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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니에드만 May 04. 2018

<폴란드2> 바르샤바 '미투'(?)

이제 막 퇴사한 前 신문기자의 폴란드 여행기 2.


폴란드 바르샤바 현대미술관 전경

폴란드 첫 일정으로 선택한 곳은 국립현대미술관(국현)이었다. 오픈 시간(낮 12시)에 맞춰 찾아갔더니 폴란드 여대생으로 추정되는 20명 남짓한 그룹이 먼저 도착해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 자리한 국현 서울관(2013년 11월 신설)과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이곳은, 서울관보단 규모는 작았지만 건축미만큼은 한 수 앞선 고풍스러움을 뽐내고 있었다.


그간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은 많았지만, 그 테두리 안에 폴란드까지 포함시키진 못했다. 폴란드 현대 미술은 여전히 세계 미술의 변방이라는 인식 때문이다(사실 폴란드 근현대사조차도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처음 접했다;;). 흔한 폴란드 여행 책자에도 소개돼 있지 않아 위치만 확인하고 무작정 찾아간 이곳은 그럼에도 식어버린 가슴을 다시 뜨겁게 하는 순간을 여러 차례 선사하는, 뜻밖의 감동을 예비하고 있었다.


1층 부속 전시실은 ‘브렉시트’와 이민 문제 등 유럽 전역에 불고 있는 분리 정책에 대한 폴란드 예술가들의 날선 비판을 주제로 놓고 이와 관련한 폴란드 작가들의 작품 20여점을 소개하고 있었다. 폴란드 미술과의 첫 만남이었는데, 다소 실망스러웠다. 


작품의 수준을 논하기 전에, 전시 기획단계에서 다소 성긴 프로젝트가 돼버린 게 아닌가 싶었다. 전하려는 메시지와 이를 전달하는 작품들과의 주제적 일관성이 부족했고, 그럴 경우 이를 만회해야할 기획자의 연출력도 아쉬웠다. 각개 작품으로만 보면 훌륭했지만 이를 모아놓으니 설득력이 부족한 전시다. ‘구성의 오류’를 노출하고 있었다.


4전시실 ‘Indepent Woman’의 한 작품

반면 메인 전시는 전날 장시간 비행이 가져다준 피로는 물론거니와 부속 전시에서 느낀 얼마간의 실망감까지 일거에 해소해줄 정도로 훌륭했다. 역사적 시의성에 대한 고려, 당대를 바라보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숙고, 주제별로 선별된 아카이빙의 신중한 선택과 배치까지, 흠 잡을 데가 없었다. 전시관 이름 자체도 폴란드어로 ‘zachęta’. 용기를 북돋움, 혹은 격려. 폴란드 독립 100주년을 맞아, 1918년 폴란드를 돌아보자는 취지로 기획된 것으로 보였다.


아마도 이같은 선택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18세기에 러시아와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3국에 분할 점령된 폴란드는 2세기 넘는 기간 세계 지도에서 사라지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 연합국에 의해 폴란드 공화국으로 독립됐다. 해방의 기쁨은 길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1939년 폴란드는 독일과 구소련 양쪽의 전격적이고도 대대적인 침략을 받으며 전 국민의 1/6이 사망했다. 수도 바르샤바를 포함한 주요 도시 역시 폭격으로 폐허가 됐다.


그러니까 1918년부터 1939년에 이르기까지, 단 20년여 주어진 해방은 폴란드만의 이른바 ‘벨 에포크( belle époque)’를 준비하기 위한 해방구로 기능했던 것이다. 이번 전시는 해방 100주년을 맞아 당시의 역동적인 사회상을 돌아보며 폴란드 제2의 도약을 위해 어떤 가치를 다시 정립해야하는가를 묻고 있었다. 어떤 가치인가. 질문은 늘 당대의 결핍을 내포하면서 발생한다. 이번 전시의 초점은 여성과 아이들, 노동계급 등 마이너리티 문화였다.

'바르샤바 대학' 학생들이 작품 해설을 듣는 모습


4전시실에서 웅성웅성 토론 소리가 들렸다. 전시장 입구에서 봤던 여대생들이 안내자(도슨트인지 담당 큐레이터인지 해당 학과 교수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의 설명을 들으며 나누는 대화였다. 


4전시실의 주제는 ‘Indepent Woman’. 


신중한 눈빛으로 당대를 기록한 영상과 사진, 책자 등을 둘러보던 그들은 바르샤바 예술대학 학생들이었다. 남성도 2~3명 정도 포함돼있었지만 예술대학이라서 그런지 여성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보통 한국에서 도슨트 설명을 들으며 전시를 관람하는 도중에 관객의 질문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질문이 나온다해도 그것이 토론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기에 내게는 신선한 광경이었다.



도슨트의 설명을 종합하면, 폴란드의 독립은 폴란드 여성의 정치적 해방이 의미있는 진전을 이룩했을 때에야 비로소 찾아왔고(실제로 폴란드에서 여성 투표권은 입법 개정을 통해, 폴란드의 독립이 선포된 1918년에야 인정됐다), 그것은 여성의 광범위한 사회 참여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논지의 골자였다. 그럼에도 여성 차별은 당대에도 여전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여성들이 돌파구를 찾은 곳이 ‘시각 문화’ 분야였다고 한다. 영화와 사진, 연극 등을 통해 사회적으로 금기시돼온 메시지를 발표했고, 그렇게 발언권을 획득하면서 정치적 지분을 넓혀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치에 복속된 문화가 아니라, 새로운 정치를 창안하는 문화를 여성들이 선도했고 그것이 유효했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양차 대전 사이, 그러니까 20년 동안 성교육과 낙태권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공식적으로 오갔다고 한다. 안내자는 이같은 논쟁이 전후 폴란드의 정치 사회 문화 전 분야에 활기를 불어넣었고, 그 도도한 흐름은 2차대전의 상흔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고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아카이빙이 말해주듯, 당시의 활기는 지금도 여전히 폴란드 여성들의 정치적 연대에 근원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도 힘주어 말했다.


이어, 전시는 당시 폴란드 미래의 절대적 희망인 아이들에 대한 교육 문제와 소외된 노동 계급들을 조망한 뒤 마지막으로 당대에 새로운 아젠다를 제시한 필름과 사진 연극 등을 돌아보며 마무리됐다.


1층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메인 전시 관련 카탈로그와 팸플릿을 구입하면서 또다른 안내자에게 ‘zachęta’ 전시에 감동을 받았다는 말을 전한 뒤 혹시 ‘미투(#Me too)’운동에 대해서 알고 있냐고 물었다. “물론!”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폴란드에선 적극적인 운동이 나타나고 있진 않지만 미디어를 통해 접하고 있고 자신도 미투 무브먼트의 지지자라고 했다. 이번 전시가 그 운동에 영향을 받고 기획된 건 아니지만, 그 흐름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면 좋겠다는 말도 들려줬다.


폴란드로 넘어오기 전부터 한국에선 가만히 보고만 있기엔 견디기 힘든 유명 인사들의 성폭력 성추행 이력이 보도되고 있었는데 갈수록 상황은 더 악화하고 있는 것 같다. 안희정까지...무슨 말이 필요하나. 나 역시 여성의 용기있는 외침을 응원한다. 


폴란드 국립현대미술관이 3월 메인 전시의 주제로 선정한 ‘zachęta’, 즉 용기를 북돋움, 혹은 ‘격려’가 전 사회적으로 용기있는 고백을 이어가는 여성들을 향해 퍼져나가길 기대한다. 결국,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는 바뀌는 게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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