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언제 사람을 의식하기 시작하는가

2부 생각은 언제 사람 사이에서 시작되는가

by morgen

2부 생각은 언제 사람 사이에서 시작되는가

6화. 생각은 언제 사람을 의식하기 시작하는가


설 명절을 지나며 일상의 리듬이 깨지는 것에는 짜증이 났다. 그 짜증 이상으로 충분한 즐거움과 행복감을 선물 받기도 했다. 이제야 허공에 떠돌던 나의 정신은 제 자리에 안착했다. 덤으로 얻은 것은 가벼운 내 결심으론 어려운 '디지털 디톡스'를 했다는 것이다. 깨어진 루틴 덕분에 -때문에가 아니라 덕분에 '언젠가,ㅡ 언젠가는...'하면서 마음 속으로 벼르던 디지털 디톡스를 실행했다. 전적으로 내 의지에 의해서가 아닌, 환경 때문에 한 일이니 이럴 땐 수동형 문장을 써야 할 듯. 드디어 디지털 디톡스가 실행되었다. 그것도 하루가 아닌 며칠 동안.


생각은 늘 혼자 있을 때 시작된다고 믿고 있었다. 조용한 밤, 아무도 없는 방, 말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때야 비로소 머릿속이 움직이기 시작한다고. 낮에는 분명 아무렇지 않았던 일들이 밤이 되면 이상하게 또렷해진다. 목소리의 높낮이까지 기억나고, 그때의 공기까지 되살아나는 것처럼.

어느 순간 문득 깨달았다. 내 생각의 대부분은 누군가를 떠올릴 때 시작된다는 것을. 혼자 있어도 완전히 혼자인 적은 거의 없다. 낮에 들은 말 한마디, 표정 하나, 답하지 못한 질문, 지나치며 들은 웃음, 그것들이 머릿속에 남아 밤이 되면 낮에 지나간 장면들이 다시 떠오른다.

말하지 못했던 순간, 어색하게 웃고 넘어간 표정, 이미 지나가 버린 한마디. 생각은 그렇게 타인의 그림자를 끌고 온다.


어릴 때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도 생각할 수 있었다.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하고 싶은 일, 하기 싫은 일.기준은 단순했다. 나였다. 하지만 자라면서 생각의 중심이 조금씩 이동한다. 내가 아니라 ‘나를 보는 사람’에게로.

어떤 말을 하기 전에 상대의 표정을 먼저 떠올리고, 어떤 선택을 하기 전에 누군가의 반응을 상상하고,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를 먼저 생각한다. 그 순간부터 생각은 더 이상 혼자의 것이 아니다.

사람을 의식한다는 것은 타인을 두려워한다는 뜻만은 아니다. 오히려 관계 속에 들어왔다는 신호에 가깝다.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더 조심스럽고, 소중한 사람 앞에서 더 많은 생각을 한다. 무관심한 사람 앞에서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생각은 사람이 많을수록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사람이 있을 때’ 가장 깊어진다. 아무 의미 없던 말도 오래 남고, 사소한 표정 하나에도 이유를 찾게 된다. 말을 한 뒤에 자꾸 되돌아보게 되는 사람, 답장이 늦으면 괜히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 별것 아닌 한 마디가 하루 종일 남아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생각을 만들어내는 중심이 된다.


드가 압생트.jpg

에드가 드가 <압생트 / 카페에서> 1876. 캔버스에 유채, 92×68cm. 오르세이 미술관, 파리, 프랑스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지만 서로 단절된 상태처럼 시선이 만나지 않고, 침묵이 흐르고, 모호한 관계 속에 있는 사람들. 사회 속 고독을 체감하는 순간에 생각은 넝쿨을 뻗어간다. 사람을 의식한다는 것은 반드시 서로를 바라본다는 뜻은 아니다. 함께 있지만 서로에게 닿지 않는 순간에도 생각은 시작된다.


어쩌면 생각은 혼자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멈추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을 의식하기 시작하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덜 자유로워진다. 하지만 동시에 조금 더 인간이 된다. 상처받을 수 있고, 기대할 수 있고, 후회할 수 있는 존재로.

그때부터 생각은 단순한 판단이 아니라 감정이 섞인 질문으로 변한다.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그 사람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나는 그 사람에게 어떤 존재였는지까지 끝없이 되묻게 된다.

어쩌면 생각이 시작되는 진짜 순간은 혼자 조용해질 때가 아니라 누군가가 마음속에 들어와 조용히 자리를 잡을 때인지도 모른다. 그 사람을 떠올리지 않으려 할수록 더 많이 떠올리게 되고, 잊었다고 생각할수록 다른 장면으로 다시 나타난다. 생각은 종종 이렇게 시작된다. 혼자였는데 혼자가 아닌 순간부터.

우리는 그렇게 혼자서도 누군가와 함께 생각한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도 완전히 혼자인 적은 없다.



2부 생각은 언제 사람 사이에서 시작되는가

7화. 생각은 언제 눈치를 닮아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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