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의 우주 - 색으로 읽는 세계의 기억

색에 관한 연재를 시작하며

by morgen

우리는 색을 빛의 성질이라고 배운다. 프리즘을 통과한 빛이 분해되면 빨강과 파랑, 노랑이 나타난다고. 빛이 섞이면 흰색이 되고, 색이 섞이면 검은 색이 된다고.

프리즘이 없었을 때에도 무지개는 있었다. 색에 이름을 붙여주기 이전에도 색은 존재했다. 빨강 노랑 파랑 하양 까망.. 이런 이름표를 달지 않았을 때, 하늘색 바다색 땅색 나무색으로 색은 제 자리에 있었다. 한때 색은 돌이었고, 흙이었고, 식물이었고, 금속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캐내고, 갈고, 태우고, 섞어서 비로소 색을 만들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색은 표면이 아니라 물질의 기억이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Louis Pierre Bachelard, 1884-1962)는 인간의 상상력이 네 가지 원소 - 흙, 물, 공기, 불 - 위에 세워져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것들을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감각과 정서, 꿈과 기억의 형태로 경험한다. 어떤 것은 무겁고 아래로 가라앉으며, 어떤 것은 깊이 잠기고, 어떤 것은 위로 떠오르고, 어떤 것은 타오른다.

색도 마찬가지다. 어떤 색은 흙처럼 따뜻하고 무겁다. 어떤 색은 물처럼 깊고 멀다. 어떤 색은 공기처럼 가볍고 투명하다. 어떤 색은 불처럼 눈부시고 위험하다. 인간의 간섭으로 조합된 새로운 색은 신비롭다. 색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경험하는 원소에 가깝다.

가스통 바슐라르의 4원소에 관한 책들. 물, 흙, 공기, 불.


색은 단순히 보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온 것이다. 색은 물질에서 태어나 장소에서 살아간다.

이 연재는 한 가지 색을 하나의 세계로 바라보려는 시도다. 어떤 색은 도시의 벽에서 태어났고, 어떤 색은 바다의 깊이에서 왔다. 어떤 색은 가마 속에서 만들어졌고, 어떤 색은 빛 속에서만 존재한다. 이 글은 색을 따라 세계를 여행하는 글이 될 것이다. 시에나→ 토스카나 도시, 블루 타일→ 리스본 골목, 터키 그린→ 이즈닉 타일과 모스크, 옐로우→ 황해(서해), 이런 식으로 독자는 글을 읽으면서 이동하게 된다.

동서양의 예술을 가로질러 색이 지나온 길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물감의 이름이 아니라 문명의 흔적을 만나게 된다. 시에나라는 색은 실제로 이탈리아 땅에서 채취되었다. 코발트는 한때 금보다 비쌌다. 이슬람에서 중국을 거쳐 조선까지 먼 길을 따라왔다. 청자는 불과 흙이 만들어낸 색의 기적이었다.

색은 언제나 자연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다. 색은 물질에만 머물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그것은 감정이 된다. 어떤 색은 위안을 주고, 어떤 색은 불안을 일으킨다. 어떤 색은 기억을 깨우고, 어떤 색은 침묵을 만든다.우리는 종종 이유도 모른 채 특정한 색에 끌리거나 거부감을 느낀다. 그것은 취향이라기보다 살아온 시간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미술관에서 한 그림 앞에 오래 머물게 되는 순간이 있다. 무엇을 보고 있는지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눈을 떼기 어려운 때. 그때 우리를 붙잡는 것은 대개 형태가 아니라 색이다. 색은 언어 이전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이름을 붙이기 전에 이미 느껴지고 설명하기 전에 이미 기억과 연결된다. 색은 가장 개인적이면서도 가장 보편적인 언어다.


이 연재에서는 한 가지 색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시대와 장소의 예술을 함께 바라보려 한다. 성당의 제단화와 현대미술, 도시의 벽과 도자기, 회화와 건축, 때로는 문학과 기억까지. 색은 언제나 경계를 넘기 때문이다. 활자화된 색은 실제 색깔보다 더 자세히 색을 드러낸다.

"나뭇잎에 대한 색깔을 적어나가기 시작하면, 초록에서부터 한도 끝도없는 온갖 색깔을 다 쓰게되는데, 붉은 녹슨 빛깔이라거나, 우거지 낀 오이지 빛이라거나, 애벌 칠한 철제품의 은빛이라거나, 백여가지도 넘는 나뭇잎 색깔들을 적어낸다."(에세이 "나의 글쓰기 연습"에서).

