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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Jul 22. 2020

아들의 결혼


아들이 결혼을 했다.
한편의 동화같이 아름다운 결혼식이었다는 말을 들었다. 마치 동화속 나라에 들어갔다 나온것 같다고도 했다. 참 평화롭고 행복한 분위기였다고 모두들 흐뭇해했다.
잘 갖춰진 전문 웨딩 홀 보다는 불편한 점도 많았을 텐데 하객들은 장소의 소박함과 시간의 여유에서 느껴지는 편안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좋았던 모양이다.
주례자(목사님)에 대한 칭송도 많았다. 신랑신부를 정말 사랑하는 마음, 축복해주는 마음이 하객들에게 느껴졌다고한다.

30 여명의 가족들이 우리 집에 모여 모든 시름을 다 내려놓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기분좋은 웃음 소리가 그치지 않는 떠들석한 시간을 보내고 엘레베이터를 몇 번에 나눠 타고 내려간 우리 가족들이 현관에 나오는 모습은 마치 무슨 세미나가 끝나고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사람처럼 많았다. 아파트의 넓은 로비가 꽉찼다.
툭하면 몰려들던 가족들이 언제나 한결같이 기쁘고 반가운 손님은 아니었는데,허리가 끊어지게아파서, 생활비를 한꺼번에 확 축내서 때로는 밉고 짜증이 나기도 했던 가족모임이었을 때도 있었는데, 우리 아들의 결혼을 그렇게 진심으로 기뻐하고 축하하는 가족들이 참으로 고마웠다.
진정한 사랑이 저절로 느껴지는,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가족애를 확인하게 되었다.

한밤중에 느닷없이 남편의 후배가 들이닥쳤다. 남편의 대학시절 서클 '민족이념 연구회' 후배였다.
결혼식이 참 아름답게 잘 치러졌다는 이야기 끝에 그가 꼭 하고 싶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가 결혼식 중에 두 번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
“ㅇㅇ이 이놈! 그렇게 훌륭하게 교육받고 잘 커서 뭐 인생의 목표가 제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그는 버럭 소리를 지르고 방안에서 주무시던 어머님이 깨어서 쫓아 나오시기도 했다.
남편은 편안하게 웃으며 대응했다. “그래 난 좋던데 왜 그러나. 아내를 행복하게 한다는 소박한 꿈이 얼마나 예쁘고 좋은가.”
그는 거듭 열을 냈다. “형님이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얼마나 훌륭하게 교육을 시켰는데 그래 사내자식이 제 계집 하나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게 인생의 목표라니, 형님, 나는 정말 눈물이 나왔어요. 눈물을 흘렸다고요. 그리고 다시 다짐했습니다. 내 아들은 절대로 그렇게 놔두지 않는다고”.
그는 돌아갔고 우리는 다시 그 말에 대한 언급 없이 밤을 보냈다.

그랬다.
우리의 결혼식 때 그들이 해준 결혼 기념패에는 '자유, 정의, 진리'가 새겨져 있었다.
결혼 전, 물불 가릴 줄 모르고 아무 때나 몸을 던질 기세이던 그이를 붙잡아 두기 위해내가 늘 그를 꼬드긴 말은 '사람은 잘 죽기 위해서 산다. 죽는것은 아주 쉬운 일이지만 잘 죽는 일은 어렵다' 이런 말이었다.
나는 그렇게 속셈 다른 비겁한 말로 날뛰는 그를 붙잡아 두었고, 감옥에 갈까봐 군대로 쫓아보냈다.
우린 그런 시대의 강을 힘겹게 건너왔다. 격랑의 세월이었다. 용감하기도 했고 비겁하기도 했던 젊은 날들!
남자친구를 평범하고 안정된 삶의 자리에 붙잡아 두려고  갖은 비겁한 말을 다 동원하였던 나였다.
우리 결혼기념패의 '자유, 정의, 진리'에서 우리가 자식들에게 내린 가훈은 '사랑, 정의, 진리'로 바뀌었다.
시대는 바뀌었고, 우리 아들들은 '민족'이니 '이념'이니 이런말에 관심 없이 살고 있다.
그것이 자신의 여자보다 더 중요한지 아닌지 갈등할 필요도 없이 살고 있다.
한밤중의 불청객인 그의 눈물. 그의 머리에도 흰 서리가 앉아있는 건 우리와 마찬가지인데 그는 아직도 푸르다. 그의 그 푸르른 젊음이 부럽다.

