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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Jul 09. 2020

빨래하는 예술가

여자가 쓴 남자이야기 8

빨래통에 눈이 갑니다. 빨래라면 쉽지, 까짓것, 세탁기만 돌리면 끝인데, 이거나 해주자.


세탁기 문열고 빨래통 거꾸로 쏟아 넣습니다. 세제통에, 린스통에 세제와 린스 채워 넣지요. 규격이란 것은 그대로 맞추라고 정해져 있는 것, 그래서 통 크기만큼 꽉차게 세제와 린스를 채워 넣습니다. 어느 쪽이 세제 칸이고 어느 쪽이 유연제 칸인지 알기는 하는지???

세탁기야 빨래는 네가 해라 나는 논다. 끝나면 알려다오.


게임합니다. 음악 듣습니다. 신문봅니다. 인터넷 서핑합니다. 잠이나 잠깐 자자, 잡니다.

갑자기 세탁기 돌아가는 소음이 없는 것을 인지하죠(놀라운 인지능력). 왜 끝났다는 신호음이 안 울렸을까...

세탁기를 점검하러 다가갑니다(끝났나 하는 생각은 없습니다. 기계고장인가 하는 생각이 살짝 듭니다.). 통속엔 끝난 빨래가 얌전히 쉬고 있네요.

언제 세탁기 끝나는 신호음에 귀 기울였었나요?

게임에, 음악에, 인터넷에, 신문에, 책에 흠뻑 빠져있었으면서.


수습합니다.

시간이 제법 경과된 탈수된 빨래를 빨랫줄에 척척 걸쳐 넙니다. 좀 구겨진것 같다. 탁탁 털어서 넙니다. 이래야 하는거지, 흐믓.

이거 우리아들 스웨터 참 두툼해서 따뜻하겠네, 그런데 좀 딱딱하다, 

으악! 내 스웨터? 아들게 아니었네. 완전 다져졌네, 왜 이렇게 줄었을까, 큰일났구나.


아니, 내가 언제 핑크빛 셔츠를 입었었나? 다시 경악, 비명, 이거 우리 딸 빨간 원피스에서 물이 옮았잖아.

내일부턴 핑크색 얼룩무늬 셔츠를 입은 남자인 나의 모습, 으으으으

검정색 양말엔 하얀 세수수건의 흰 보풀이 뽀사시 덮였고. 이거 어떻게 다 떼어내지, 테이프 테이프 어디 갔어?


빨래 그렇게 쉽지 않답니다!

분류합니다. 색깔별, 섬유 종류별, 한번 쓴 수건과 여러 번 입은 청바지랑 당연히 따로따로.

어떤 건 함께, 어떤 건 절대 함께하면 안돼, 머리 써서 분류 끝내고.

세탁기의 세제통 크기는 다 채우라고 있는 것이 아니지요. 세제 포장용기에 써있는 사용 용량을 참고해서 넣어야 합니다.

여자들, 빨래 세탁기에 맡겼다고 무작정 딴 짓하지 않는답니다. 다른 일을 해도 끝날 즈음 감지하고 끝나는 시간 귀신같이 알아 맞추는 능력이 탁월한 여자들.

방금 탈수 끝난 빨래 탁탁 털어서 찌그러진 곳 잡아당겨가며 반듯하게 건조줄에 널어놓습니다.

다림질의 반은 이런 작업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오랜 경험으로 터득한 여자니까요.


신의 경지에 오른 여자도 가끔은 실수. 탈수된 지 적당시간을 지난 빨래는어떡하나...

마지막 헹굼코스 한번 더 돌리고 탈수해서 널면 OK.


아! 남자들이 기계 다루는 것에 여자보다 능합니까?

세탁기 메뉴얼도 제대로 모르면서?

세탁기 관찰에 들어갑니다. 각종 코스가 다 써있네요. 울, 면직, 이불, 찌든 빨래, 삶는 빨래...

물 수위조절도 해야되는군요.

기계를 쓰려면 그 기계 좀 제대로 알고 씁시다, 남자 여러분!

참, 또 한가지 더.

당신의 털 스웨터, 잘한답시고 소중하게 고이고이 세탁소 옷걸이에 얌전히 걸어서 널어 놓았군요.

입은 후 거울을 보니 당신 양 어깨에 뿔이 돋혔네요. 슬림한 롱 스웨터가되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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