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누가 이 선을 그었을까> 에필로그
우리는 늘 경계 위에 서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피할 수 없는 경계는 삶과 죽음의 경계일 것이다. 살아 있는 순간마다 죽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늘 곁에 있다. 우리는 죽음을 외면하며 살아간다. 죽음을 말하는 것은 불길하게 여기고, 삶을 노래하는 것을 희망처럼 여긴다. 하지만 삶은 죽음과의 긴장 속에서만 빛을 얻는다.
삶과 죽음은 서로를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를 비추며 존재한다. 죽음이 없었다면 삶은 무한히 흘러가는 시간일 뿐 의미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끝이 있기에 시작하고, 언젠가 사라지기에 기억한다. 삶은 죽음의 예감 속에서만 비로소 자신의 윤곽을 드러낸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평등하다. 국경과 언어, 신분과 계급의 차이는 모두 허물어진다. 그 앞에서 남는 것은 오직 한 인간으로서의 ‘있음’이다. 죽음은 무자비한 종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이 서로를 동등하게 바라보게 하는 근원적인 힘이기도 하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다는 것은 단지 두려움에 떨며 소멸을 기다리는 일이 아니다. 매 순간이 얼마나 유일한 것인지를 깨닫고, ‘지금 여기’를 더 깊이 살아내는 일이다.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그 경계를 넘어갈 것이기에, 오늘의 삶은 더없이 소중하다.
삶과 죽음은 두 개의 섬이 아니다. 서로를 마주한 하나의 강 양안이며, 우리는 강가에서 물결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언젠가 그 강을 건너가야 한다는 사실은 우리를 숙연하게 하지만, 동시에 지금 이쪽 강변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살아야 한다는 다짐을 일깨운다.
삶의 끝에서 만나는 죽음은 종말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그 경계를 의식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을 삶답게 살아간다는 것이다.
연재의 마지막 시점에서 "경계"의 가장 큰 획인 '삶과 죽음'을 잠시 생각해봤다.
연재글 "경계, 누가 이 선을 그었을까"는 개인적인 ‘나’로부터 출발했다. 가족 안에서의 작은 차이, 언어의 벽, 디지털 화면에 비친 고립된 자아, 예술과 문학 속에서 만난 수많은 경계인들. 그 경계들을 하나하나 짚어내며, 선이 어떻게 그어졌는지를 묻는 긴 여정이었다.
경계는 단절이 아니다. 질문의 자리이자 새로운 가능성의 문턱이었다. 이주민과 다문화 사회의 이야기에서, 과거의 한국인이 바로 오늘의 이주자였음을 깨달았다. 디지털 시대의 자아 탐구에서, 언어와 감정이 어떻게 분절되고 다시 회복될 수 있는지를 보았다. 예술과 문학 속에서, 경계가 오히려 창조의 원천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경계 위에서 나는 늘 스스로를 되물었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 속해 있는가?” 그 물음은 곧 “우리는 누구인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라는 더 큰 질문으로 이어졌다. 경계란 결국 ‘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였다.
돌이켜보면, 이 글쓰기는 경계 너머로 건네는 작은 다리 놓기였다. 때로는 서툴고 불완전했지만, 다리 위에서 나는 독자들과 함께 걸으며 서로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순간, 경계는 더 이상 나를 가두는 벽이 아니었다.
연재를 마치며, 아쉬움이 크다. 앞에 놓인 길을 너무 편안하게 걸어왔다는 생각, 살짝 부끄러움이 일렁이며 나를 간지럽힌다. 왜 편안한 길만 택했지? 고속도로는 아니지만 그래도 잘 닦여진 국도만 선택해 온 건 좀 비겁하지 않은가? 도깨비풀이 옷자락에 마구 달라붙는 곁길도 한 번 걸어보지 그랬어? 사실 경계의 현장을 구체적으로 그려내지 못했다. 그것이 얼마나 치열한 삶의 현장인데…
누군가 "경계"라는 테마를 악어처럼 철저히 물고 늘어지며 대차게 써내려가기를 기대해본다. (그 누군가가 다시 내가 될 수도 있을지...) "경계 위의 사람들"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그들의 모습을 우리에게 전해주면 좋겠다. 나는 그리하지 못했다. 물의를 일으킬 정치, 사회, 종교, 인권 문제를 곁눈질로 힐끔거리며 쳐다만 보고 흐릿한 사진만 제공했을 뿐이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경계는 누구를 위해, 왜 그어진 것인가?” 답은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다. 어렴풋이 느끼는 것은 우리가 그 선 위에 서서 서로의 눈을 바라볼 때, 경계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된다는 것이다.
긴 여정을 함께 걸어온 독자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낯선 이야기에도 귀 기울여 주셨고, 때로는 저의 사유와 감정의 흔들림에도 동행해 주셨다. 덕분에 글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쓰는 기록’이 될 수 있었다. 여러분의 시선과 마음이 있었기에, 경계 위의 이야기는 더욱 넓고 깊게 울려 퍼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