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속에서 생각하는 인간
4부 역사성과 윤리
21화 단테 알리기에리와 오귀스트 로뎅 - 고통 속에서 생각하는 인간
(이 글에 게재된 작품은 퍼블릭 도메인이며, 크레딧 필요한 사진은 ©표를 하였다. 조형물은 여러 개의 캐스팅으로 단일 작품이 아니며, 촬영 방향에 따라 모습이 일정하지 않다. 작은 조각들의 합체로 큰 작품이 있고, 그 작은 부분 작품들을 독립적인 조형으로 남긴 것도 있다.)
그는 한 번도 자신을 철학자라고 부르지 않았다. 시를 썼고, 여행기를 남겼다. 지옥과 연옥과 천국을 통과하는 한 인간의 이야기를 그렸다. 던진 질문들은 철학의 가장 깊은 질문들이었다. 인간은 왜 죄를 짓는가. 자유의지는 신의 질서와 충돌하는가. 사랑은 감정인가, 우주의 원리인가. 정의는 이 세계에서 실현될 수 있는가.
단테는 <신곡>을 쓰면서 이에 대한 답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보여준다. 불타는 육체와 뒤틀린 자세를. 영원히 반복되는 형벌 속에서 인간이 무엇을 선택했는지를 드러낸다. 단테의 철학은 개념이 아니라 장면이다.
오귀스트 로댕은 그 장면을 다시 육체로 불러낸다.
로댕의 조각에는 설명이 없다. 근육이 수축된 형상이다. 몸은 구부러지고, 손은 얼굴을 가린다. 작품 <생각하는 사람>으로 유명한 로댕은 인간이 생각하는 순간을 그리지 않는다. 생각 때문에 고통받는 순간을 붙잡는다.
<지옥의 문> 위에 앉아 있는 <생각하는 사람>은 철학자의 초상이 아니다. 턱을 괴고 있지만 편안해 보이지 않는다. 몸은 앞으로 기울어 있으며, 발은 단단히 땅을 누르고 있다. 사유 속에 잠긴 존재가 아니라, 사유에 짓눌린 존재다.
<생각하는 사람>은 단테다.
자신이 만든 지옥을 내려다보는 시인이자, 인간의 선택이 만들어낸 세계 앞에서 침묵하는 철학자다. 단테에게 지옥은 형벌의 공간이 아니라 윤리의 구조다. 각 영혼은 자신이 선택한 욕망 속에 갇혀 있다. 로댕의 인물들 역시 탈출하지 않는다. 움직이지만 벗어나지 못한다. 몸은 자유롭지만, 자세는 고정되어 있다.
여기서 두 사람은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인간은 어디까지 자유로운가. 자유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가. 단테는 시로 그 질문을 던졌고, 로댕은 육체로 그것을 붙잡았다. 로댕의 조각을 보고 있으면 철학책을 읽는 느낌이 든다. 단테를 읽다 보면 조각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몸이 긴장된다. 이 둘 사이에서 철학은 더 이상 개념이 아니다. 철학은 고통을 통과하는 인간의 자세가 된다.
단테는 인간이 왜 고통받는지를 묻는 철학자였고, 로댕은 그 질문을 인간의 몸에 새긴 예술가였다.
단테의 지옥은 단순한 처벌의 공간이 아니다. 선택의 결과가 고정된 세계다. 각 영혼은 외부에서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욕망 속에 영원히 머문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 전반에 흐르는 사상에 따르면, 인간은 이 세상에서 선택한 삶의 방식을 지옥에서도 반복하게 된다.(지옥편 제5·7·13곡 등 참조). 단테의 지옥에서 형벌은 새로 부과되지 않는다. 인간은 살아 있을 때 선택한 삶을 이제는 영원 속에서 반복할 뿐이다.
단테에게 죄란 일회적 행위가 아니라, 삶의 방향이다. 지옥의 형벌은 잔인하기보다 정확하다. 분노한 자는 끝없이 싸운다. 탐욕스러운 자는 무거운 짐을 멘다. 배신자는 얼어붙는다. 움직임은 있지만, 탈출은 없다. 단테는 이미 중세의 윤리학자이자 존재론자다. 인간은 자유롭지만, 자유는 곧 스스로를 규정하는 선택이 된다.
로댕의 대표작 <지옥의 문>은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서 직접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문 위에는 수많은 인간 형상이 얽히고설켜 있다. 넘어지고, 기어오르고, 매달리고, 떨어지는 몸들. 각각의 인물은 하나의 서사가 아니라, 하나의 상태다.
