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이미지, 인간 이후의 감각들
5부 기술과 이미지, 인간 이후
25화 브뤼노 라투르와 라파엘 로자노 헤머 - 인간 이후의 감각들
우리는 오래도록 기술을 도구로 이해해왔다. 인간의 손에 쥐어진 중립적인 수단,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보조물로 여겨왔다. 언제부터인가 기술은 인간의 바깥에 있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삶을 안쪽에서 조직하는 환경이 되었다. 우리는 기술을 사용한다고 말하지만, 실은 기술 속에서 생각하고, 감각하고, 관계 맺는다. 이 변화의 지점을 철학적으로 가장 집요하게 붙잡아온 사상가가 브뤼노 라투르라면, 이를 미학적으로, 그것도 신체의 차원에서 체험하게 만든 작가가 라파엘 로자노 헤머다.
라투르의 철학은 단순히 '인간 중심주의를 비판했다'는 말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인간을 끌어내리고 비인간을 올려세우는 대신, 세계를 구성하는 행위자들(actants) 사이의 얽힘을 드러냈다.
라투르의 사유와 로자노 헤머의 작업은 ‘기술과 인간’이라는 오래된 대립 구도를 더 이상 전제로 삼지 않는다. 인간, 기계, 데이터, 환경, 이미지가 서로를 구성하는 관계의 장을 드러낸다. 여기서 기술은 차가운 매개가 아니라, 인간의 취약함과 의존성을 노출시키는 감각적 장치가 된다. 헤머의 작업은 바로 이 얽힘을 몸으로 경험하게 만드는 장치다.
라투르는 여러 저서에서 반복해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해체해 왔다. 그가 말하는 ‘인간 이후’는 인간이 퇴장한 세계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세계의 주인이라는 환상에서 내려와, 수많은 비인간 행위자들과 같은 높이에서 얽혀 살아가는 상태를 가리킨다.
라투르는 <나는 어디에 있는가?>에서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사건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쉽게 자기 위치를 상실하는 존재인지 묻는다. 팬데믹을 하나의 철학적 계기로 읽는다. 이동이 멈추고, 접촉이 차단되었을 때, 우리는 갑자기 '어디에도 있지 않은 존재'처럼 느껴졌었다.
라투르의 해석은 다르다. 우리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구에 더 단단히 붙들려 있었다. 바이러스, 공기, 의료 시스템, 통계, 정책, 미디어, 이 모든 비인간 행위자들이 우리의 삶을 직접적으로 조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로자노 헤머의 작업은 라투르의 사유를 시각적으로 ‘번역’한다. 그의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외부의 관찰자가 아니다. 관객은 더 이상 안전한 거리에서 작품을 감상하지 않는다. 작품은 관객의 몸을 호출하고, 측정하고, 기록하며, 결과로 공간을 변화시킨다. 인간은 중심이 아니라 회로의 일부가 된다. 기술 장치가 우리의 숨, 심장 박동, 목소리, 움직임을 감지하며 공간 자체를 변형시키기 때문이다.
우리가 격리 생활에 들어가도록 원인을 제공한 저 떠들썩한 바이러스마저도, 스스로 좀 더 오래 존속하고 입에서 입을 거치며 좀 더 멀리 퍼져 나가고자 섬세한 발명들 속에 끊임없이 저를 재조합해 나가는 것임에랴. 지구란 무엇인가? 우린 그것이 존속과 생성의 염려를 지닌 모든 자들의 연결, 연합, 중첩, 결합이라고 말할 수 있다. 41쪽.<나는 어디에 있는가?>
그의 철학은 생태 위기를 원점에서부터 다시 생각하게 한다. 또한 이와 함께 "이 새로운 지구에 착륙할" 수 있도록 행동하게 하기도 한다. 13쪽.<브뤼노 라투르 마지막 대화>
미술관 url을 클릭하여 이미지를 정당하게 감상하세요. 공정이용(fair use) 작품입니다.
https://www.moma.org/collection/works/180180
라파엘 로자노 헤머 <pulse room> 2006. 상호작용형 설치 미술, 백열전구, 전압. 크기 가변적.
천장 격자에 매달린 300개의 백열전구와 관람객의 심장 박동을 포착하여 빛 신호로 변환하는 전자 장치로 구성된다. 갤러리 입구 근처에 있는 포착 장치에 손을 대면 맥박이 기록되어 바로 앞에 있는 전구 하나로 전송되고, 전구는 기록된 심장 박동에 맞춰 깜빡이기 시작한다. 이 시스템은 이전에 기록된 300개의 맥박을 저장하고 전체 전구 네트워크에 분산시켜 공간 전체에 비동기적인 조명을 만들어낸다. 이미지는 고정된 결과물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갱신되는 사건이다.