어쨌든 나는 아들이 아내의 행복을 위해 살기를 바란다.
우리 아들이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갑자기 뛰어들 사람인 것은 믿지만, 얼어 죽을 것 같은 노숙자에게 자신의 새 코트를 벗어줄 사람인 것은 믿지만, 평소엔 그냥 가정의 작은 행복을 지키는 평범한 가장이기를 바란다. 이렇게 나는 남편에게도 아들에게도 그저 비겁한 여자가 되고 만다. 이것 밖에 안되는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제 갓 시집온 며느리에게 생활지침은 몇 마디 내려주고 싶다.


네가 가진 것을 남에게 나누어야 한다는 말보다는 한결 쉬운 지침이다.
누가 너에게 무엇을 줄 때면 항상 말하거라.
저는 안 받아도 괜찮아요.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주세요. 이렇게 말하거라. 이 말 한마디가 남편과 너를 빛나게 할 것이다. 여자가 이 말 한마디를 하지 못해서 청렴한 남편에게 누가 되는 경우가 참 많단다.
내 경험에 의하면, 가진 것을 내놓는 것보다는 받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쉽단다. 일단 내 것이 되면 내놓기가 쉽지 않거든.
네 남편도 조금씩 나이가 들면서 회사에서 윗사람이 될 텐데, 회사관계로 들어오는 선물은 우선 아랫사람들에게 먼저 나눈 다음에 남으면 네 몫으로 여겨야 한다. 네가 무심코 받는 작은 선물 하나가 남편의 사회생활에 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거라.
사는 것 별거 아니란다. 이렇게 하면 살기가 좀 수월하고 쉽다.
내가 남보다 좀 더 불편한 것 감수하고, 약간 손해나는 것 감수하고, 좀 더 노동하는 것 감수하면 인생은 살만한 것이다.

아들은 지금 신혼 여행중이다.
나는 어른이 될 준비가 되었는가? 어른. 어른이되어야 할 텐데...........
식탁에서 아랫사람이 앉은 후에 수저를 드는 어른이 되어야지. 입으로 다 하지 않고 몸으로 다하는 어른이 되어야지. 배려할 줄 아는 어른, 사랑으로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어른이 되어야지.
가장 어려운 점은 아들 며느리가 잘못했을 때 제대로 혼낼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것일 텐데, 품위없이 화내지 말고, 체신 없이 신경질 내지 않고, 남에게 흉보지 않고, 단정한 자세로 묵직하게 훈계할 수 있는 어른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나도 이제부터 바르게 살아야겠다. 이것이 이제 시어머니가 되는 나의 몫이다.

내 아들, 며느리.
세상의 온갖 축복의 말들을 다 모아 너희들에게 내려준다. 지금처럼 사랑하고 언제나 행복하여라.




우리 부부는 나이 70을 넘기며 인생의 전환점에 서있다. 남편은 직장에서 반은퇴(현재 비상근 고문)를 했고, 나는 조금씩 움직이던 사회활동이 코비드19 때문에 다 끊겼다.

그중에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글쓰기를 통하여 인생을 정리하는 귀한 기회를 얻었다. 여러 작가들의 글들을 자유롭게 읽는 횡재까지!


아들은 결혼 12년차에 딸 둘이 있다.

윗 글 <아들의 결혼>은 내인생을 USB 하나(저장용량?)에 남기려고 데스크 탑 문서 정리하던 중에 발견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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