오귀스트 로댕 <지옥의 문> 1880-1890. 청동. 높이 635cm, 길이 400cm, 깊이 85cm.
박물관 소장품을 위해 1928년 알렉시스 루디에르 주조 공장에서 제작되었다.
로댕은 수년간 열정적으로 작업하여 200점이 넘는 인물과 군상을 만들어냈는데, 이는 그의 남은 생애에 걸쳐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1889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 출품하기를 희망했던 로댕은 1880년대 말에 <지옥의 문> 제작을 중단했다.
그러나 그는 여러 차례 자신의 작품을 완성하려는 야망을 품었다. 1900년 주요 개인전에서 그는 마침내 작품을 대중에게 공개하기로 결심했지만, 결국 주요 구조물과 분리하여 가장 눈에 띠는 인물들을 배치하려는 생각을 포기하여 미완성 상태로 남게 되었다. 인물들이 배경과 너무 강한 대비를 이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로댕 미술관의 초대 큐레이터인 레옹스 베네디트(Léonce Bénédite, 1859-1925)가 그를 설득하여 걸작을 재구성하고 주형을 제작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은 것은 1917년이 되어서였다 .로댕은 자신의 모든 노력의 결과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지옥 문 위에 앉아 있는 인물이 바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이 조각을 ‘철학자의 상징’으로 기억한다. 인물은 처음부터 보편적 사유의 아이콘이 아니었다. 그는 단테 자신이었다. 자신이 만든 지옥을 내려다보는 시인, 인간의 선택이 만들어낸 세계 앞에서 침묵하는 관찰자 단테다.
그는 고요하지 않다. 생각은 머리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생각은 몸 전체에 걸쳐 있다. 로댕은 '생각을 조각한 것이 아니라, 생각 때문에 긴장한 몸을 조각했다.'고 말했다.
<신곡> "지옥편" 3곡에 있는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의 수채 삽화.
오귀스트 로댕 <생각하는 사람> 1903. 청동. 높이 189cm, 길이 98cm, 깊이 140cm.
이 작품은 1904년 알렉시스 뤼디에르 주조 공장에서 제작되었으며, 1922년 로댕 미술관에 소장되었다.
1880년에 원래 크기인 약 70cm로 제작되었으며, <지옥의 문> 팀파늄(Tympanum 큰 문의 윗부분)을 장식하기 위한 것이었다. <생각하는 사람>은 당시에는 <시인>이라는 제목으로 불렀는데, 이는 <신곡>의 저자 단테가 자신의 작품에 몰두하며 지옥의 여러 층계를 바라보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었다. 고통받는 육체, 저주받은 영혼을 가진 존재인 동시에 시를 통해 고통을 초월하려는 자유로운 정신을 지닌 인간으로 표현되었다. 이 인물의 자세는 장 바티스트 카르포(Jean-Baptiste Carpeaux , 1827-1875)의 <우골리노> (1861년, 오르세 미술관, 파리)와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가 조각한 <로렌초 데 메디치의 좌상>(1526-1531년, 산 로렌초 성당 메디치 예배당, 피렌체)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거대한 조각상인 '문' 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으면서도 <생각하는 사람>은 1888년부터 단독 전시되어 독립적인 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1904년에 확대된 이 작품은 더욱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며 인기를 얻었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지만 강인한 몸짓으로 행동력을 암시한다.
단테의 인간은 생각할수록 괴로워진다.
지옥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형벌은 불도, 얼음도 아니다. 자신이 무엇을 선택했는지를 너무 늦게 이해하는 순간이다. 아래 인용문은 지옥편 제3곡 맨 처음, 지옥문 위에 새겨진 비문이다.
나 이전에 창조된 것은 영원한 것뿐이니,
나도 영원히 남으리라.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26쪽. <신곡> "지옥편" 3곡.
이 문장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다. 희망이 사라진다는 것은, 더 이상 선택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인간은 생각할 수 있지만, 바꿀 수는 없다. 로댕의 인물들이 괴로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움직인다. 근육은 살아 있고, 자세는 역동적이다. 움직임은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 몸은 자유롭지만, 상황은 고정되어 있다. 이것은 단테적 지옥의 조각적 번역이다.
오귀스트 로댕 <세 개의 망령> 1886년 이전. 청동. 높이97cm, 너비91.3cm, 깊이54.3cm.