작업은 라투르의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을 거의 교과서적으로 구현한다. 심장은 생물학적 기관이지만, 센서를 통과하며 기술적 데이터가 되고, 전구를 통해 시각적 신호가 되며, 공간의 분위기를 재구성한다. 어느 하나도 단독으로 의미를 생산하지 않는다. 의미는 오직 관계 속에서만 발생한다.
여기서 “이미지”는 인간이 만든 결과물이 아니다. 심장–기계–전구–공간–관객이 함께 만들어내는 사건이다. 라투르가 말한 것처럼, 행위는 인간에게만 귀속되지 않는다. 이 방에서 행위하는 주체는 관계 그 자체다.
작품은 미니멀리즘 음악과 연작 음악뿐만 아니라 멕시코 국립 심장학 연구소에서 수행한 심장 자가 조절 과정에 대한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 연구의 영향을 받았다.
<Pulse Room>에서 우리는 자신의 심장이 얼마나 쉽게 외부 시스템에 편입되는지를 체험한다. 동시에, 그 편입이 곧 소외를 뜻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오히려 이 방에서 개인의 생체 리듬은 집단적 이미지로 확장된다. 이는 인간 이후의 세계가 비인간적인 세계가 아님을 보여준다. 행위는 주체의 소유물이 아니라 관계의 효과라는 것이다.
나는 삶의 끝까지 나를 지속하기 위해 계속해서 타자를 집어삼킵니다. 이러한 성질을 지니지 않은 존재는 하나도 없습니다. 존재들은 다른 존재들을 거치지 않는 한 결코 시간 속에서 지속할 수 없어요. 169쪽.<브뤼노 라투르 마지막 대화>
https://www.bordertuner.net/home
라파엘 로자노 헤머 <Border Tuner> 2019. 설치. 미국/멕시코
멕시코 혈통과 미국에서 고조되는 민족주의에 영감을 받아 로자노 헤머는 지금까지 가장 야심찬 프로젝트인 <보더 튜너(Border Tuner>를 시작했다. 엘파소와 후아레스 국경에 설치된 거대한 인터콤 시스템은 양측 참가자들이 무선 탐조등을 통해 서로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다.
참여자가 마이크에 대고 말하면, 그 목소리는 빛의 방향을 조정하고, 국경 너머의 다른 참여자와 연결된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국경은 항상 닫혀 있지만, 동시에 언제든 열릴 수 있다.
지역 예술가, 공연가, 일반 시민들을 초대하여 "보더 튜너"를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듣고, 공유하고, 시각화하도록 한다. 체계적으로 비인간화되는 공공 공간에서 친밀하고 개인적인 관계를 강조한다.
"예술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복잡성을 가시화하는 것입니다. 기술의 사용은 불가피하지만, 예술가는 그러한 기술을 활용하여 친밀하고, 연결되어 있으며, 비판적인 경험을 창조해야 합니다." -라파엘 로자노 헤머
작업은 국경을 고정된 경계가 아니라 관계적 사건으로 재정의한다. 라투르가 정치에 대해 말할 때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정치는 이미 정해진 질서를 관리하는 기술이 아니라, 누가 말할 수 있고, 어떤 존재가 고려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재배치하는 과정이다.
로자노 헤머의 국경은 감시의 장치가 아니라 공명(resonance)의 장치다. 인간의 목소리, 기술의 중계, 공간의 확장이 동시에 작동할 때만 국경은 잠시 사라진다. 국경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것은 침묵 속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인간과 기술이 함께 개입할 때만, 경계는 흔들린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은 오로지 한편의 생명체들이 다른 편의 생명체들 -땅, 하늘, 대양, 공기도 이에 포함된다- 과 더불어 고정하고, 일으키고, 유지하고, 감싸고, 포개고, 융합하는 벽감들, 둥근 포위망들을 교란하고 강화하고 복잡하게 하는 일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세계 경험은 ‘물질적‘이지 않다. ‘영적‘이지도 않다. 우리의 경험은 다른 신체들과 함께 이루는 구성composition에 속한다. 82-83쪽<나는 어디에 있는가?>
로자노 헤머의 작업을 보고 있으면, 기술이 반드시 비인간적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그의 기술은 늘 불안정하고, 일시적이며, 쉽게 끊어진다. 심장은 멈출 수 있고, 목소리는 떨리며, 연결은 실패한다. 바로 그 취약성 속에서 관계는 발생한다.
라투르는 인간 이후의 세계를 낙관적으로만 보지도, 비관적으로만 보지도 않는다. 다만 인간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오래된 신화를 내려놓자고 제안한다. 그 자리에 남는 것은 공허가 아니라, 훨씬 더 복잡하고 밀도 높은 공존의 장이다.
인간이 세계의 중심이 아닐 때, 우리는 어떤 감각을 회복할 수 있는가?
로자노 헤머의 작품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응답처럼 보인다. 기술은 인간을 대체하지 않는다. 기술은 인간을 드러낸다. 우리가 얼마나 관계적이고, 의존적이며, 함께 떨리는 존재인지를.
