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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7> 아우슈비츠, 카메라도 죄 같았다

이제 막 퇴사한 前 신문기자의 폴란드 여행기 7.

by 토니에드만

아우슈비츠 방문을 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 잡을 걸 그랬다.


오늘 방문한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의 기억이 이유없이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한다. 예상했던 것보다 현장에서 느낀 감정은 더 강력했고, 여진은 잦고 깊다. 공원 벤치에 앉아 하릴없이 발끝으로 땅을 짓이기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다가, 숙소로 돌아오곤 한다. 계획했던 크라쿠프 일정도 모두 취소했다. 무엇인가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29197298_582364932113639_7111789840093413376_n.jpg 폴란드 크라쿠프 인근 독일명 아우슈비츠에 마련된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

수용소 막사들이 줄지어있는 모습을 본 순간, 카메라를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아우슈비츠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고 애도할 준비도 못한 내가 카메라를 들고 이곳을 찍는다는 것이 죄스럽게 느껴졌다. 죄를 짓진 않았지만, 나 역시 책임의 긴 사슬에서 자유롭진 않다고 생각했다. 한 장의 사진도 찍지 못했다.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이 수용소에서만 12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총살, 가스, 질병, 구타, 굶주림, 실험.

들풀이 다시 돋은 이곳에서, 10만여명이 소각됐다.

생명이 주어고 동사가 소각이라니, 가당키나 한 문장인가.


책으로는 읽은 적 있다.


철학자 아도르노가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가 가능한가'라며 탄식했고,

아우슈비츠 생존자 파울 첼란은 그보다 더 급진적으로 ‘아우슈비츠 이후 대체 말이라는 게 가능한가!’라고 물었다. 가슴이 뭉클했지만 무너지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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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수용소 여성들의 머리카락를 잘라 만든 모직 2톤을 보고서 다 무너져버렸다. 대체 말이라는 게 가능한가. 잔해만 남은 소각장 앞에서 흐르던 유대인 학생들의 구슬픈 추모가가 여전히 귓가를 맴돈다.


무심코 써왔던 관용구 ‘출구가 없다’라는 표현이 두려워졌다. 소각장엔 실제로 출구가 설계되지 않았다. 들어서면 재가 되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 재가 지금도 아우슈비츠 인근 대지에 스며들어 산화하고 있다고 한다. 대기를 떠돌고 있다고 한다.


방문한 날, 날씨는 야속하게도 화창했다. 공기도 깨끗했다. 들이마쉰 숨 속에 재가 포함돼 있을 수 있다는 가이드의 설명에 아연해졌다. 부글부글 들끓다가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역사가 자연과 함께 인류에 보내는 이 짓궂은 농담에 웃음으로 화답하긴 힘들 것이다. 시간은 극심한 슬픔도 부식시킨다고 하지만, 적어도 유대인들에겐 해당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아우슈비츠 자료를 폴란드에 많이 들고 왔다. 이를 참고해서 여기서 본 것과 생각한 것을 엮어 긴 기행문을 쓰려고 했다. 그런데 쓸 수가 없다. 그럴 능력이 안 된다. 이렇게 보잘것없는 짧은 감상만 남겨놓는다.


*사진 :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박물관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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