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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Jul 09. 2020

어쩌다 주부

여자가 쓴 남자이야기 6

유치원 다니는 아이 둘, 아내는 회사출근, 남편은 프리랜서(프리하지 않은 프리랜서지만, 그래도 프리하다는 오해의 피해자)로 며칠간 가사 전담.  

이 남자의 하루를 엿봅니다.  


우선 아이들 간단히 아침 먹이고, 시간 맞춰 유치원 차 태워 보내고 집에 들어오죠.  

식탁 한 가득 늘어놓은 이것저것들. 살짝 밀어붙이고 국말이 밥 한 대접 뚝딱. 커피까지 홀짝.  

아내가 던져놓은 그릇들로 그득한 싱크대에 또 보탠 밥그릇 국그릇 커피잔. 일단 다 휩쓸어 싱크대에 넣고 설거지부터 합니다.  


이 방 저 방 다니며 이부자리 정리하고, 빨래감 주워다 빨래통에 넣고, 목욕탕에 들어가 젖은 수건 걷어다 또 빨래통에 넣고 어수선한 것 정리.  

청소까지 열심히 하고, 쓰레기 버리고, 이제한 숨 돌렸다, 좀 쉬자!  

아니 빨래도 해야겠구나. 쉬려다 말고 세탁기를 돌립니다. 얼마 지나서 끝나면 건조대에 넙니다.  


아침 신문 좀 뒤적거리다 보니 점심 때. 아니 세수도 안 했잖아. 샤워합니다.   

씻은 김에 외출. 마트에 가서 이것저것 먹거리를 삽니다. 시금치, 두부, 감자, 고등어, 우유, 과일...  

장봐온 것 냉장고에 정리하고, 냉장고 연 김에 반찬 꺼내어 훌쩍 때 지난 점심끼니 때웁니다.  

반복되는 설거지.  


다리좀 뻗어보자. 소파에 길게 누워 살포시 눈이 감기려는 순간, 벌떡 일어납니다. 유치원 차 오는 시간 놓치면 큰일이다, 잠들면 안 돼. 애매한 커피만 한 잔 더 내려 먹지요.  


이제 유치원 차 오는 시간.  

쫓아 나가서 두 아이들 데리고 들어와,  간식 먹이기, 대충 씻기기, 조금 놀아주는 척 하기...  

그 정도하면 아이들은 저대로 놀고, 남자도 노는 시간, 자유시간을 누릴 수 있지요.  

그런데 이 남자, 저녁 준비하러 부엌으로 가네요.  

우선 두부 부침하려고 썰었는데 물기가 많아 손바닥으로 살짝 누르다가 두부 몇개 부서뜨린 후, 도마를 기울여서 물기 빠지도록 잠시 놔둡니다. 멍하니 기다렸다가 두부 부침. 

시금치 데치려고 물 올려놔서 끓이고 데치고 헹구고... 감자 깎아서 된장찌개 끓이니 대충 된 것 같습니다.  

저녁을 먹으면 또 설거지의 반복. 아이들 목욕 시키기.

참 너줄하게도 주저리주저리 썼네요. 그러나 어째요? 정말 이렇게 하루를 다 보낸 게 사실인데 다 써야죠.


자, 여자들이 어떻게 하는지 한번 볼까요?  

빨래를 먼저 시작합니다. 세탁기 돌아가는 시간에 설거지와 청소 번개같이 합니다.  

빨래 널고나면 아이들 올 때까지는 룰루랄라 자유시간!

전화통 붙들고 수다떨고, 아침 드라마 보고, 인문서적으로 살짝 교양도 쌓고, 홈쇼핑 눈요기로 패션감각도 높이고... 남자들이 도저히 빼낼 수 없는 시간을 누립니다.  


저녁준비. 우선 가스불에 야채 데칠 물을 올려놓습니다. 물이 끓기 전까지 재빠르게 시금치 다듬고, 두부 썰어서 물기 빼고 감자 깝니다. 다음 할 일은 메모지에 적어서 붙여놓지 않아도 머리속에 질서있게 입력되어 있지요. 저녁 설거지까지 다 끝내고 잠자리에 들기까지의 순서가 머리 속에 다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요 머리 속 순서에 잠깐 주목!

그 기획에 끼어있는 가족중 누군가가 머리 밖에서 질서를 어기면, 여자의 목소리는 한 옥타브 올라가게 됩니다.  빨리 씻어, 텔레비죤 꺼, 불꺼, 누워, 어서 자! (코골지 마, 명령이야.)


세탁기가 돌아가는 시간과, 데침 물 끓이는 시간이면 몇 가지 일을 한꺼번에 다 처리합니다.  

남자는 왜 앞 뒷 일 순서없이 싱크대 앞에 서서 한 가지 씩 일이 끝나기를 멍하니 기다리고 있을까요? 왜요?  

도대체 일머리 없는 남자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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