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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Jul 09. 2020

옆집 남자는 요섹남, 내 남자는...

여자가 쓴 남자이야기 7

오늘은 특별한 요리 대신에 한 끼 식사가 될 수 있는 수제비를 만들어 봅니다. 

수제비 딱 한 가지만 끓이면 있는 김치에 한 끼 해결. 


수제비, 그래 밀가루 반죽, 싱크대 밑에서 큰 그릇도 찾았고, 밀가루도 찾았다, 쉽다. 

밀가루를 담고 수도꼭지를 바라보다가 번개같이 떠오른 기특한 생각, 정수기물로 반죽해야지. 

밀가루에 물 넣었으니 반죽의 반은 끝난 셈. 아니, 이거 전을 부칠 것도 아닌데... 너무 질다, 밀가루 더 넣어서 맞추면 되지, (이게 한 번에 맞춰지면 다행이지만) 아니 너무 되네, 다시 물 보충...몇 번 반복인지는 비밀! 

이만하면 반죽은 good, good! 


아, 국물이 있어야 끓이지, 고기? 아니 수제비 주제에 무슨 고기? 멸치 다시로 하자, 멸치 낙점. 

소리 질러서 멸치 어딨냐고 묻고 찾고, 정수기 물 받아 국물을 끓인다. 됐다. 밀가루 반죽만 떠 넣으면 다 된다. 

설설 끓는 다시국물에 수제비를 뚝 뚝 떼 넣으며 나름 대견해서 으쓱으쓱. 

갑자기 소리 지르기 시작한다. 간장 어딨어, 소금은, 마늘 다진 것 있어? 예 냉동실에 둔 것 있는데요. 

달걀좀 풀어 넣어야겠네, 아 파릇파릇 파를 좀 송송 썰어넣어야 폼나지, 파는 어딨어? 냉장고 야채서랍에 있잖아요! 


우여곡절 끝에 수제비 미션 완수!

다행히 소금과 설탕은 구별해서 넣었구나, 대견해.(천만 다행입니다.) 

근데 파릇파릇 파는 어디갔나? (오랜 시간의 세월 속에서 녹았지요 ㅋㅋ) 

역시 장사는 밀가루 장사가 최고야, 밀가루 조금 가지고 이렇게 많이 늘어나니까 돈 벌지, 대단한 발견, 으쓱으쓱.(어떤 분식집에서 이렇게 팅팅 불어터진 음식을 주고 제값을 받는다고 흥, 콧방귀) 


국물이 걸쭉하니 더 좋은데! 멀건 국물보다는 뱃속도 더 든든해지고, 이것 괜찮네.(아이구 맙소사, 이 특특함, 이 국물이 풀이냐 맑은 장국이냐?) 

맛나게(혼자만. 식구들은 먹어주느라고생고생 했구만) 먹은 후. 안락의자에 잠시 앉자마자 부엌으로 잡아끌려 가고 만다. 다행히 귀를 잡히진 않고 팔이 잡혔다.

내가 앓느니 죽는다 죽어! 


한바탕 전쟁이 끝나고 난 후의 싱크대 풍경. 수제비 대미션 완성 후의 모습을그려봅니다. 

밀가루 범벅된 정수기 꼭지, 수도꼭지, 냉장고 손잡이, 야채박스... 완벽히 보존된 밀가루와 손의 자취들. 

국물이 부글부글 끓어넘은 가스렌지에 누렇게 눌어붙어 화석이 된 수제비 국물. 

퍼먹고 남은 남비에 식구 수 곱하기 세 배쯤으로 불어버린 멸치 다시 풀국과 오동통 수제비 건더기. 

여기저기 흩어져 놓여있는 간장병, 소금그릇, 냉동고에서 나와 녹아버린 마늘, 파를 자른 도마와 칼, 싱크대에 나뒹구는 풀물 주르르 흐르는 국자... 볼만하다 과연 볼만하다. 바싹 말라비틀어진 달걀 푼 대접까지. 


다음에 수제비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 지, 가르쳐 주고 싶지 않습니다. 

안 하는게 많이 도와주는 것이라는 말만 하고 끝내죠.  

맑은 장국의 시원한 맛, 밀가루 반죽의 쫄깃쫄깃한 식감, 파릇파릇한 양념 파의 색감, 간단한 준비와 간단한 설거지. 

그런 꿈을 포기한 여자가 왜 또 남자에게 수제비를 시키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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