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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rgen Jul 31. 2020

나를 위해 차리는 밥상

약간 넓고 얕은 냄비에 어제 만든 생선 졸임 한 토막이 들어있었다.

라면 하나 끓일 정도의 작은 냄비엔 두부가 두세 조각, 감자 몇 조각 남은 된장 찌개가 남아있었다.

나는 망설임없이 그것들을 식탁에 올려 놓고, 김치가 담긴 유리 반찬통을 그 옆에 두고 접시에 밥을 두 주걱 푼후 먹기 시작했다.

반쯤 먹었을 때 큰 아들이 들어왔다.


"진지 잡수세요?"하고는 내 맞은 편 의자에 앉는다.

나는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왠지 모를 수치심에 헛숟가락질만 하게 되었다.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나 자신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비밀스러운 짓을 하다가 아들에게 들킨 기분이었다.


그깟 설거지하는 것이 뭐가 귀찮다고 냄비째 갖다놓고 먹는단 말인가.

기껏해야 접시 두개, 국그릇 하나 더 닦으면 될 것을.

찬장에는 백설같이 흰 본차이나 접시들도 들어있는데...

혼자 먹고있을 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아들이 나의 초라하고 게으른 밥상에 마주 앉으니 갑자기 그런 내 모습에 수치를 느낀 것이다.

아들에게 우아하고 품위있는 모습을 보이지 못한 때문일까...

식구들에게 상을 차려줄 때는 유리 반찬통에 담긴 것들도 일일이 다 접시에 옮겨놓는데, 나박김치나 동치미같은 것은 일일이 개인 용으로 따로 담아주는데, 나 혼자 먹을 땐 왜 냄비째 식탁에 올려놓고 먹는 것일까?


이젠 나도 나 스스로에게 예의바른 밥상을 차려야겠다. 아무리 혼자 먹는 점심이라도 예쁜 접시에, 따뜻한 국물에, 찻잔의 밑받침 접시도 놓고.


이렇게 외적인 것에서 나를 찾으려고 하는 것은 속이 빈 사람의 생각일는지...?

물론, 내적인 면에서도 은은한 진주빛으로 빛나는 나를 찾아야겠지!


나를 대접하라, 나를 귀히 여겨라, 나에게 충성하라, 나에게 선물을 줘라... ... 근래에 “나에게” 어찌하라는 말들이 쏟아져 나온 것은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자신에게 소홀했는지의 반증일 것이다.

가장이 가정을 위해, 주부가 가족을 위해, 부모가 자식을 위해, 직장인이 직장을 위해, 을이 갑을 위해.

모든 을들이 갑들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시키며 살아오던 우리의 삶에 대한 변화의 방향 제시이다.


외적인 성취를 위해 내면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그래서 빈 껍질로 겨우 버티고 있는 우리 삶에 대한 경고와 위로의 말이다.

이제는 “나”를 위해서도 살아보라는!


그깟 밥 한끼 대충 먹은 것이 나를 크게 홀대 한 것은 아니다. 반찬 그릇 제대로 챙기지 않은 것이 “나 자신에게 충성하라.”는 사회적 함의를 끌어낼 큰 사건도 아니다.

다만, <나를 대하는 나>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볼 계기는 되었다.


나는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이 되고싶다.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나에게도.

나는 반짝반짝 밫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외면의 빛이 가려서 그 내부는 그림자로 어두운 내가 아니라, 내면의 빛이 밖으로 뿜어나와 외면까지 환히 빛나는 그런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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