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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레모스 Apr 13. 2022

재택근무는 나의 트랜스포머다

역마살에서 집콕으로

코로나 때문에/덕분에, 글로벌 IT 회사인 덕분에/때문에 재택근무가 가능한 나는 현재 1년 3개월째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시작은 역시나 꿀]

재택근무 라이프에도 기승전결이 있을진대, 처음에는 정말 너무 좋았다. 매니저와 모든 팀이 해외에 있고 나 혼자 한국에서 일하니 감시하는 사람도 통제하는 사람도 없었다. (물론 그래서 외롭고 일도 혼자 다 해야 하니 힘든건 당연한 조건이자 대가다.)

자발적으로 9시에 일을 시작해 오후 6시면 일을 마무리 했다. 혹 아이 때문에 일을 늦게 시작할 때면 양심이 가르쳐 주는대로 점심 시간을 줄이거나 퇴근을 늦게 하며 나의 일을 해나갔다.

처음에는 재택근무 할 공간이 없어서 작은 책상을 하나 사서 주로 가족이 잠을 자는 안방 구석에서 일을 시작했다. 내 공간 없이 산지 어언 10년인지라 그마저도 좋았다. 책상 앞에 랩탑과 화분 하나로 하루를 시작하면 나름 그게 그리도 행복하고 설레었다. 그러다가도 숨막히게 집에 있는게 답답해지는 날들이 있어 그럴 때면 집앞 카페로, 도서관으로 북카페로 나가 어떻게든 답답함을 해소하며 일을 했던 것 같다.


[다시 사무실로?]

그러다 급격히 회사에 자주 나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처음에는 사람도 만나고 밥도 같이 먹으며 이직 후 어느 허공에 발을 딛고 있는게 아니라 정말 새로운 회사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밥을 먹자는 사람이 하나둘 늘어났고 지나가면 붙잡고 말하는 사람이 생겨나며 아 그래 이게 직장생활이지 이런 마음과 함께 나름 ‘인싸’의 영역으로 들어갔다는 안도감도 있었다.


[정반합의 일상]

코로나가 극심해지고 여러 조건으로 회사에는 주 1-2회 나가며 재택을 병행하는 체제를 유지하게 되었는데 이때부터는 나도 모르는 극심한 균형 감각이 생기기 시작했다. 바로 어떻게든 주 3회의 재택근무를 유지하고자 하는 관성이다.

사실 나는 역마살이 꼈다, 라고 말할만큼 일에서나 일상 생활에서나 돌아다니는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10 넘게 외근하며 일하는 영업/강의/컨설팅을 해왔고 그만큼 많은 기업과 고객을 만나며 에너지를 주고 받았다. 주말에  때도 예외는 없었다. 끊임없이 주변의 사람들과 일정을 만들고 생일 파티, 커피타임, 여행 등을 기획해 만나고 연결하고 노는 것을 쉼없이 해왔다.

그랬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집 밖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일할 때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그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좋았다. 커피 한 잔, 밥 한끼를 할 때의 그 친밀감과 네트워크보다 혼자 일하며 내 일과 삶에 집중하는 재미와 효과를 알아버린 것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에너지, 웃어주는 힘, 나라는 사람과 시간과 역량을 기꺼이 내어주었건 그 당연한 시간이 사실은 내게 꽤나 버거운 짐이기도 했다는 걸 깨닫기도 했던 터였다.


물리적 공간의 힘도 컸을거다. 안방 구석에서 시작한 재택근무는 급기야 방 하나를 비워 ‘내 방’, ‘엄마방’이라고 불리는 공간을 집 안에 만들어 내어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줬다. 지금은 부엌의 식탁을 거실로 옮겨 가족 모두가 집을 비운 낮의 시간동안에는 거실마저도 내 사무실이 되어 버렸다. 이제는 카페도 찾지 않고, 사무실도 나가지 않는다. 랩탑이 있는 거실과 내 방, 거기가 내 공간이며 일할 장소다.


[재택은 10여년간 고여있던 나를 제대로 변화시켰다]

재택근무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집이 된 만큼 삶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엄마의 바쁜 일로 정서적 불안감이 있던 둘째는 누구보다 씩씩해졌다.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관계로 인해 지치고 허덕이던 내가 몸을 사리고 에너지를 아끼고, 사람에게 먼저 연락하는 빈도가 급격히 줄었다. 그러면서 나를 아끼고 책을 읽고 운동을 시작했다. 집에는 1도 관심이 없었는데 인테리어와 집 안의 쾌적함이 곧 내 생산성과 결부되다보니 청소며 집 정리도 빈번해졌다.

회사 사람들과 만나서 해야 더 잘 되는 일이 있음은 분명한데 그것은 이제 1-2일 출근길에 몰아 후다닥, 깊이있게, 넓게 해결하고 오는 것 같다. 그리고 출근시 아낀 에너지를 모아 2달에 1번쯤 가족여행을 가기 시작했다. 출퇴근 교통비, 밥/커피값을 한달만 모아도 여행비는 쉽게 모이더라는 진실


[물결을 따라가는 인생의 때]

무슨 재택근무 하나에 이렇게 거창한 듯이 글을 쓰느냐 할 수 있겠지만 재택은 한 직원의 업무 효율, 그 가정의 일상, 사회와 조직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걸 내가 몸소 체험했다. 지난 1-2년간 나는 코로나가 가져다준 재택의 물결을 정말 물 흐르듯 따라가고 있다. 거스르며 개척하기 바빴던 나에게는 새로운 현상이면서도 그런 변화의 내가 반갑다. 따라가는 그 모습이 내게는 또 하나의 거스름이기도 하기에


다행스럽게도 지금 회사는 재택근무 정책을 철회하지 않고 지속하겠다고 발표했다. 당분간 나라는 고급 인재를(?) 놓칠 염려는 없다는 뜻

앞으로의 내가 기대된다. 집콕의 일잘러로 거듭날지, 역마살의 방방곡곡으로 살아갈지, 이도 저도 아닌 디지털 노마드로 어딘가에 머물다 떠날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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