로댕 미술관 상설전시 5호실. © 로댕 미술관 사진 대행사 - Jérôme Manoukian
로댕은 비문을 생략하는 대신, 세 망령이 아래의 고통스러운 장면들을 가리키도록 배치하여 단테의 시적 표현을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단테의 <신곡>에서 , 저주받은 세 영혼, 즉 망령들은 지옥 입구에 서서 "여기 들어오는 너희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라는 명확한 문구를 가리킨다. 로댕은 이 망령들을 주제로 여러 습작을 제작한 후(작품은 <아담>), 마침내 세 개의 동일한 형상을 조립하여 마치 한 점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듯한 모습을 만들었다. 이 형상들을 <지옥의 문> 꼭대기에 배치하여 관람객 위로 우뚝 솟게 한 다음, 크기를 확대하여 독립된 기념비적인 조각상을 완성했다.
이 작품에서도 미켈란젤로의 영향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과장되게 기울어진 머리는 목과 어깨가 거의 하나의 선처럼 보인다. 로댕은 바로 이러한 해부학적 왜곡을 통해 당대에는 비할 데 없는 표현력을 구현해냈다.
오귀스트 로댕 <아담> 1880-1881. 청동. 194 x 77,2 x 82,6 cm. 메트로폴리탄 뮤제움, 뉴욕, 미국
<아담>의 원형 주형을 1881년 파리 살롱에 출품했다. 1912년 개관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로댕 작품 전용관을 위해 의뢰받은 이 작품은 그 원형 주형에서 제작된 최초의 청동 주물이다.
사랑은 사랑받는 사람을 결코 놓아주지 않으니,
이이에 대한 차오르는 기쁨으로 나를 사로잡았어요.
보다시피, 이이는 내 곁을 아직도 떠나지 않고 있어요. 55쪽. <신곡> "지옥편" 5곡.
사랑이 선택이 아니라 필연처럼 시작되었다는 프란체스카의 자기 변호다. 로댕의 <키스>처럼 순간은 아름답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태를 암시한다.
오귀스트 로댕 <키스> 1882년 경. 대리석. 높이 181.5cm, 길이 112.5cm, 깊이 117cm.
로댕 미술관 상설전시 1층 5호. © 로댕 미술관 사진 대행사 - Jérôme Manoukian
단테는 지옥편 5곡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배치한다. '사랑은 사랑받는 마음에 곧 사랑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하는 프란체스카의 고백은 죄의 언어가 아니라 운명의 언어에 가깝다. 로댕의 <키스>가 포착한 순간 역시 그러하다. 그것은 타락의 장면이 아니라, 아직 죄가 되기 전의 사랑이다.
사랑에 빠진 그 연인이 오랫동안 기다린 입술에
입 맞추는 대목을 읽었을 때.
그이는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내게
입을 맞추었지요. 그리고 나를 결코 떠날 수 없게 되었지요.
그 책을 쓴 자는 갈레오토였어요.
우리는 그날 더 이상 읽지 못했어요. 57쪽. <신곡> "지옥편" 5곡
1888년 프랑스 정부의 의뢰로 1888년부터 1898년 사이에 조각되었다. 1901년 룩셈부르크 미술관에 소장되었고, 1919년 로댕 미술관으로 이관되었다.
<키스>는 원래 <신곡>에 나오는 파올로와 프란체스카라는 두 연인을 묘사한 작품이다. 프란체스카의 남편에게 키스하는 모습을 들켜 살해당한 두 연인은 지옥을 떠도는 신세가 된다. 로댕이 <지옥의 문>을 제작하는 초기 단계에서 구상한 이 작품은 1886년까지 우골리노 맞은편, 왼쪽 문 아래쪽에 눈에 띄게 전시되어 있었다. 그러나 로댕은 행복과 관능을 표현한 이 작품이 자신의 대작의 주제와 모순된다는 것을 깨닫고 전시를 중단했다.
독립적인 작품으로 만들어 1887년에 전시했다. 유연하고 매끄러운 조형, 역동적인 구도, 매력적인 주제 덕분에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두 연인의 정체를 알 수 있는 일화가 없었기에 대중은 이 작품에 "키스"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작품의 보편적인 성격을 잘 나타내는 추상적인 제목이다. 프랑스 정부는 확대된 대리석 버전을 의뢰했고, 로댕은 이를 완성하는 데 거의 10년이 걸렸다.
단테에게 영혼은 추상이 아니다. 항상 몸의 기억을 지닌 존재다. 지옥의 영혼들은 고통을 ‘겪는다’기보다, 고통의 형태를 하고 있다.
