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현 이후의 예술
4부 역사성과 윤리
20화 테오도어 아도르노와 게르하르트 리히터- 재현 이후의 예술
<미학이론> T.W. 아도르노 지음, 홍승용 옮김. 1989. 문학과지성사.
(이 글의 인용문은 1984년 초판 1989년 7쇄 발행본에 따릅니다.)
아도르노에게 예술은 더 이상 세계를 아름답게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저서 <미학 이론>에서 현대 예술은 화해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단언하듯 말한다. 오히려 예술은 세계와의 불화, 상처 난 현실과의 긴장을 끝까지 유지해야 한다고.
아우슈비츠 이후, 예술이 세계를 그대로 재현한다는 것은 곧 폭력의 반복이 될 위험을 안고 있다. 아도르노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그리느냐보다 어떻게 그리지 않는가이다. 예술은 의미를 명확히 전달해서는 안 된다, 완결된 형상은 거짓된 화해를 낳는다, 진실은 언제나 비동일성(non-identity) 속에 있다는 것이 아도르노의 주장이다.
이때 예술의 진실은 메시지가 아니라, 형식이 끝내 세계와 합쳐지지 못하는 어긋남 속에서 발생한다.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그림을 처음 마주하면 분명히 무엇인가를 보고 있는데, 확실히 말할 수는 없다. 도슨트 시절에 나는 리히터 작품 설명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질문을 했다. "이 작품은 사진일까요, 회화일까요?" 관람객들은 선뜻 자신있는 대답을 못하고 주저한다. 블러링(Blurring) 기법 때문이다.
사진을 바탕으로 한 흐릿한 초상, 긁어내고 덮어쓴 추상 회화, 의도적으로 초점을 잃은 풍경들. 리히터는 “회화는 진실을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아도르노의 예술론과 만난다. 아도르노에게 진실은 명확한 개념으로 포착되지 않고, 설명될수록 왜곡되며, 오직 형식의 저항을 통해서만 드러난다.
리히터의 흐릿함(Blur)은 단순한 시각 효과가 아니다. 그것은 확신에 대한 불신, 이미지가 세계를 소유할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한 거부다.
역사적 계기는 예술 작품에 대해 본질 구성적이다. 진정한 예술 작품은 그 시대를 초월하고 있다고 주제넘은 주장을 하지 않고 아무런 유보도 없이 그 시대의 역사적 소재 내용에 자신을 내맡긴다. 그것은 자체로서 무의식적인, 그 시대의 역사 기술이다. 287쪽.
리히터의 연작 <1977년 10월 18일>은 독일 적군파(RAF-Rote Armee Fraktion 서독 극좌파 무장단체)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신문 사진을 바탕으로 그려졌지만, 어떤 장면도 명확하게 읽히지 않는다. 흐릿함은 정보의 부족이 아니다. 과잉된 역사적 이미지에 대한 윤리적 거리두기다.
재현을 멈추는 용기. 독일 적군파 사건을 다룬 이 연작에서 리히터는 역사적 비극을 극적으로 재현하지 않는다. 신문 사진을 그대로 옮겼지만, 모든 장면을 의도적으로 지운다. 인물은 알아볼 수 없고, 장면은 분명하지만 설명되지 않으며, 관람자는 판단 대신 머뭇거리게 된다.
아도르노가 말한 예술의 진리 내용은 바로 이런 머뭇거림 속에서 발생한다. 예술의 진리는 메시지가 아니라,형식이 끝내 화해하지 않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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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moma.org/collection/works/79037
게르하르트 리히터 <1977년 10월 18일>. 1988. 캔버스에 유채, 15개 판넬 작품. 설치에 따라 크기 변함.
1977년 10월은 적군파(RAF, 일명 Baader–Meinhof Gang 바더-마인호프 그룹)의 테러 활동으로 서독이 위기에 처했던 시기였다. 루프트한자 여객기 납치 및 구출 사건, 란츠후트 사건, 독일 고용주 연합회 회장 한스-마틴 슐라이어(Hanns Martin Schleyer, 1915-1977)인질극 및 살해 사건, 슈투트가르트-슈탐하임 교도소에서 테러범들이 사망한 사건, 이 모든 사건들이 불과 며칠, 몇 주 사이에 발생하여 독일 전역을 뒤흔들었다. "독일의 가을"이라고 한다.