한 나라의 색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다른 문화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나타나고, 전혀 다른 시대의 작품들이 같은 온도를 공유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색은 세계를 분리하기보다 은밀하게 연결한다. 이 글은 색에 대한 해설이 아니라 색을 따라가는 여행에 가깝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이루고 있는 물질과 시간, 인간의 감정이 어떻게 하나의 색 속에 응축되어 있는지를 조용히 들여다보려 한다.

색은 단순히 보이는 것이 아니다. 살아온 것이다. 흙이 되고, 불을 지나고, 빛과 시간 속에서 변하며 마침내 눈앞에 나타난다. 브런치 북 <색의 우주 - 색으로 읽는 세계의 기억>은 긴 여정을 거슬러 올라가는 시도다.

첫 번째로 다룰 색은 시에나(Sienna)다. 땅에서 태어나 도시를 물들이고 그림 속에서 시간을 머금은 색. 아마도 모든 색 가운데 가장 오래된 기억을 간직한 색일 것이다.


색은 빛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래전부터 땅과 돌, 식물과 불 속에 잠들어 있었다. 시에나는 철을 품은 흙에서 태어났고, 파랑은 귀한 돌이나 깊은 바다, 혹은 인간이 만들어낸 화학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녹색은 식물의 잎과 구리의 녹에서, 흰색은 석회와 납, 티타늄 같은 광물에서 왔다. 붉은색은 피와 흙, 때로는 작은 곤충의 몸에서 얻어졌고, 노랑은 황토와 비소 광물, 근대의 합성 안료로 이어졌다.

분홍은 독립된 색이라기보다 붉음이 빛 속에서 희석되며 생겨난 근대의 색에 가깝고, 주황은 불과 과일의 색이지만 대부분 다른 색들의 혼합에서 만들어졌다. 갈색은 나무와 흙처럼 가장 오래된 자연의 색이다. 회색은 재와 금속의 흔적에서 태어난다. 검정은 불이 남긴 탄소의 색이고, 금색은 안료라기보다 금속 자체가 빛을 되돌려 보내며 만들어내는 색이다.

이렇게 보면 색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표면이 아니라, 세계를 이루는 물질과 시간의 압축된 형태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한 가지 색을 바라본다는 것은 결국 돌과 흙, 생명과 불, 인간의 손이 지나온 긴 시간을 함께 바라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며칠 전 브런치 이웃 "트릴로그 trilogue" 작가님의 이태리 토스카나 여행기를 읽었다. 글속 사진의 "시에나" 색깔이 나를 사로잡았다. https://brunch.co.kr/@hongblee1/65

또 며칠 전, 옆지기와 함께 옛 이야기를 하다가 이인성 작가의 작품 <경주의 산곡에서>를 설명하게 되었다. 영감이라고 할까, 색(color)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손녀는 우리집에 오면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뽑아서 장난감삼아 놀곤 했다. <컬러, 그 비밀스러운 언어>(조앤 엑스터트, 아리엘 엑스터트 지음, 신기라옮김. 2014. 시그마북스)는 항상 보는 책으로 겉표지가 찢어진 상태다. 오랫동안 방치하던 그 책을 열어봤다. 색을 물리와 화학을 동원하여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다행히(?) 내가 시도하는 <색의 우주>와는 다른 편집이다.

짧은 기간동안 "색color"이 여러 이유로 내 옆구리를 쿡쿡 찔러댔다. "쓰라고, 쓰라니까! 시작해!"

쓰기로 했다. 색에 대하여. 연재 기획에 영감을 준, 시발점이 된 "시에나"부터 쓴다.


1부 자연과 물질의 색

Sienna — 흙

Blue — 하늘·바다·초월

Green — 생명·정원·균형

White — 빛·침묵·비움


2부 인간과 감정의 색

Red — 피·열정·권력

Yellow — 태양·불안·광기

Pink — 육체·친밀성·현대성

Orange — 에너지·도시·팝


3부 시간과 존재의 색

Brown — 대지·노화·일상

Gray — 산업·중립·모호함

Black — 죽음·권위·절대

Gold (또는 Silver) — 신성·가치·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