로댕 역시 인간을 이상화하지 않는다. 그의 인물들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불완전하다. 과장된 근육, 비틀린 관절, 긴장된 자세. 그는 인간의 몸을 윤리적 긴장이 새겨진 표면으로 만든다. 이때 철학은 더 이상 개념이 아니다. 철학은 자세가 된다. 철학은 견디는 몸이 된다.
오귀스트 로댕 <우골리노와 그의 아이들> 1881-1882. 높이41.5 cm, 넓이39.1 cm, 깊60.9 cm.
로댕 미술관 정원, 파리, 프랑스.
난 우골리노 백작이었고, 이놈은
루지에리 대주교였다는 것을 우선 알아 두시오.
이놈 곁에서 이런 짓을 하게 된 연유를 말해 주겠소. 337쪽. <신곡> "지옥편" 33곡.
로댕은 단테의 신곡에서 영감을 받은 극적인 주제를 담은 카르포(Jean-Baptiste Carpeaux, 1827-1875)의 조각상 <우골리노>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20년 후, <지옥의 문> 제작 의뢰를 받은 로댕은 낭만주의자들이 사랑했던 단테적인 주제를 바탕으로 여러 스케치를 제작했다. 감옥에 갇혀 굶주림에 미쳐버린 게라데스카 백작 우골리노는 죽은 자식들을 잡아먹었고, 이 죄로 영원한 저주를 받는다.
로댕은 <지옥의 문>에서 이 극적인 장면이 절정에 달하기 직전의 모습을 묘사했다. 우골리노는 죽어가는 자식들의 시체 위를 기어 다니지만, 아직 짐승 같은 본능에 굴복하지는 않았다. 발가벗은 채 얼굴을 찡그리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우골리노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듯하다. 그의 자세는 당시 미술계에서 굴욕적이면서도 독창적이었다. <지옥의 문>에 배치했고, 또한 독립적으로도 제작했다.
장-바티스트 카르포 <우골리노와 그의 아이들> 1865-1867. 생 베아(Saint-Béat)대리석.
197.5×149.9×110.5 cm. 메트로폴리탄 뮤제움, 뉴욕, 미국
카르포의 조각상은 작가가 미켈란젤로, 특히 로마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의 최후의 심판(1536~1541)에 대해 갖고 있던 열정적인 존경심과 해부학적 사실주의에 대한 작가 자신의 세심한 노력을 반영한다.
단테의 지옥은 신의 심판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은유다. 권력에 아첨한 자, 공동체를 배신한 자, 책임을 회피한 자들은 모두 지옥의 풍경 속에 있다. 그것은 중세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반복되는 구조다.
단테는 지옥편 제3곡에서 선도 악도 선택하지 않은 영혼들을 가장 비참한 존재로 묘사한다. 무색무취한 영혼이라 한다.
"선생님! 지금 들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고통을 당하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치욕도 명예도 없이 /살아온 사람들의 슬픈 영혼들이 /이렇게 비참한 꼴을 당하고 있다.
하느님께 반항하지도 /복종하지도 않았고 단지 자신에게만 충실했던 /저 사악한 천사들의 무리도 섰여 있다.
하늘은 그들을 쫓아냈다. 그들이 하늘의 빛을 가릴 테니까. /그러나 깊은 지옥도 그들을 거부하니, 그들을 보고 /지옥의 자들이 우쭐해할까 두려웠기 때문이지." 29쪽. <신곡> "지옥편" 3곡
무기력한 영혼들은 가장 낮은 지옥에도 속하지 못한다. 그들은 선도 악도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테는 이들을 가장 비참한 존재로 그린다. 로댕의 조각들 속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인간을 본다. 결단하지 못한 몸, 멈춰 선 자세,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긴장. 이 조각들은 과거의 종교적 형벌이 아니라, 현대인의 내면 풍경에 가깝다.
오귀스트 로댕 <칼레의 시민들> 1889. 석고. 높이 225cm, 길이 240cm, 깊이 200cm.
로댕 미술관 석고모형 전시실. © 로댕 미술관 사진 대행사 - Jérôme Manoukian
영웅 조각의 전통을 근본적으로 뒤흔든 작품.
이 조각은 승리의 기념비가 아니라, 결단의 순간에 놓인 인간들의 내면을 형상화했다. 로댕의 작품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다.
