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문가의 그림감상
감상鑑賞이 아닌 감상感想입니다.
MaryCassatt - YoungMother sewing / Girl in the Garden
(미술 지식과 전혀 관계없는 감상입니다.)
우리 애들이 쑥쑥 크는 아이들은 아니지만그래도 한창 클 때는 묵은 옷을 꺼내 입으면 바지가 약간 짧아보였다.
그때는 두 아이들의 바지 여러 개를 수선하곤 했었다. 단을 뜯어서 딴 단을 대서 늘린 것이다. 단을 다시 접어서 바느질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천의 테이프를 이은 다음에 단을 손바느질로 박음질 하자니 제법 공이 많이 드는 일이다. 그래서 늘어난 길이는 약 3센티미터 정도.
두꺼운 겨울 옷은 손박음질이 편하지 않았다. 여름 옷은 얇아서 늘인 표가 선명하니 조심조심 바늘을 옮겨야 했다. 그런데도 내 마음은 마냥 좋기만 하였다. 나는 주부 전문직에 꽤나 심한 직업병을 가지고있나보다. 그런걸 절대로 세탁소에 맡기지 못한다. 아이들 바지 늘려주는 일이 마냥 고맙고 감사하고 기쁘고 즐거우니 말이다.
애들이 어렸을 때 폭이 좁은 7단짜리 서랍장이 있었다. 아이들 손닿는 높이의 서랍을 배정해 주었었다.
어느 날, 막내 아들이 제법 자라서 서랍을 아래서 한 칸씩 올려서 옮겨주며 얼마나 가슴이 뿌듯했었던지! 바닥 쪽에 있는 서랍은 쭈그리고 앉아야하니 정리하기가 불편하니 내가 쓰고 아이들은 선채로 여닫을 수 있는 높이의 것을 주었었다.
그런데 키가 자라서 그 서랍을 한 칸씩 더 올려준 것이다.
"우리 애기들 서랍 더 높여줘야겠네."하며 서랍을 바꾸니 아이들도 옆에서 바라보며 좋아하던 모습이 다시 눈에 선하다.
MaryCassatt, 1900, Young Mother sewing,92×74Cm, Metropolitan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문호 톨스토이는 “사랑으로 산다”는 명쾌한 답을 내놨는데, 누가 나에게 노인은 무엇으로 사느냐고 묻는다면 회상으로 산다고 답할 것이다. 추억으로. 당시엔 고달펐지만 돌아보면 그저 그립고 생기가 돋는 추억으로 사는 것 같다. 젊은이처럼 꿈을 키워나가기 어려운 노년에 좋은 추억거리는 큰 자산이 된다.
아들들은 스무 살이 넘어서까지 바지단을 딴단 대서 늘려 그 자국이 선명하고 보기 흉한데도 아무 말 않고 선뜻 입고 다녔다. 내가 괜히 선수치며 "얘,그래도 짧은 것보다는 낫지? 자꾸 빨다보면 자국이 좀 덜 나게 될거야." 하며 애들이 뭐라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는데, 오히려 애들은 이게 어때서 그러냐며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
그런 애들이 어쩜 그리도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MaryCassatt,
Girl in the Garden, Between 1880 and 1882Oil on canvas H. 92; W. 65 cm, oil, canvas Muséed'Orsay, Paris, France
내가 “아이들”이라고 쓰는 단어는 어떤 때는 자식들, 분명히 어른인 자식들을 “아이들”이라고 쓰는 경우가 많다. 또 다른 “아이들”은 손주들을 가리킬 때인데 그런 경우엔 대개 “손주들”이라고 쓴다. 나의 아이들은 이제 어른이 되었다. 육체적으로 더 이상 성장하지 않아 바짓단을 늘일 필요가 없어졌다. 그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성이나 정신력, 영혼의 성숙이니 나의 바느질은 별 쓰임이 없다. 손주들의 옷 관리는 며느리와 딸이 맡아서 한다. 나는 바늘 귀에 실 꿰는 것도 잘 못한다.
그림에서 바느질하는 아름다운 여인을 보며 잠시 옛 일을 회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