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이 존재를 만든다.
깨닫지 못했지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부르는지에 따라 내가 하는 일과 삶의 모양새, 그리고 다음 걸음이 달라져 왔다. 호칭이 나라는 사람을 만든 셈이다.
십몇 년 전, 가진 것 없이 외로웠던 한 취업준비생은 선생님이라 불리며 회사에 입사했고, 선생님이라 불리는 일을 하다 보니 어느 날 강사님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강사님은 세월이 흐르며 강사들의 팀장님이 되었고 팀장님은 다시 새로운 도전 끝에 크리스타 님으로 불리며 선생+강사+팀장 일을 모두 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의 다음은 무엇일까? 스스로도 궁금하며 기대된다.
당신은 누구라 불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 호칭이 곧 지금의 당신이다.
직업이 ‘선생님’이 아닌 나에게, 연배상 경력상 ‘선생님’이라고 조금도 불릴 이유가 없는 한낱 취업준비생에게 ‘선생님’이라고 나를 면접 때 불러주신 그 상무님은 어찌 보면 내 인생의 귀인이시다. 입사 후 부서 본부장님으로 자주 뵙기도 했지만, 면접 때의 기억은 그 모든 걸 덮을 만큼의 ‘충격효과’이기도 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한국은 위계질서가 있는 사회이며 이미 호칭과 언어에서 나이, 직급을 유추할 수 있을 만큼 나이 어린 취업준비생은 사회에서 큰 대접을 받기 어려운 절대적 약자이자 ‘을‘의 위치에 처해있다. 보통의 회사에서는 나를 OOO 씨, OO 씨 혹은 OOO님으로 호칭하며 지극히 평범하고 정중해 보이지만 위계질서가 느껴지는 호칭과 대화 속에 면접을 진행했었고 그런 만큼 다소 큰 압박과 긴장감 속에 면접을 진행하다 보니 무슨 질문을 했고 뭐라고 답변했는지가 사실 거의 생각나지 않는다. 이런 고정관념을 깨준 한 회사가 바로 나의 첫 회사다. 취업준비생으로 여러 다양한 회사의 면접을 다녀보았지만 ‘선생님’이라고 면접생을 불러주는 회사는 그곳이 유일했다.
“OOO 선생님에게 질문드리겠습니다. 우리 회사가 가지고 있는 솔루션에 대해서 한번 설명해 주시겠어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이런 비슷한 질문이었던 것 같다. 면접 당시에는 그저 답변하기에 급급해 그분이 나를 뭐라고 부르셨는지보다는 어떤 질문을 했고 나와 다른 경쟁자들이 뭐라고 답변했는지에만 몰두해 있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 돌이켜 보니, 취업준비생이던 그 시절, 첫 회사는 내가 합격한 곳 중 가장 좋은 회사이기도 했지만, 면접 중 나를 불러준 호칭이 그곳을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던 것도 같다. 사회초년생이 아직 되지도 않은, 명함 한 장 내밀 수 없는 검증되지 않은 나 같은 사람에게(그 당시 많은 서류 탈락과 면접 실패로 자신감이 떨어져 있던) 선생님이라고 입사도 하기 전 면접 때 불러줄 수 있는 회사라면 해볼 만하겠다, 가서 경험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입사하고서야 왜 면접자 한 명 한 명을 ‘선생님’이라고 불러주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회사는 직급과 무관하게 Non-Sales 직군에게는 ‘선생님’, Sales 직군에게는 ‘대표님(Sales representative)으로 호칭을 통일하여 부르고 있었다. 아쉽게도 상무님, 전무님은 ‘타이틀 떼기’의 예외였던지 그분들께는 꼬박꼬박 상무님, 전무님, 부사장님이라 불렀다. 회사의 모든 것이 다 좋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실제로 다녀본 이 회사는 외국계답게 수평적인 문화와 존중하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고 나에게는 좋은 시작을 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준 회사임이 분명했다.
그렇게 면접 때부터 ‘선생님’이라 불러준 회사에서 나는 실제 업무상 외부에 가서도 ‘컨설턴트’ 혹은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며 누군가에게 솔루션과 지식을 가르쳐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B2B 컨설턴트로서의 커리어 시작이었고 그때부터 나는 고객과 내부 직원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고자 제품과 새로운 기술, 지식을 열심히 공부하고 효과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애썼던 것 같다.
