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rgen Jul 24. 2020

할머니의 방학 전쟁 준비

방학이 다가온다.

우리 가족들 중에는 방학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고, 방학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다. 지역마다 학교마다 다르다는데 우리 손주들의 유치원은 7 마지막주와8  주에 방학이란다. 초등학교는 7 마지막 주말까지 온라인 수업을  후에 방학이 시작이란다.


어쨌든 7 마지막 주말이되면 우리의 3남매 부부와 손주들이 우리집으로  모인다. 올해엔 외국에서  둘과 함께 귀국한 친정조카까지 합류한다.


빙학 전쟁의 시작이다.

해마다 방학이면 외손녀 둘은 우리 집에서 방학을 보내왔다.  지역에 사는  아이들이 오면 우리 친손녀들도 수시로 우리 집으로 와서 함께 논다. 물론  안에서만 하루 해를  보내는  아니다. 과학관에도 가고, 박물관에도 가고, 물놀이도 하고손주들은 내외사촌들끼리 서로 만나서  날을 항상 기다리고 있다. 우리 집이 넓고넓은 궁궐이 아니니 우리는 거실에 매트를 깔고 마치 수련회  합숙하듯이 지낸다.


 아들은 자동차로 15분거리에, 지금은 이사갔지만 작은 아들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어서 아들 내외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잔다. 애들은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해서 모두  우리집에서 거실 합숙을 한다.

조카는 자기 애들이 우리 애들과 함께 놀면서 한국어를 익히기를 기대하고, 우리 며느리는 딸들이  애들과 놀면서 영어를 익히기를 기대한다. 어른들의기대치는 어쨌든 간에 아이들은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서로  어울린다. 한국말을 알아듣고 영어로 대꾸하고, 영어로 알아듣는데 대꾸는 한국말로 하는 식으로 소통에 문제는 없다.


여자 애들은 야무져서 큰 아이가 작은 아이를 보살피며 어른들의 힘을 덜어주는데, 하나뿐인 외손자는 할아버지(나의 남편)가 전담한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유치원생까지 여자아이들이 일곱(우리 손녀5, 조카의 딸2)에 남자는 외손자 한 명이다.


올해엔 변화가 생겼다. 작은아들이 타지로 이사를 가서 이제는 일주일 내내 우리 집에서 자야할 형편이다. 딸네는 시댁이 우리집에서 자동차로 20 거리에 있으니 시댁에 가서 자고 온다고 한다. 외국에서 온 친정조카는 잠은 우리집에서  자지만 출근하듯이 와서 함께  것이다.

예상치 못한 변수까지 끼어들었는데 바로 코로나19. 그동안은 이렇게 모이면 하루 이틀에  끼씩은 외식을 해왔는데 감염이 무서워서 아이들 데리고 식당엘  수가 없게 되었다. 키즈카페에도  수가 없다. 외출중에 점심 사먹는 것도 조심스러워 어디를 가려면 점심 도시락까지 싸서 들고 다닐 판이다. 전쟁에 돌입한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제 밤에 마트에 각종 소스와 마른 식료품 온라인 주문을 시켰고, 어제는  물건 배달을 받은 , 창고형 마트에 가서 냉동 식재료를 사왔가. 그것들을 소분하여 냉동실 칸칸이 분류해서 넣는 일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전쟁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다.

하루는 날잡아서 요리준비를 해야하는데 정말이지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일이다. 만든 요리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준비일 뿐이니  노동은 표가 나지 않는다.

참깨를 씻어 볶아서 통깨와 깨소금을 만들고, 검은 깨는 유부초밥에 사용할 통깨와 참깨소스에 섞을 것을 조금 갈아둔다. 마늘은 다져서 깎뚜기 모양으로 얼려놓고, 편마늘도 준비한다. 파와 고추도 다져 놓는다. 이런 일에 하루가 걸리는데 일한 표는 하나도  난다.

이렇게 양념 준비가 끝나면 건어물을 이용한 마른 반찬을  가지 만들어둔다. 멸치와 견과류 볶음, 연근 우엉 졸임, 쇠고기 메추리알 장졸임을 미리 만들고, 이어서 백김치를 담고, 더덕구이와 북어졸임까지 미리 해둔다. 순차적으로 때에 맞춰 두부졸임과꽈리고추 졸임을 하면  끼니때마다  가지 반찬은 확보가 되는 셈이다.


손주들이 제각각 식성이 다르지만 반찬은 일률적으로 똑같이 급식한다. 이게 좋은 방법인지 안좋은 방법인지 판단은  서지만, 며느리 둘이서 다섯칸짜리 도시락에 분량은 달라도 종류는 똑같이 나누어 담는다. 빨리 먹는 아이 늦게 먹는 아이 모두다 그릇이 비어야 개수대에 갖다 놓을  있으니  먹기는 한다.