이 그림은 사건 발생 11년 후(1988), 번영하고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시대에 제작되었다. 고통스러운 사건들을 기억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아 15개의 연작으로 제작했다. 리히터의 작품 중 가장 도전적인 작품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언론에서 발췌한 이미지들을 어둡고 음울한 회색조로 재현했다. 때로는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흐릿하게 처리함으로써 내부의 위협에 직면한 젊은 민주주의 국가의 마비 상태를 묘사한다. 역사의 기록 가능성과 오늘날 미술에서 역사화의 역할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또한 사회적 유토피아와 사회 현실 사이의 어려운 관계를 다룬다.
아도르노에게 예술은 위로가 아니다. 리히터에게 회화도 확신이 아니다. 불확실성 속에서 예술은 여전히 윤리적 가능성을 가진다. 명확하지 않기에 조작되지 않는다. 완결되지 않기에 닫히지 않는다. 침묵에 가까울수록 더 많은 질문을 남긴다.
아도르노의 미학이 철학의 언어로 말한 것을 리히터는 회화의 침묵으로 반복한다. 진실은 선명함에 있지 않다. 오히려 흐릿해질 용기를 가진 형식 속에 있다.
예술은 경험 세계를 거부함으로써 -이는 예술의 개념속에 내재하는 법칙이지 결코 단순한 도피가 아니다- 경험 세계의 우월한 힘을 인준하게 된다. 12쪽.
예술은 현실과 화해하는 대신, 화해하지 않음으로써 진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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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gerhard-richter.com/en/art/paintings/photo-paintings/death-9/aunt-marianne-5597
게르하르트 리히터 <마리안느 이모> 1965. 캔버스에 유채, 100x115 cm. 야거(YAGEO)재단, 타이페이, 타이완.
1932년 6월에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한 이 그림은 생후 4개월 된 리히터가 14살 된 이모의 무릎에 앉아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 그림은 리히터의 장인과 연관된, 잊혀진 안락사 프로그램으로 목숨을 잃은 25만 명 중 한 명인 마리안느의 비극적인 운명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사진이 찍힌 지 6년 후, 정신분열증을 앓던 마리안느는 강제로 불임 수술을 받았다. 제2차 세계 대전 막바지, 나치는 그녀를 정신병원에 수용했고, 그곳에서 그녀와 다른 수감자들은 굶어 죽었다. 마리안느와 8,000명의 환자들은 집단 매장지에 버려졌다.
리히터는 1965년 이 작품을 그릴 당시 이모의 죽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작가 위르겐 슈라이버(Jürgen Schreiber, 1947-2022)가 리히터의 전기 연구를 시작하면서 비로소 진실이 드러났다.
이 그림은 아도르노가 말한 예술의 태도와 정확히 겹친다. 예술은 고통을 말해야 하지만, 고통을 소비 가능한 이미지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리히터는 폭력을 재현하지 않는다. 재현이 실패하는 지점을 그린다. 실패 속에서, 관람자는 질문 앞에 남겨진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이것은 기억인가, 기록인가, 혹은 망각인가? 아도르노 식으로 말하면, 이 작품은 역사와 화해하지 않으려는 형식이다.
현실의 어떤 것은 합리적 인식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합리적 인식은 고통과 거리가 멀다. 그것은 고통을 총괄하여 규정하고 그것을 완화하는 수단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러나 고통을 체험으로써 나타낼 수는 없다. 고통을 체험으로써 나타낸다는 것은 합리적 인식에 비추어 볼 대 비합리적인 일일 것이다. 고통이 개념화된다면 그것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을 터이며 일관성도 없을 것이다. 이 점은 히틀러 이후의 독일에서도 볼 수 있다. 39쪽
기억은 왜 흐릿해지는가? 리히터의 초기 사진 회화는 가족사진, 신문사진처럼 '이미 알고 있는 이미지'를 바탕으로 한다. 그것을 일부러 흐릿하게 그린다. <마리안느 이모>는 나치 우생학 정책으로 희생된 이모를 그린 그림이다. 기억은 분명 개인적이지만, 이미지는 끝내 확신을 허락하지 않는다.
아도르노의 말처럼, 흐릿함은 결핍이 아니라 윤리적 형식이다. 리히터는 슬픔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보여줄 수 없음 자체를 남긴다.