나의 첫 공식 ‘타이틀’이었던 컨설턴트로서의 선생님은 단순히 지식을 설명하고 잘 알려주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지 않았다. 외국계 IT B2B 회사의 Presales consultant는 제품에 대해 잘 설명해준 후, 그래서 그것이 고객사의 니즈와 이슈를 어떻게 해결해 줄 수 있는지를 연결하며 고객을 설득을 해야 했고 그 과정을 통해 결국 구매로 이어지게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래서 영업의 앞단에서 제품 전문가로서 세일즈를 해나간다는 ‘Presales Consultant’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설득력 있는 장표(컨설턴트들이 말하는 장표는 ppt 제안서를 보통 의미한다)를 만드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그렇게 만들어낸 장표를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말할 수 있을지를 정말 많이 고민했다. 선배들의 장표를 보며 어떻게 하면 더 예쁘고(비주얼적으로) 깔끔하면서도 논리적인 메세징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게 하루 일과였던 시절이다. 또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IT 업계의 새로운 용어와 기술, 그리고 업데이트되는 제품을 공부해나가야 했고 고객사의 실무 비즈니스와 용어를 익히기 위해 온라인 강의를 듣고 책을 보며 좋은 선생님이 되려면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한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프리젠테이션을 잘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던 것 같다. 스스로도 알았고 선배와 동료들도 알고 인정해줬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덤덤하게(떨지 않고) 간결하게(길게 말하지 않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더 말하지 않겠다) 말할 수 있다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니라 중요한 역량과 스킬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자신감도 생겼고 이걸 더 키우고 싶은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선생님에서 ‘강사님’으로 직업을 바꾸게 되었다. 비지니스의 속성이 B2B라는 공통점 외에는 꽤 많은 것들이 바뀐 이직이었다. 기존에는 컨설팅만 했다면 이제는 직접 영업도 뛰면서 컨설팅, 그리고 강의도 해야 했다. 업계 역시 IT에서 Training으로 큰 전환을 시도해 새로운 배움의 나날이 이어졌다. 직접 영업을 뛰니 말은 청산유수가 되었고 강의를 하다 보니 논리와 감성의 균형을 갖춘 컨텐츠와 말의 흐름까지도 신경 쓰는 지경에 이르렀다. 강사님, 교수님, 선생님으로 불리며 나는 누군가를 가르쳤고 돕고 지도하고 성장시켰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다 보니 나는 바라던 대로 어느 날부터 팀장님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리더십을 가르치다 보니 교육 중 내가 지금 설명하고 있는 이 리더십 이론이 저 팀장님께 어떻게 들릴까 하는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리더가 되어 보지 않은 리더십 강사의 말이 꼭 앙꼬 없는 찐빵처럼 들릴 여지를 주는 자체가 싫었다. 실증적으로 내가 가르치는 이 이론이 과학임을 내가 실험 도구가 되어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리더가 되어 이론이 아닌 실제로 작동한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어 팀장이 되고 싶었고 정말 4년 전 가을 나는 팀장이 되었다. 좋은 팀원을 뽑고 함께 즐겁게 일하며 내가 말한 대로 살고자 노력하며 때로는 성공하고 때로는 실패했다. 그리고 내가 뽑은 팀원을 두고 회사를 옮기게 되었다.
새로운 회사에서도 나는 팀장이지만 호칭은 크리스타 님이다. 가끔 ‘팀장님~’ 하고 불러주던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팀장님이란 단어, 마치 그건 마법처럼 뭔가 나를 한순간에 책임감 있게 만든다. 나를 의지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는 주문에 가까운 부름이었다. 그에 비해 지금의 우리(팀)는 동등하다. 물론 여전히 일의 결과를 책임지고 머리를 쥐어싸며 고민하는 건 똑같지만 그래도 내가 지금 속해 있는 회사에서 우리는 모두 동등하게 OO님이라고 부른다. 작년 봄 즈음이었나 한국 대표님이 촌스럽게 전무님, 상무님이 뭐냐고 지적하신 이후부터 우리는 회사의 핵심가치 중 하나인 Equality를 실제적으로 실현해 가고 있는 중이다.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1년 뒤, 3년 뒤에 내 주변의 동료, 사람들에게 내가 뭐라고 불리고 있을지 말이다. 가끔 코치님이라고 불러주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를 부르는 범주가 조금은 확장된 느낌이다. 이 밖에 무언가가 더 나타나 나의 존재를 표현해주고 확인시켜 주길 기대하는 마음도 크다. 돌이켜본 지난날이 나에게 속삭여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너를 부르는 그 호칭이 바로 너 자신이라고, 그것이 너를 규정하고 만들어왔다고 말이다.
당신은 어떠한가? 지금 누구라 불리고 있는가?
더 중요한 건,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호칭으로 불리고 싶은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고 주파수를 맞춰볼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