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생각은 언제 사람 사이에서 시작되는가
2부 생각은 언제 사람 사이에서 시작되는가
7화. 생각은 언제 눈치를 닮아가는가
생각은 혼자 있을 때 더 자유로워진다고 믿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방 안에서는 어떤 생각도 부끄럽지 않았다.
엉뚱한 상상도, 미숙한 판단도, 심지어 모순된 마음도 그저 떠올랐다가 사라질 뿐이었다. 세상 어느 누구도 내 머리 속에 들어와 현미경을 들이댈 수 없다.
자유로운 생각이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는 순간 생각은 갑자기 방향을 바꾸기 시작한다. 이 말을 해도 될까. 지금 웃어야 할까. 조용히 있어야 할까. 내 표정이 이상하지는 않을까. 생각은 더 이상 무엇을 느끼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보일 것인가를 향해 움직인다. 눈치보기가 시작된다.
나이의 숫자가 점점 더 늘어나더니 확실한 노인이 되었다. 사회적으로 노인의 연령을 어느 선으로 정해야할 지에 대하여 설왕설래 시끄러워도 그 선을 한참 넘어왔다. 사회에서 정한 노인의 나이는 내 나이를 넘지 못한다. 몸이 보여주고 생각이 알려준다. 노인의 생각, 달라졌을까? 깊고 넓어져 사려깊은 노인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는 희망일 뿐, 눈치만 늘어난 것 같다.
눈치는 이상한 능력이다. 누군가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어느 순간부터 저절로 몸에 배어 있다. 어린아이에게는 눈치가 없다.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웃고 싶으면 웃고, 싫으면 울어버린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아이의 말은 멈칫거리기 시작한다. 이 말을 하면 혼날까. 이 표정은 괜찮을까. 지금은 조용히 해야 할까. 그때부터 생각은 자신의 감정이 아니라 타인의 반응을 먼저 떠올린다.
눈치는 배려심으로, 무례함으로, 수시로 변하며 우리들을 지키고 있다. 눈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가장 원초적인 생존 기술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것을 예의라고 부르기도 하고, 배려라고 부르기도 하고, 성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눈치는 행동 이전에 생각에서부터 시작된다. 때로 눈치는 자신을 지우는 기술이 되기도 한다. 입안에 맴돌던 말을 꿀꺽 삼키고, 생각과 다른 표정을 지으며 마음을 수정한다. 마치 원래의 생각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검열을 받는 것처럼.
사람들 사이에서 오래 지내다 보면 생각은 점점 둥글어지고 모서리를 잃어간다. 둥글어진다는 것은 부드러운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잘 손질하고 포장한 상태로 위장하기도 한다. 정확해지기보다 무난해지고, 솔직해지기보다 적절해진다. 그것은 틀린 변화가 아니다. 우리는 서로를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눈치보기가 지나치면 예의바름보다는 비겁하기까지 하다. 눈치보기의 상식선은 어디까지일까.
가끔은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보다 남들이 어떻게 느꼈을지를 더 오래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 순간, 생각은 이미 눈치를 닮아 있다. 눈치는 공기를 읽는 능력이다. 하지만 공기를 읽다 보면 자신의 목소리를 잊어버리기도 한다. 회의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돌아오는 길, 지하철 창문에 비친 얼굴이 유난히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그 질문은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눈치의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종종 눈치 없는 사람을 무례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눈치 보지 않고 사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내 안의 양가감정이다. 그들은 공기를 바꾸는 사람이고 우리는 공기에 맞춰 숨 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눈치는 갈등을 줄이지만 자유도 함께 줄인다. 사람들 사이에서 생각은 점점 더 조용해진다. 어쩌면 성인이 된다는 것은 눈치 없는 생각을 점점 덜 하게 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완전히 눈치만 남은 생각은 결국 자기 자신과 멀어진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싫은지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지 어디서부터 힘든지 그 기준이 흐려진다.
빌헬름 함메르쇼이 <실내, 뒤에서 본 젊은 여성> 1904. 캔버스에 유채, 60.5X50.5cm.
란데르스 미술관, 덴마크.
가끔은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누구의 표정도 읽지 않아도 되는 시간, 어떤 반응도 예상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 시간 속에서 생각은 다시 원래의 모양을 찾는다. 눈치를 닮기 전의, 조금 서툴고, 조금 직선적이고, 조금 이기적이지만 분명 살아 있는 생각.
생각은 늘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는 사소하지 않은 것이 된다. 누군가의 기분이 되어 상대의 감정에 파문을 일으킨다. 관계의 균형이 되어 서로를 맞추려고 애쓴다. 때로는 침묵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생각을 하기 전에 먼저 주위를 둘러본다. 지금 생각해도 되는 분위기인지. 어쩌면 진짜 질문은 이것인지도 모른다.
생각이 눈치를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보다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존재라는 사실. 혼자 있을 때의 나와 사람들 사이의 내가 서로 다른 이유는 그 중 하나가 가짜라서가 아니라 둘 다 진짜이기 때문이다.
밤잠을 설칠 때 습격하는 해묵은 생각들은 감당하기 힘들다. 눈치보느라 펴보이지 못했던, 뇌 주름의 갈피갈피를 헤매기만 하다가 결국은 사그러들거나 사멸하는 생각들을 어떻게 다뤄야할 지 모르겠다. 남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억울한 일도, 남보기에 같잖은 꿈도, 우울과 희망이란 옷을 입고 밤새 어둠 속을 돌아다닌다. 그놈의 "눈치"보느라고 마음껏 발산하지 못한 생각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이다.
생각은 언제 눈치를 닮아가는가. 아마도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기 시작한 순간부터일 것이다. 그 눈치 덕분에우리는 서로를 상처 입히지 않고 같은 공간에서 버틸 수 있다. 다만 가끔은 눈치를 잠시 내려놓고 자신의 생각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조용히 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곳에는 아직 말로 나오지 않은 진짜 마음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니까. 어떤 사람들은 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보이지 않기를 선택한다. 말하지 않은 생각은 보이지 않는 얼굴에 있다. 뒤돌아선 몸이 관계 속 거리를 말한다. 움직이지 않는 시간 속에 생각은 내부로 굳어있다.
서울 나들이를 왔다. 서울 오피스텔에서 철수한 이후로 첫 걸음이다. 호텔에서 잠을 설치며 하룻밤을 보냈다. 어디를 갈까, 무엇을 먹을까, 어떤 일을 할까, 많지도 않은 몇 가지 생각들을 정리하고 선택하여 결정하는 일도 쉬운 것이 아니다. 참 바보같다.
북촌 나들이를 가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노트북이 들어있는 가방이 부담이다. 무얼 먹을 지 생각해보지만 특별히 먹고싶은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결국은 광화문까지만 왔다. 서울에 있을 때 자주 가던 카페에 들러 샐러드 브런치를 먹고, 커피를 마시며 게으르게 시간을 보냈다. 아하~! 오늘이 연재글 발행 예약한 토요일이구나!
갑자기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노트북을 펼쳤다. 누가 기다린다고.... 그래도 연재를 시작했으니 발행일은 지켜야지.
카페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오래 앉아있으니 눈치가 보여 필요하지도 않은 커피를 또 시키고, 조각 케익도 시켜 먹는다. 샐러드와 커피 또 커피 케익, 벌써 한식 밥 한끼 값을 넘었다. 이럴 땐 짐짓 눈치없는 내가 되고싶기도 하다. 눈치없이 자기 생각을 맘대로 내보이는 사람이 부럽다.
2부 생각은 언제 사람 사이에서 시작되는가
8화. 생각은 언제 말하지 못한 채 남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