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보그, 페미니즘, 불완전한 몸의 정치학
5부 기술과 이미지, 인간 이후
23화 도나 헤러웨이와 이불 - 사이보그, 페미니즘, 불완전한 몸의 정치학
이불의 작품 앞에 서면, 우리는 늘 질문 하나에 부딪힌다. 이 몸은 어디에서 왔고, 무엇이 되려다 멈춰선 것인가. 완성되지 않은 신체, 절단된 팔다리, 매끈하면서도 기괴한 표면. 이불의 조각과 설치는 언제나 도착하지 못한 미래처럼 보인다. 그 미래를 사유하는 데 가장 적합한 언어를 제공한 이가 바로 도나 헤러웨이(Donna Jeanne Haraway, 1944- )다.
도나 헤러웨이는 <사이보그 선언>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이보그는 더 이상 공상과학의 존재가 아니라, 이미 우리가 살고 있는 조건이라고.
한국어로 번역된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자연의 재발명>에서 헤러웨이는 자연/문화, 인간/기계, 남성/여성이라는 이분법이 근대 권력의 산물임을 끈질기게 해체한다. 사이보그란 순수한 기원이 없고, 완결된 정체성을 거부하며, 혼종성과 접속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이 개념은 이불의 작업 세계와 거의 정확히 포개진다.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자연의 재발명> 도나 J.헤러웨이 지음,
황희선 임옥희 옮김. 2023. (주)북이십일 아르테
인공두뇌 유기체인 사이보그는 기계와 유기체의 잡종으로, 픽션의 존재일 뿐 아니라 사회 현실 속 존재다. --- 사이보그는 픽션과 삶 속 경험의 문제로, --- 삶과 죽음을 가르는 투쟁의 문제이며, SF와 사회 현실을 나누는 경계는, 눈속임이다. --- 현대의 SF에는 자연 그대로인지 가공된 것인지 모호한 세계 속에 사는 동물 겸 기계인 피조물, 즉 사이보고가 단골로 등장한다. 272쪽
이불의 사이보그 연작 속 신체들은 강인해 보이지만 늘 어딘가 결핍되어 있다. 날개는 있지만 날지 못하고, 근육은 있지만 방향을 잃었다. 이것은 기술 낙관주의에 대한 조형적 반박이다. 기술이 인간을 해방시키리라는 믿음, 완벽한 신체가 곧 이상적 존재라는 근대적 상상을 이불은 일부러 불완전한 형태로 무너뜨린다.
헤러웨이가 말한 사이보그 역시 구원이나 완성을 약속하지 않는다. 그는 “상처 입은 혼종”이며, 정체성의 안정 대신 정치적 연대의 가능성을 품는다.
https://edspace.american.edu/cy-candy/lee-bul/transition-to-cyborgs/
이불 <사이보그 W1-W4> 1998. 주조 실리콘, 폴리우레탄 충전재, 페인트 안료. 사진: 윤형문.
사이보그 연작은 헤러웨이의 사이보그 정의를 거의 조형 번역한 작업이다. 얼굴 없음, 생식 기관 없음, 절단된 팔다리, 기능을 암시하지만 어떤 목적도 수행하지 않는 신체를 만들었다.
헤러웨이는 사이보그를 기원 신화가 없는 존재, 완결된 정체성을 거부하는 혼종으로 정의 한다. 이불의 사이보그는 남성도 여성도 아니고, 인간도 기계도 아니다. 탄생 서사도 진화 서사도 갖고 있지 않다. 무엇이 되려다 실패한 몸이 아니라, 처음부터 목적이 없었던 몸이다.
이불의 초기 작업에서 자주 등장하는 괴물적 형상은 단순한 공포의 이미지가 아니다. 그것은 여성의 몸이 어떻게 타자화되어 왔는가에 대한 시각적 기록이다.
헤러웨이는 여성은 자연에, 감정에, 신체성에 묶여 왔고, 남성은 문화, 이성, 기술과 동일시되었다, 하지만 사이보그는 이 구도를 뒤집는다고 말한다. 기계와 결합한 여성의 몸은 더 이상 순수한 자연도, 지배의 대상도 아니라는 것이다.
사이보그는 포스트-젠더 세계의 피조물이다. 사이보그는 양성성(bisexuality), 오이디푸스 이전의 공생, 소외되지 않은 노동을 비롯해 부분 모두를 상위에서 통합해 그 전체의 힘을 최종적으로 전유하게 한다는 유기적 총체성을 향한 유혹과 거래하지 않는다. 174쪽.
이불의 사이보그는 섹시하지도, 모성적이지도, 영웅적이지도 않다. 그 몸은 규범적 여성성에 대한 철저한 거부다.
중요한 점은 이불의 작품이 “강한 여성”의 서사로 수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의 신체들은 늘 위태롭고, 파편화되어 있다. 헤러웨이의 사유와 맞닿아 있다.