백년전쟁(1337-1453) 당시의 실제 사건(1346–1347)을 바탕으로 한다. 영국군에 포위된 프랑스 도시 칼레에서, 여섯 명의 시민이 도시를 살리기 위해 자신들의 생명을 담보로 항복하겠다고 나선다. 그들은 목에 밧줄을 걸고, 성문 열쇠를 들고, 죽음을 각오한 채 성문을 나선다. 로댕이 주목한 것은 그 이후의 명예가 아니라, 그 문을 나서기 직전의 마음이었다.
로댕은 처음부터 외스타슈 드 생피에르, 장 데르, 피에르와 자크 드 위상, 앙드리외 당드레스, 장 드 피엔느 등 여섯 인물을 하나의 통합된 존재로 표현하고자 했다. 마치 한 몸처럼 희생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비극에 직면한 각자의 개성과 심리를 탐구하는 것이다.
청동. 1889. 모래 주조, 1926년.높이: 217cm; 길이: 255cm; 깊이: 197cm
전통적인 기념조각에서 영웅은 보통 높은 좌대 위에 서 있고, 단일 인물이며 의연하고 승리한 자세를 취한다. 로댕은 정반대를 택했다. 여섯 명의 인물 모두 지면 가까이 서 있다. 중심 인물이 없다.
이들은 영웅이라기보다 불안에 흔들리는 인간이다. 고개를 숙인 사람, 이를 악문 사람, 팔을 늘어뜨린 사람,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사람. 각 인물은 같은 결단을 앞두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흔들린다. 로댕은 여기서 영웅을 이상화하지 않고, 윤리적 결단의 무게를 ‘몸’으로 보여준다.
여섯 명은 함께 서 있지만,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다. 각자의 고독 속에 갇혀 있다. 누군가는 이미 체념했고, 누군가는 끝까지 저항하며, 누군가는 아직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로댕은 이들을 하나의 덩어리로 묶지 않았다. 같은 선택 앞에서 각자 다른 윤리적 시간을 살고 있는 인간들로 분리했다. 이 작품의 가장 현대적인 지점이다. 공동의 결단은 있지만, 대신 느껴줄 수 있는 고통은 없다는 사실.
단테가 <신곡>에서 보여준 인간들은 모두 선택의 결과 속에 고정된 존재들이다.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은 그보다 한 걸음 앞에 있다. 이들은 아직 지옥에 있지 않다. 지옥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윤리적 문턱에 서 있다. 단테는 선택 이후의 인간을, 로댕은 선택 직전의 인간을 묘사했다.
1889년에 완성된 이 기념비는 1895년 칼레 시청 광장에 설치되었다.
단테는 시로 인간의 윤리를 설계했고, 철학을 썼고, 로댕은 몸으로 윤리를 드러냈고, 철학을 만들었다. 한 사람은 인간을 여행하게 했고, 다른 한 사람은 인간을 멈추게 했다. 두 사람 모두 묻는다. 인간은 생각할 수 있는 존재인가, 아니면 생각 때문에 고통받는 존재인가.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
<생각하는 사람> 앞에 서면 우리는 자신의 자세를 의식하게 된다. 몸이 긴장되고, 시선이 아래로 떨어지고, 생각이 무거워진다. 단테의 시를 읽을 때와 같은 감각이다. 단테의 지옥은 로댕의 조각 속에서 다시 숨 쉬고, 로댕의 육체는 단테의 언어 속에서 다시 생각한다. 이 지점에서 철학은 완성된다. 개념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의 형식으로.
오귀스트 로댕(François-Auguste-René Rodin, 1840-1917)은 조각의 전통을 계승한 사람이 아니라, 조각의 질문을 다시 만든 예술가였다. 그 이전의 조각이 이상적인 형태를 보여주었다면, 로댕은 형태가 흔들리는 순간을 붙잡았다.
로댕에게 인간의 몸은 완성된 조형이 아니라, 사유와 감정이 지나가는 장소였다. 그의 인물들은 멈춰 있지만 고요하지 않고, 서 있지만 안정되어 있지 않다. 근육은 긴장하고, 자세는 기울어 있으며, 손과 발은 결정을 앞둔 듯 망설인다.
그는 영웅을 만들지 않았다. 영웅이 되기 직전의 인간, 혹은 영웅이 되기를 포기한 인간을 조각했다. <생각하는 사람>, <칼레의 시민들>, <지옥의 문> 속 인물들은 모두 어떤 선택 앞에서 몸이 먼저 반응한 존재들이다. 로댕의 혁신은 기술이 아니라 관점에 있었다. 그는 인간을 위에서 내려다보지 않았다. 조각을 높은 좌대에서 끌어내려, 관람자와 같은 눈높이에 두었다. 그 결과 우리는 조각을 바라보는 대신, 그 곁에 서게 된다.
