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rgen Jul 20. 2020

친구와의 대화

가끔 만나서 함께 미술 전시 관람도 하고, 별미도 먹고, 차도 마시는 친구가 있다. 알게 된 지 35년쯤 된 친구인데 일년에 한 두 번, 어떤 때는 해를 거를 때도 있는 그런 친구다. 그렇게 만남이 뜸한데도 그 연이 끊어지지 않는 귀한 친구다. 대개는 볼만한 미술 전시회 소식이 있으면 서로 연락해서 함께 관람하고 그 뒷 얘기로 수다를 떠는 친구다.

요즘엔 코비드19 때문에 미술관도 문을 닫았고, 내가 서울에 가는 것을 삼가고 있어서 올해가 다 가기 전에 한 번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립다. 우리가 함께 관람했던 전시회도 상기해보고, 커피향이 짙었던 예쁜 카페도 생각해본다. 언젠가 나누었던 우리들의 대화도 기억난다.


친구는 소설 “가시고기”를 읽고 내게 말했다.(책 내용은 생략)
자기 아버지는 자기가 어려서 일찍 돌아가셨는데, 그 동안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다가 이 책을 읽은 후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됐다고.
우리나라에 상품들이 변변치 못했던 우리들의 어린 시절에 외국 출장이 잦았던 자기 아버지는 머리 핀에서부터 양말까지 출장길에 한번도 거르지 않고 자기 것을 사다주셨다고. 그런데 자기는 아버지께 아무것도 해드린 게 없다고.
그저 받기만하던 어린 아이일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자기가 아버지께 해드린 것은 하나도 없다고. 그 친구는 자기가 아버지께 아무것도 해드린 것이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자꾸 난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흘릴 눈물이 그 친구보다 훨씬 더 많거나, 아니면 흘릴 눈물이 전혀 없다. 유복자로 태어난 나는 아버지로부터 아무 물건도 받아보지 못했고, 내가 아버지께 아무 물건도 드려보지 못했으니까. 직접 주고받은 물건에 대해선 정말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그러나 아버지는 내게 생명을 주셨고, 내 아버지는 내가 잉태되었다는 소식 한가지 만으로도 내게서 큰 기쁨을 받으셨을 것이다. 나를 꼭 지정해서 준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는 당신의 손때묻은 책들을 유품으로 남기셨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바라셨을 어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인간답게 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아버지께 보여드리고 있다. 아버지가 보고 게실거라는 것이 나 혼자만의 망상일지라도.

나는 그 친구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했다.
“ 자기는 왜 아버지께 드린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우리 아이들이 태어나서 정말 아무것도 못하고 오줌 똥만 싸던 그 시절들에도 그 애들은 우리에게 아주 큰 기쁨을주었는데…
그렇게 생각해봐. 자기가 아버지에게서 귀한 물건들을 받기만 하던 그 시절에도 자기는 아버지께 충분히 기쁨을 많이 드렸을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해. 예쁜 머리핀을 받고 기뻐서 팔짝팔짝 뛰는 자기 모습을 본 그 한 순간의 행복이 아버지에게는 무엇보다도 귀한 순간이었을거야. 지금 자기가 자기 자식에게서 느끼는 것처럼 말이야.”
그런 말로 친구를 위로하는 내 마음에도 새로운 다짐이 생겼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서 받을 것을 이미 충분히 많이 받았으니 더 이상은 받기를 기대하지 말자는 다짐을 했다.
우리 아이들이 태어나던 순간, 아니, 그 이전, 잉태된 순간부터도 그 애들은 나에게 아주 큰 기쁨을 주었다. 평생 동안 더 이상 아무것도 받지 않아도 될 만큼의 큰 기쁨을.
친구도 위로했고, 나 자신도 새롭게 솟아오르는 기쁨에 충만했다.
어쩌면 장성하여 독립된 일가를 이룬 자식들에 대한 기대의 체념인지도 모르지만… …

‘관계’의 굴레에 함께 들어있는 사람들끼리, 어느 한 순간이나마 느낀 기쁨이 있다면, 그것으로 평생을 버텨나갈 힘을 만드는 것이 바로 지혜이다. 이런 지혜는 어린 아이로부터 아주 늙은 어른들까지 다 갖추어야 할 지혜인 것이다. 나도 지혜로운 노인이 되어야겠다.


다음 주중엔 친구를 만나러 가볼까. 마스크 꼭 하고, 손 소독제 챙겨서 조심조심 길을 떠나볼까.....




작가의 이전글 향수, 잊을만하면 도지는 고질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