예외적 사례도 존재한다. 한국의 가수 장사익이 그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판소리와 민요의 창법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재즈적 리듬과 현대적 편곡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전통과 현대, 민중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어왔다. 그의 노래는 대중가요도, 국악도, 순수 성악도 아닌, 오직 ‘장사익’이라는 하나의 고유한 장르로 자리한다. 이처럼 크로스오버의 범주에 완전히 속하지 않으면서도, 장르 혼합의 본질을 누구보다 선명하게 보여주는 음악은 ‘경계 위의 노래’가 지닌 힘을 잘 드러낸다.

한편 요들(jodeling)은 알프스 목동들이 산 너머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그리고 가축을 불러 모으기 위해 사용한 발성법으로, 사람과 동물 모두가 반응하는 원초적 소통의 방식이었다. 이 두 사례는 소리가 경계를 허물고 확장하는 힘을 잘 보여준다. 소리는 단순히 장르나 언어의 한계를 넘어, 인간의 정서와 자연의 생명까지 연결하는 매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다음 글에서는 5부 "예술의 경계 - 실제 작품 중심"의 마지막 챕터, 연재의 마지막 장으로, 예술과 기억, 상실과 창조라는 주제를 다룬다. 마야 린, 엘리 비젤, 피카소의 예술 속에서 상처가 어떻게 기억으로, 창조의 힘으로 변모하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5부 예술의 경계 - 실제 작품 중심

25화 예술과 기억-상실과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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