 외손녀는 반찬  가지를 금방내  먹어서 좋아하는  알고  주려고하니까 기겁을 하며 손사래를 친다. 자기는  반찬이 싫어서 얼른 먹어 없애고 이제 맛있는  먹으려고 하는 참이라고.  다른 손녀는  맘에 드는  날름 먹어치우곤 나머지  맘에도 없는 것을 꾸역꾸역 먹느라고 애쓴다. 이렇게  먹는데서부터 성격이 다름이 드러난다. 괜한 친절심이 발동하여 바나나 껍질을 벗겨서 주면  난리가 난다.  그쪽에서부터 벗겼냐는 것이다. 나는 바나나의  아래가 어디인지 모르겠다만 아이들은 벗기는 순서가 습관으로  정해져있다.  사소한 일에서부터 어린 아이들의 개성이 다르게 드러남을 본다.

어른들은 4 나눔접시에 미리준비한 밑반찬  가지와 김치류  가지 그리고  개의 반찬을  담고, 요리는  가지만 한다. 그전에는 식기 세척기를 사용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 친환경 생분해 일회용기를 사용한다.


이 점은 나의 내적 갈등이 있고, 많이고민되는 일이지만 며느리들을 위해서 눈한번 질끈 감고 일회용기를 사용하기로 했다.

안다. 친환경 생분해 용기를 만드는데도  펄프는 소비되는데  펄프를 만들기 위해서 나무와 물이 많이 소모되는 것을 안다. 친환경이라하여 마음 놓고 소비해도 좋다는 뜻은 아님을 안다. 그냥 비겁한 변명과 자위일 뿐인 것을 알면서도 일년에 몇 번쯤은 눈감자고 슬쩍 넘겨버린다.  죄값(?) 내가 틈틈이 치르며 다른 일에 물질적 육체적 보상을 하고 있다. 그래도, 아무리 친환경이라도, 일회용기를 사용하는 것은 욕먹어 마땅하다.


이에 대한 변명을 잠시 늘어놓자면, 나는며느리와 딸이 우리 집에 와서 편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여럿이 모이면 필수적인 일들을 줄이고 즐겁게 지내다 가기를 바란다. 우리 집에  날이 다가오면 괜히 짜증이 나고 무슨 핑계거리가 없을까를 궁리하고 피하는 집이 아니라, 우리 집에 오면 즐겁고 편안해서 빨리 오고싶은 집이기를 바란다. 집이란 편안한 휴식처가 되어야 하니까.

 며느리 말에 의하면, 자기친구들이 이런단다. “너는  집에서 잠이 오냐?”.

우리  며느리는 저녁먹고 놀다가 귀찮으니까 그냥 우리집에서 자고 가려고한다. 밤이 되면 “어머니,자고 가면 안돼요?”하고 자려고 한다. 그전엔 당연히 자고 갔지만, 이제 식구가 늘어 잠자리가 부족하니 아이들은 우리 집에 두고 아들내외는 밤늦게 자기  집으로 가서 자고온다.


방학전에 자식들에게 메뉴를 주문받고 결정되면 미리미리 준비하는데 나는우리 집에 머무르는 동안의 메뉴를 냉장고에 붙여둔다. 상차림하는 며느리가 저장된 음식중에서 무엇을 꺼내야할지, 다음 끼니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할  알게되니 편하다.

 가족이라도 좋아하는 음식과 그저 그런 , 싫어하는 것이  다르다. 메뉴를 냉장고에 붙여두면 언제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나올지 미리 알기 때문에 이번 음식이  입맛엔 별로라도 그럭저럭 먹어준다.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주로 내가 하지만 상차림과 설거지는 딸과 며느리가한다.


며칠째 비가 오락가락, 약한비부터 폭우까지 다양한 비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 가족들이 모일 때는 비가 안오면 좋겠다.

비가 오면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의 걸음걸이부터 장난감 딸그락 거리는 소리까지 일일이 신경쓰고 잔소리를 해야하는데 나가 놀면 편하다. , 나의 방학 전쟁 준비중엔 아랫집에 바칠 뇌물도 정성스레 준비해야한다. 누가 뛰어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 수가 많으면  움직임도 크고 많아지니 생활소음조차도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아랫집에 먼저 모임을 이야기 해둔다. 평소에는 우리 집에 사람이 사는지 안사는지 모를정도로 소리가 없으니 아랫집도 많이 봐주는듯하다.


 이렇게 글이 길어졌을까. 늙어서 잔소리가 많아서 그런  같다. 입은 다물고 지갑은 열어야 한다는데.

어쨌든 나는 지금의  상황에 감사하고  감사하고 고맙다. 오래 살아온 경험으로 말하자면 돈을 쓰는 일에도 위에서부터 아래로, 정을 나누는 언행도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면 집안이 편하고 불평이 없는  같다.

자식들이 비용 부담없이 부모 집에 오고, 며느리들이 시집에서 부엌대기 노릇 안하고, 손주들이 모여서 신나게 놀고, 이러면 가족 공동체는 웃음소리 가득한 모임을 갖게 된다.


며칠  습도 높은 기후에 두통은  있지만 나는 방학을 기다리고,  아이들과 며칠을 함께 지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행복감이 충만하다.


작가의 이전글 호모 루덴스의 봄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