로댕의 조각 앞에서는 설명이 필요 없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단 앞에서 몸이 먼저 무거워지는 감각을, 생각이 깊어질수록 자세가 굽어지는 순간을.
로댕은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조각은 분명히 말한다. 사유는 고상한 활동이 아니라, 인간이 감당해야 하는 무게라고.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 Durante degli Alighieri, 1265-1321)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이면서, 동시에 한 세계를 설계한 사상가였다. 그는 철학을 강의하지 않았고, 논증으로 사유하지도 않았다. 대신 인간 한 명을 길 위에 세우고, 그가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는지를 끝까지 따라갔다.
단테에게 세계는 추상적인 질서가 아니라 살아 있는 구조였다. 인간의 선택은 사라지지 않고, 형태를 바꾸어 남는다. 그는 이 생각을 개념이 아니라 지옥·연옥·천국이라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신곡>은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윤리학이다. 종교서이면서 정치철학이다. 시이면서 존재론이다.
그의 시 속에서 인간은 늘 자유롭지만 무겁다. 단테는 인간을 연약한 존재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 자신의 선택을 끝까지 책임질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단테의 지옥이 잔인한 이유는 형벌이 혹독해서가 아니라, 형벌이 너무 정확하기 때문이다.
단테는 망명자였다. 도시에서 추방되었고,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났다. 그러나 추방은 단테를 침묵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중심에서 밀려난 자리에서 세계 전체를 바라보는 시선을 얻었다. <신곡>은 개인의 구원이자, 동시에 타락한 시대에 대한 고발이다.
단테는 믿었다.
인간은 추락할 수 있지만, 생각할 수 있고, 다시 방향을 바꿀 수 있다고. 다만 그 사유는 언제나 고통을 통과해야 한다고. 그래서 단테의 철학은 머리에 머물지 않는다. 그의 사유는 언제나 몸을 가진 인간에게로 돌아온다.
로댕 이후 조각은 더 이상 아름다운 형태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이 몸에 남기는 자세를 붙잡는 일이 되었다.
사실주의를 넘어 '살아 있는 몸'을 만든 계열
쥘 달루(Aimé-Jules Dalou,1838-1902) <공화국의 승리> 1899. 청동.
마리안 정원, 나시옹광장, 파리, 프랑스.
프랑스 제3공화국을 기념한 대형 군상 조각이다. 이 작품의 ‘승리’는 군사적 영광이 아니라 시민적 가치의 행진에 가깝다. 중앙에는 자유와 공화국을 상징하는 여성상이 서 있고, 그 주변을 노동, 정의, 교육, 풍요를 상징하는 인물들이 둘러싼다. 영웅 한 명이 중심에 서는 대신, 공동체 전체가 공화국을 떠받치는 구조다.
달루는 이상화된 신체보다 현실적인 시민의 몸을 선택했다. 이 기념비는 위엄을 과시하기보다, 공화국이 노동과 시민의 삶 위에 세워졌다는 선언처럼 읽힌다.
로댕의 <칼레의 시민들>이 희생의 순간을 보여준다면, 달루의 <공화국의 승리>는 희생 이후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문(門)/지옥/군상(群像)이라는 형식적 친연성
로렌초 기베르티(Lorenzo Ghiberti,1378-1455) <천국의 문> 피렌체 세레당 동문.
피렌체 세례당 동문으로 제작된 청동 부조 문으로, 르네상스 조각의 출발점이라 불리는 작품이다.
구약성서의 장면들이 10개의 패널에 담겨 있으며, 각각은 한 장면이 아니라 여러 사건을 하나의 공간 안에 동시에 배치한다. 기베르티는 원근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평평한 문 위에 깊이 있는 서사 공간을 만들어냈다.
이 문은 단순한 출입구가 아니라, 인간이 신의 질서로 들어가는 ‘서사의 경계’다.
미켈란젤로는 이 문을 보고 “천국의 문이라 불러도 좋겠다”고 말했고, 그 이름이 그대로 남았다.
로댕의 <지옥의 문>이 인간의 추락과 윤리적 고통을 보여준다면, 기베르티의 <천국의 문>은 구원과 질서가 서사적으로 열리는 입구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5부 기술과 이미지, 인간 이후
22화 베르나르 스티글레르와 백남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