아도르노 <미학이론>, 수십년간 몇 번이고 교체된 책장의 책들 중에 아직도 살아남은 책 중의 하나.
35년동안 책장을 지킨 걸 보면 내가 "미학"에 관심이 많긴 한가보다.
<미학이론>은 예술은 어떻게 진실할 수 있는가를 말하고, <문화산업>은 이미지는 어떻게 사고를 마비시키는가를 설명한다. 아도르노의 두 책은 서로 다른 질문을 던지는 듯 보이지만,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된다. 진실은 결코 즉각적으로 소비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형식의 순수성은 자신의 동일성을 의식하게 되고 비동일적인 요인을 배제하는 가운데 형성되어 가는 주체의 순수성을 모방하여 이루어졌다. 즉 그것은 비동일적인 것과 부정적인 관계에 있다. ---형식은 단지 구분이 된 것으로서만, 또 비동일적인 것과의 차이를 통해서만 본질적으로 구성된다. 형식 자체의 의미 속에는 형식이 지워버린 이원론이 여전히 남아있다. 257쪽.
리히터의 스퀴지(squeegee) 추상 회화는 아도르노의 비동일성 사유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처럼 보인다. 붓질은 남아 있지만 의도는 지워지고, 색은 겹치지만 의미는 고정되지 않는다. 화면은 완성되었지만 결론은 없다.
아도르노는 예술은 개념으로 포섭되지 않는 잔여를 남겨야 한다고 말한다. 리히터의 추상은 바로 그 잔여다.의미로 환원되지 않는 흔적, 설명하려는 순간 도망치는 형식, 리히터는 회화를 통해 “이것은 세계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대신 “세계는 이렇게도 붙잡히지 않는다”고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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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하르트 리히터 <추상화> 1986. 캔버스에 유채, 300 x 250 cm.
리히터의 작업은 종종 두 갈래로 나뉘어 설명된다. 사진을 바탕으로 한 흐릿한 회화와 스퀴지로 밀어낸 추상 회화다. 겉보기에는 둘이 전혀 다른 방향처럼 보이지만, 같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미지는 과연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사진 회화에서 리히터는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를 가져온다. 가족사진, 신문 사진, 역사적 기록 사진들을 충실히 옮기되, 일부러 초점을 흐리게 한다. 기억에 대한 거리두기다. 사진이 가진 증거성과 진실성의 환상을 무너뜨리기 위해, 이미지가 “확실해 보이는 순간”을 가장 먼저 지운다.
반면 스퀴지 추상 회화에서는 애초에 참조 이미지가 없다. 색과 흔적, 덧칠과 지움만이 남는다. 사진 회화가 이미지를 흐리게 만들어 의미를 미루는 방식이라면, 스퀴지 회화는 의미가 생기기 이전의 상태로 화면을 되돌려놓는 방식이다. 여기에는 기억도, 사건도, 서사도 없다. 오직 형식이 만들어졌다가 무너진 흔적만이 남는다.
두 방식은 서로 반대가 아니라 연속선 위에 있다. 사진 회화는 “이것은 역사다”라는 선언을 흐릿하게 만들고, 스퀴지 회화는 아예 그런 선언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하나는 재현의 신뢰를 흔들고, 다른 하나는 재현의 필요를 철회한다.
아도르노의 말처럼, 예술의 진리는 명확한 메시지가 아니라 형식이 끝내 화해하지 않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리히터의 사진 회화와 스퀴지 회화는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같은 태도를 공유한다. 이미지가 세계를 대신 말해줄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한 불신. 그 불신이 리히터 회화의 가장 일관된 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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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하르트 리히터 <추상화> 1986. 판지에 유채, 200 x 200 cm.
리히터의 전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사진 회화 앞에서 발걸음이 느려진다. 가까이 다가가면 이미지가 무너지고, 한 걸음 물러서면 다시 인물과 장면이 떠오른다. 보는 행위는 자연스럽게 반복된다. 다가갔다가 물러서고, 다시 고개를 기울인다. 그림들은 단번에 읽히지 않는다. 오히려 관람자의 시선을 망설이게 만들고, 기억이 확실해지려는 순간마다 그것을 미묘하게 거부한다. 전시장은 설명의 공간이라기보다, 확신이 중단되는 장소에 가깝다.
