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발표를 향한 Good to Great

30분이 아닌 50시간을 위한 채찍질

by 에레모스

1. ”어제저녁 리허설을 해보는데 제 발표가 너무 재미없더라고요. 회사 마케팅 행사 발표라고 하는 게 재미있는 콘텐츠가 아니기도 하고, 오는 분들도 ‘재미’를 기대하고 오진 않을 텐데 그래도 저는 포기가 잘 안돼요. “


2. 지난주 화요일 1년 중 가장 크고 중요한 회사 마케팅 행사를 앞두고 나는 꽤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5월 말 행사인데 3월 초 첫 미팅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쭉 이어져 왔으니 약 3 달이라는 시간을 쏟아부어 여기까지 온 거다.


3. 우리 부서를 대표해 내가 발표한 세션은 재작년까지는 없던 주제였다. 2022년 2월부터 신사업을 맡고 난 후 도와주는 사람도 기댈 곳도 없던 작년 이맘때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케팅 팀을 찾아가 제가 이런 주제로 발표를 하고 싶으니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다.


4. 다행히 기존 세션 중 ‘교육’이나 ‘활용’과 관련된 콘텐츠가 없었던 터라 30분의 새로운 세션이 추가로 만들어졌다. 작년에도 홀로 창조의 고통에 시달리며 콘텐츠를 어떻게든 만들어 발표했는데 올해는 작년과는 또 다른 콘셉트로, 또 몇 년 만에 재개하는 오프라인 행사인만큼 또 다른 부담감이 밀려왔다.


5. 발표 준비에 있어 내 고민은 돌이켜보면 Selling의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양질의 콘텐츠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두 마음의 공존이었다. 어쩔 수 없이 양적으로 많은 콘텐츠가 담겨야 하겠지만, 콘텐츠가 그냥 나열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내용이 유기적으로 서로 잘 연결되고 논리적으로 전달되는 그런 완성도 높은 콘텐츠 말이다. 그러면서도 사업부의 리더로서 나의 세션을 통해 고객들이 우리의 솔루션과 교육에 더 많이 등록하시게 하는 것 역시도 중요한 결과물인 만큼 놓칠 수 없었다.


6. 하지만 현실에서 발표준비는 늘 나의 후순위였다. 행사는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아 보이는 1-2달 뒤였고 오늘 내 앞에 닥쳐오는 미팅과 승인해야 할 사항, QBR과 팀 아젠다 등 나에게는 항상 더 긴급하고 중요한 일들이 차고도 넘쳤다. 시간관리의 4 사분면에 따르면 사람들은 1) 긴급하고 중요한 일, 3) 긴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 4) 긴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시간을 쏟으며 살고 있다고 한다. 나 역시 별로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의도적으로 2) 긴급하지 않지만 중요한 일에 시간을 쏟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세웠다. 구글 캘린더를 열고 나는 발표 준비를 위한 일정 블럭을 시작했다. 행사일로부터 역산하여 1달 전까지는 발표 전체 아젠다를 정하고, 2주 전까지는 슬라이드의 뼈대를 만들고 1주일 전까지는 모든 장표를 완성한다 등등.


7. 이러나저러나 시간은 잘 흘러갔고 발표날은 결국 왔다. 내가 발표하는 세션 시간은 오후 4:10-4:40였는데 사실 내가 책임지는 시간이 그냥 30분이 아니라, 참석자 수 x 30분의 총합계라고 생각했다. 그곳에 모인 100명, 150명 각각의 30분이 모두 가치 있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 같다. 벌써 10년 넘게 누군가 앞에서 설명하고 설득하는 일을 오래 해온지라, 무대 위에 서면 오히려 평소보다 더 차분하고 집중해서 말을 청산유수로 내뱉게 된 나인지라 일단 시작하면 발표는 술술 내뱉게 된다.


8. 감사하게도 끝나고 보니 두 마리 토끼를 나는 다 잡은 것 같다. 세션이 끝난 후 꽤 많은 분들이 오셔서 명함을 교환하며 질문과 코멘트를 나누었다. 여러 세션에 참석한 회사의 동료들은 나를 보며 엄지 척을 해주었다. 글로 남겨주신 참석자 몇 분의 코멘트를 남겨본다. “OOO을 더알고 싶다는 마음이 마구 생기는 세션이었습니다. “ ”재미있고 유익했습니다. “ “다른 세션은 기계적으로 정보가 전달되었는데, 이야기가 귀에 쏙쏙 들어왔어요.”


9. 팀의 숫자로 결과를 말해보자면, 당일 세션이 마무리된 후 무려 50개가 넘는 신규 리드가 생겼고 대부분이 warm 그리고 당장 등록에 가까운 결과물이었다. 나 자신에 대한 혹은 우리 팀이 판매하는 상품에 대한 믿음이 너무 없었던 것일까, 50개가 넘는 등록 리드를 보고 사실 나는 많이 놀랐다. 누가 올지, 무엇을 기대할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교육에 등록할지 조금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도 숫자가 많은 것을 대신 이야기 해주어 오히려 더 감사하고 깨달음이 크게 느껴진 시간이었다.


10. 발표 자료 마감일은 행사 1주일 전이었는데, 내가 마케팅 팀에 자료를 보낸 시간은 마감 13분 전인 밤 11시 47분이었다. 그 순간까지도 정말 너무 하기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그 이야기를 들은 가까운 지인이 내 마음을 해석해 줬다. “하기 싫다는 마음은 잘하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인 듯.” 와, 읽는 순간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거 같았지만, 그 말이 맞았다. 나는 발표를 잘 준비해서 잘하고 싶었던 게 맞았고 그래서 나답지 않게 큰 스트레스와 준비로 애를 먹었던 것 같다.


11. “Good to Great”이라는 책 제목이 문득 떠오른다. Good으로 충분하다고 스스로와 타협하지 않고, Great을 목표로 해보자. 거기서 만들어내는 2%가 일과 삶의 모습과 태도, 그리고 성과에 큰 차이를 만들어줄 거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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