라투르에게서 이미지란 세계를 ‘재현’하는 창이 아니라, 세계가 자신을 조직하는 방식이다. 로자노 헤머의 작업 역시 이미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이미지를 발생시킨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항상 함께.
기술과 이미지, 인간 이후의 시대란 인간이 사라진 시대가 아니라 인간이 혼자가 아님을 감각적으로 깨닫는 시대일지도 모른다. 몸으로 다시 배우는 시대인지도 모른다.
로자노 헤머의 작업은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미래를 상상하지 않는다. 인간과 기술, 환경이 서로를 감지하고 반응하며 만들어내는 관계의 순간에 주목한다. 이 지점에서 그의 작업은 브뤼노 라투르가 말한 인간 이후의 세계 -인간이 사라진 세계가 아니라, 인간이 더 이상 혼자가 아닌 세계-를 가장 감각적으로 체현한다.
라파엘 로자노 헤머는 멕시코에서 태어나 캐나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미디어 아티스트다. 인터랙티브 기술, 생체 데이터, 건축적 공간을 결합해 관객의 신체 참여로 완성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선보여 왔다.
로자노 헤머의 작품에서 관객은 감상자가 아니라 작품을 작동시키는 존재다. 심장 박동, 숨, 목소리, 발걸음 같은 생물학적 신호는 센서와 알고리즘을 거쳐 빛, 소리, 이미지로 변환된다. 이때 생성되는 이미지는 고정된 결과물이 아니라, 매 순간 달라지는 사건(event)에 가깝다.
작업은 종종 감시 기술, 국경, 군사 기술에서 유래한 장치를 차용하지만, 목적은 통제가 아니다. 오히려 기술을 통해 인간의 취약성, 일시성, 상호 의존성을 드러낸다. 로자노 헤머의 기술은 완벽하지 않으며, 언제든 끊기고 실패한다. 바로 그 불완전함 속에서 관계의 감각이 발생한다.
이 점에서 그의 작업은 라투르의 사유와 깊이 공명한다. 인간과 기술은 대립하지 않고, 함께 세계를 만들어가는 공동 행위자로 등장한다.
브뤼노 라투르는 과학기술학(STS)을 철학과 정치, 생태 문제까지 확장시킨 사상가다. 과학을 ‘객관적 진리의 산출 기계’로 보지 않고, 인간과 비인간, 제도와 기술, 담론과 물질이 복잡하게 얽힌 실천의 네트워크로 이해했다.
라투르 사상의 핵심은 인간과 비인간을 위계적으로 구분하지 않는 데 있다. 인간만이 행위의 주체라는 전통적 관념 대신, 기계, 기술, 미생물, 문서, 데이터, 기후, 제도까지도 세계를 변화시키는 행위자(actant)로 포함시킨다. 세계는 누군가의 의지로 일방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세계는 항상 여럿이 함께 작동한 결과다.
후기 사유에서 라투르는 특히 생태 위기와 정치의 문제에 집중한다. 저서 <나는 어디에 있는가?>에서 그는 팬데믹을 계기로 인간이 더 이상 “지구 바깥에서 세상을 조망하는 존재”가 아니라, 지구라는 조건 속에 깊이 얽힌 "지구 거주자(Earthbound)"임을 강조한다. 인간 이후란 인간이 사라진 시대가 아니라, 인간이 중심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난 시대다.
라투르에게 철학은 추상적 사유가 아니라, 우리가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을 다시 배치하는 작업이었다.
크리스티앙 볼탕스키(Christian Boltanski, 1944–2021)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심장 아카이브/심장의 기록 보관소> 2010년 7월 10일 ~ 8월 8일. 설치.
서펜타인 사우스 갤러리, 런던. 일본의 데시마 섬에 영구적으로 보관. © 2010 Christian Boltanski
서펜타인 갤러리 방문객들이 특별히 마련된 부스 안에서 자신의 심장 박동 소리를 녹음하여 작가의 아카이브에 기증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모인 오디오 파일은 볼탕스키가 지속적으로 수집하고 있는 컬렉션에 추가되었으며, 이 컬렉션은 일본의 무인도 데시마 섬에 영구적으로 보관되어 있다.
심장 박동 모음은 죽음, 기억, 소멸, 상실이라는 주제를 오랫동안 탐구해 온 그의 작업의 연장선이다. 작가는 인류의 역사를 기록하는 인류학자의 역할을 맡아, 인간 존재의 연약함을 보여주는 증거를 수집하는 동시에 우리 모두를 동등하게 불멸화하고자 한다.
라파엘 로자노 헤머의 <Pulse Room>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신체가 집단적 이미지로 전환되는 구조를 가진다.
5부 기술과 이미지, 인간 이후
26화 임마누엘 칸느와 토마스 사라세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