사진 회화를 지나 스퀴지 추상 회화가 걸린 공간에 들어서면, 분위기는 눈에 띄게 달라진다. 이제 더 이상 “무엇을 보고 있는가”라는 질문조차 성립하지 않는다. 색은 겹쳐 있고, 표면은 긁히며, 화면은 이미 여러 번 결정되었다가 철회된 흔적을 품고 있다. 어디에도 사건은 없고, 기억을 호출할 단서도 없다. 이상하게도 추상 앞에서는 사진 회화보다 더 오래 머물게 된다.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는 곧 포기되지만, 대신 형식이 남긴 시간을 바라보게 된다. 그림들은 이해를 요구하지 않고, 침묵 속에서 관람자를 붙잡는다.
두 공간을 오가며 걷다 보면, 리히터가 왜 같은 전시 안에 역사적 사진 회화와 스퀴지 추상을 함께 배치하는지 체감하게 된다. 하나는 기억이 얼마나 쉽게 이미지로 고정되는지를 보여주고, 다른 하나는 아예 그런 고정 자체를 거부한다. 사진 회화 앞에서 관람자는 “이것이 무엇이었는가”를 묻고, 스퀴지 회화 앞에서는 “왜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는가”를 묻게 된다. 곧 아도르노가 말한 예술의 태도와 이어진다. 예술은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화해하지 않기 위해 존재한다는 태도 말이다.
리히터의 전시장을 나설 때 남는 것은 이해나 해석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확신을 내려놓았다는 감각, 이미지가 생각을 대신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조용한 동의다. 아도르노가 말한 ‘아우슈비츠 이후의 예술 가능성’은, 이처럼 전시장 안에서 체험되는 머뭇거림과 침묵의 지속 속에서 비로소 현실이 된다.
(참고하면 좋을 자료-<아우슈비츠 이후 예술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이상빈 지음. 2021. 책세상)
회색 연작에서 리히터는 거의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그 침묵은 공허가 아니다. 아도르노에게 침묵은 현실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비판이 될 수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예술은 세계의 언어를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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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하르트 리히터 <회색> 1986. 캔버스에 유채, 120 x 10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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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guggenheim.org/artwork/11078
게르하르트 리히터 <여덟개의 회색> 2002. 유리와 강철 골조에 에나멜, 500 x 270cm. 구겐하임 베를린, 독일.
<여덟 개의 회색> 의 색채 패널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그림자 같은 이미지를 반영한다.
베를린 구겐하임 미술관을 위해 제작된 여덟 점의 에나멜 단색 작품은 회화, 조각, 건축의 경계 어딘가에 존재한다. 수직으로 세워진 갤러리 창문과 마주 보는 두 줄의 색색의 거울은 각각 다양한 각도로 기울일 수 있어 실내와 거리 풍경의 끝없는 반사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회화적 공간과 실제 공간을 혼동하게 한다. 리히터가 선택한 회색은 연상, 구별, 해석의 가능성을 차단한다. 불투명하면서도 반사적인 <여덟 개의 회색>은 추상적이면서도 구상적이며, 단색의 장뿐만 아니라 관람객의 모습이 반사되어 미리 정해진 통일된 경험보다는 개별적인 인식을 강조한다.(구겐하임 온라인 설명 참조.)
리히터는 특이한 화가다. 한쪽에서는 <마리안느 이모> <1977년 10월18일>처럼 구체적인 역사와 기억을 다루고, 다른 한쪽에서는 <추상화> <회색 연작>처럼 의미를 완전히 거부한 추상으로 간다. 보통 역사와 추상은 반대 항에 놓이지만, 리히터에게서는 윤리적 이유로 연결된다.
역사적 고통은 너무 선명하게 그려질수록 소비되고, 오해되고, 소유된다. 그런 이유로 리히터는 역사에서는 흐릿함으로 물러서고, 추상에서는 의미를 끝까지 미루는 방식을 택한다. 이 지점이 바로 아도르노가 말한 비동일성의 형식과 정확히 겹친다.
아도르노가 “아우슈비츠 이후 예술은 가능한가”라고 물었다면, 리히터는 그 질문에 흐릿한 이미지와 침묵에 가까운 형식으로 응답했다.