사이보그 이미지는 우리 자신에게 우리의 몸과 도구를 설명해 왔던 이원론의 미로에서 탈출하는 길을 보여 줄 수 있다. 이것은 공통언어를 향한 꿈이 아니라, 불신앙을 통한 강력한 이종언어를 향한 꿈이다. --- 이것은 기계, 정체성, 범주, 관계, 우주 설화를 구축하는 동시에 파괴하는 언어이다. --- 나는 여신보다는 사이보그가 되겠다. 328쪽.
헤러웨이는 페미니즘이 ‘더 나은 본질’을 주장하는 운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대신 연결, 책임, 위치성을 강조한다. 이불의 사이보그는 말없이 증언한다. 완전하지 않아도, 통합되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이 세계를 구성하는 존재라고.
https://artsonje.org/en/exhibition/lee-bul-2/
이불 <몬스터:핑크> 1998. 천, 솜, 스텐레스스틸, 아크릴물감. 180x210cm. 전시 설치 전경. 사진;이재용.
아트선재센터, 서울
이불이 제시하는 미래는 SF 영화처럼 반짝이지 않는다. 균열투성이이며, 실패의 흔적을 지닌다. 바로 그 지점에서 헤러웨이의 페미니즘은 비로소 구체성을 얻는다.
미래는 순수한 인간도, 전능한 기계도 아닌 서로 얽힌 존재들의 불완전한 공존 속에서만 가능하다.
이불의 사이보그는 공존의 초상이다.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이미 시작된 세계의 몸.
이불이 시각적으로 구현한 불완전한 미래의 몸은 도나 헤러웨이가 언어로 해체한 근대적 인간 개념과 깊이 맞닿아 있다. 한 사람은 조각으로, 다른 한 사람은 개념으로 말한다. 완성되지 않은 몸, 기원 없는 정체성, 매끄럽지 않은 미래에 대해.
이불은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조각, 설치, 퍼포먼스, 드로잉을 넘나들며 몸·권력·기술·유토피아라는 주제를 집요하게 탐구해왔다.
1990년대 초반, 괴물적 형상의 소프트 조각과 퍼포먼스로 주목받은 이후 그녀의 작업은 점차 사이보그, 미래 도시, 실패한 이상사회로 확장된다. 이불의 사이보그는 기술의 진보가 약속하는 완성된 인간이 아니라, 늘 결여되고 중단된 채 남아 있는 불완전한 신체다.
그녀의 작품 세계에는 기술 유토피아에 대한 회의, 여성 신체의 역사적 타자화, 근대적 진보 서사의 붕괴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불은 미래를 상상하지만, 미래를 낙관적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어떤 몸으로 이 미래에 도착했는가?” 베니스 비엔날레, 테이트 모던, 모마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전시되었으며, 이불의 작업은 한국 현대미술이 국지적 경험에서 출발해 세계적 담론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도나 헤러웨이는 미국의 과학기술학자이자 페미니즘 이론가로, 현대 사유에 ‘사이보그’라는 강력한 개념을 도입한 인물이다. 그녀는 생물학, 진화론, 과학 담론이 중립적 지식이 아니라 권력과 이데올로기의 산물임을 밝혀내며 자연/문화, 인간/동물, 남성/여성이라는 이분법을 비판해왔다.
대표 저작인 <사이보그 선언>(<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자연의 재발명>수록)에서 헤러웨이는 사이보그를 기원 없는 존재, 혼종적 정체성, 경계 위에 선 정치적 주체로 정의한다. 헤러웨이에게 사이보그는 기술 숭배의 상징도, 인간성의 상실도 아니다. 오히려 순수성의 신화를 거부하는 페미니즘적 존재이며, 완전함이 아니라 책임과 연결의 윤리를 요구하는 형상이다.
이후 헤러웨이는 인간중심주의를 넘어 동물, 기계, 환경과의 얽힘을 사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트러블과 함께 하기> 등에서 공존과 관계의 정치학을 강조해왔다.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Joséphine Bourgeois, 1911-2010)
루이스 부르주아 <마망(엄마)> 1999. 청동, 스테인레스 스틸, 대리석 1023.6×927.1×891.5 cm
리움미술관, 서울. ©morgen
가까이에서 작품을 올려다 보면, 거미가 배에 알을 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곧 태어날 새끼들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단단히 보호하고 있는 모습이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거미를, 엄마처럼 나를 보호하고 지켜주는 따뜻한 존재로 표현했다. 거대한 거미 형상은 보호와 위협을 동시에 품는다. 모성은 숭고함이 아니라 양가적 감정의 구조로 제시된다.
여성 신체를 이상화하지 않고, 불편한 감정의 장소로 드러냄이 이불의 작품경향과 같다.
5부 기술과 이미지, 인간 이후
24화 자크 랑시에르 - 제니 홀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