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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Jul 09. 2020

해설이 필요해

여자가 쓴 남자이야기 5

여자와 함께 마트에 가서 카트 한 가득 물건을 사고, 큰 박스포장하고 돌아와 부엌에까지 친절하게 날라다 놓습니다. 여자는 한참동안 사온 물건을 정리하느라 부엌에 머물러있습니다. 


다음 식사 시간. 은근슬쩍 별미를 기대해보지만 반찬의 변화는 화끈하지 않네요. 뭐야, 이거? 의아합니다. 시장을 한 가득 봐왔는데... 서운합니다.


자, 무엇을 그리 많이 샀는지 살펴봅시다.

고추장 3Kg, 진간장, 식용유 큰병, 설탕 1Kg, 큰 트렁크만큼 대용량 포장의 화장지, 샴푸, 린스, 5Kg짜리 세탁세제, 오이 한 자루, 수박, 참외...

왜 이렇게 반찬도 안 되는 무거운 것만 잔뜩 샀느냐고요?

짐꾼이 따라붙었으니 무거운 것 한꺼번에 몰아서 사는 것 당연하죠. 기사도 정신으로 선뜻 카드 꺼내어 긁어주는 남자가 따라붙었으니 생필품 몰아서 왕창 끌어오는 것 당근이죠.

그럼 반찬거리는? 뭐가 걱정인가요, 내일 장바구니 하나 달랑 들고가서 가볍게 사오면 되는 것을.


여자는 벌써 몇 시간인지 모르게 오래도록 부엌에서 나올 줄을 모릅니다.

일할 게 많은 것 같아서 딱하기도 하고, 아이랑 같이 안 놀아줘서 짜증나기도 하고, 별로 마음이 편치는 않은 남자.

그렇게 오래 할 일이 많으면 남자가 나서서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닐까, 여자가 은근히 도와주러 오기를 기다리며 언제오나 보자고 벼르고 있는 건 아닐까, 슬쩍 불안하지요.

아이랑 놀아주는 즐거움은 잠깐 지나갔고, 보살펴야하는 귀찮음은 점점 커져가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되지요? 일은 내가 집에 없을 때 하지 왜 꼭 내가 있을 때 하느라고 난리야.

그러다가 망상에 가까운 반전 생각, 오홋! 내가 집에 있으니 특별 요리를 하는구나, 슬쩍 흐뭇해집니다.

그런데 막상 밥상을 대하고 보니 이게 웬일? 이게 뭐야, 말짱 밑반찬 뿐이잖아.


자, 여자가 왜 그렇게 오래 부엌 일을 했는지 알아볼까요?

깨를 씻어서 체에 일어서 볶았고, 끓는 물에 오이를 튀겨서 오이지를 담았고, 수박을 보관하기 좋게 잘라서 냉장고에 넣었고, 마늘을 한 바가지까고 씻고 갈고, 큰 통에 조금 남아있는 반찬들을 작은 그릇으로 옮겨서 큰 반찬통 씻어놓고, 레인지 후드 냉장고 싱크대 문짝 모두 닦고, 멸치 오징어 연근 밑반찬만들고.

시간 많이 잡아먹는 이런 일들은 남자가 아이랑 놀아줄 때 부지런히 해둬야죠. 그래야 아이가 낮잠 잘 때 쉴 수 있거든요. 그래야 큰 아이 학원간 후에 여자도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거든요. 할 일을 기회 있을 때 부지런히 해둬야 자유시간이 남는다는 것을 몸소 체득한 여자니까요.


아, 도대체 세 식구에 빨래는 뭐가 그리 많다고 세탁기는 벌써 몇 번째 돌리고, 나랑 안 놀아주고 일만 하는거야?

남자는 빨래 바구니에 있는 것만 달랑 빨아 널면 끝이지만, 여자는 베겟닛도 빨고 메트리스 커버도 이불도 빨거든요! 싱크대 앞 매트와 욕실 앞의 발매트도 빨거든요! 커텐은 안 빨아도 된답니까?


청소에도 한 말 보태겠습니다.

남자는 방과 거실만 청소기 돌리고 닦으면 참 대단한 일 했다고 우쭐하죠?

유리도 닦아야하고, 현관바닥도 닦아야하고, 목욕탕도 베란다도 청소해야 되거든요!


 남자가 서너시간 낑낑대며 하는 일을 삼십분만에 뚝딱 끝내는 신의 경지에 들어선 여자이기도 하지만요,

남자가 눈에 보이는 일만 후딱 끝내고 마는 것을, 일거리 찾아서 하루 종일 꼼지락꼼지락 거리며 일하는 게 여자이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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