게르하르트 리히터는 전후 독일을 대표하는 화가로, 사실주의·추상·사진·개념미술의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들어온 작가다. 동독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 교육을 받았고, 서독으로 이주한 이후에는 사진을 기반으로 한 회화와 급진적인 추상을 병행하며 독자적인 작업 세계를 구축했다.
리히터의 작업에서 일관되게 드러나는 태도는 확신에 대한 불신이다. 그는 사진이 가진 객관성과 진실성의 환상을 의도적으로 흐리게 만들고, 추상 회화에서는 의미가 형성되기 이전의 상태를 반복적으로 호출한다. 그의 유명한 스퀴지 회화는 그리기와 지우기, 의도와 우연, 결정과 철회를 동시에 담아내는 형식으로, 회화가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리히터는 역사적 사건을 다루면서도 그것을 재현하지 않는다. <1977년 10월 18일> 연작에서 테러와 죽음을 명확히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이미지가 역사적 고통을 소비하는 방식을 거부한다. 그의 회화는 진실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상태 자체를 형식으로 고정한다. 이 점에서 리히터는 아도르노가 철학적으로 요청했던 ‘화해하지 않는 예술’을 회화로 구현한 작가라 할 수 있다.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20세기 비판이론을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사회이론가, 음악학자였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핵심 인물로서 계몽, 이성, 문화, 예술이 어떻게 현대 사회에서 오히려 억압의 도구가 되었는지를 집요하게 분석했다. 나치 집권 이후 망명 생활을 거쳤고, 아우슈비츠의 경험은 그의 사유 전체를 관통하는 윤리적 기준이 되었다.
아도르노의 미학은 “예술은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예술은 어떻게 침묵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요약된다. 그는 <미학 이론>에서 예술을 위로나 화해의 장치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예술은 사회와의 불화를 끝까지 유지함으로써만 진실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때 진실은 메시지가 아니라, 형식이 세계에 저항하는 방식, 다시 말해 비동일성(non-identity) 속에서 발생한다.
아도르노에게 현대 예술은 더 이상 명확한 의미를 제공할 수 없다. 의미가 명확해질수록, 그것은 체제에 의해 소비되고 중립화되기 때문이다. 그는 파편화된 형식, 추상, 침묵, 부정성을 아우슈비츠 이후에 가능한 유일한 예술적 태도로 사유했다. 이 점에서 그의 미학은 철학이면서 동시에 예술을 향한 윤리적 요구이기도 하다.
스타일이 아니라 태도, 즉 재현에 대한 불신, 역사와 형식의 윤리, 이미지의 실패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업한 화가를 꼽아본다.
안젤름 키퍼 (Anselm Kiefer)
키퍼가 신화·문자·물질을 통해 독일의 죄를 “직면”한다면, 리히터는 이미지의 불가능성을 통해 침묵으로 응답한다. 리히터가 ‘말하지 않음’을 택했다면, 키퍼는 ‘너무 많이 말함’을 택한 경우이다.
공통점: 독일 전후 역사, 기억, 죄책감.
차이점: 키퍼는 상징과 물질을 과잉으로 사용, 리히터는 절제와 흐릿함 선택.
루치오 폰타나 (Lucio Fontana)
폰타나가 캔버스를 찢어 공간을 열었다면, 리히터는 화면을 밀어내 의미가 생기기 이전의 상태를 남긴다.
공통점: 회화의 표면을 파괴함으로써 의미를 열어놓음.
연결점: 스퀴지 회화의 ‘긁힘·찢김’과 개념적 연관성.
마크 로스코 (Mark Rothko)
로스코의 색면 앞에서 관람자가 침묵 속에 머물게 되듯, 리히터의 추상 앞에서도 관람자는 이해를 포기한 채 머문다.
공통점: 의미를 말하지 않고 감각과 침묵을 남김.
연결점: 스퀴지 회화와 색면 회화의 ‘머무름의 시간’.
<그림 속 철학, 철학 속 그림>의 발행글 링크.
안젤름 키퍼 – 역사와 물질의 과잉. https://brunch.co.kr/@erding89/416
루치오 폰타나 – 캔버스를 찢는 행위. https://brunch.co.kr/@erding89/438
마크 로스코 – 침묵의 색면. https://brunch.co.kr/@erding89/434
4부 역사성과 윤리
21화 단테 알리기에리 -오귀스트 로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