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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레모스 Jul 09. 2023

당신의 대나무숲은 어디인가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1. 누군가의 대나무숲이 되어준 적이 있나요? 그리고 당신에게도 대나무숲이 있나요?

지난 금요일 내가 받은 2통의 전화는 대나무숲에서 크게 외치는 고객과 엄마의 목소리였다. 그 전날에도 사무실에서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잠깐 나오라는 눈인사와 함께 시작된 그녀의 이야기 또한 나를 곧바로 대나무숲으로 만들었다.


2. “제가 하는 일 중 아무도 눈 여겨보지 않지만, 중요한 일 중 하나가 바로 동료들의 대나무숲이 되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팀 사람들과 점심시간 커피를 마시면 나도 모르게 문득 그런 이야기를 내뱉었다. 아마, 그날도 고객이 카톡으로 상사와 있었던 화가 나는 일을 보냈는데 정도가 심각하다고 느껴 대화가 전화로 이어지는 바람에  커피 타임 중 거의 20분 동안이나 자리를 비우고 돌아온 이유를 설명하느라 그랬을 거다.


3. “대나무숲”이란 말은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신라의 한 왕의 귀가 길었는데 그 비밀을 지키느라 입이 간지러웠던 왕관 기술자가 견디다 못해 대나무숲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고 외쳤다는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 한국인이라면 이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듯하다. 직장에서 일하며 힘든 일, 어려운 일, 억울한 일이 있을 때마다 친한 동료들과 이야기하며 OO님이 제 대나무숲이에요.라고 말하게 된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같은 이야기라 나는 고통스러운데 말은 안 하자니 죽겠고, 밖으로 새나가지는 않았으면 할 때 대나무숲을 찾게 된다. 나에게도 대나무숲 같은 동료가 있고 나를 대나무숲 삼아 찾아주는 동료와 가족 친구 때로는 고객들이 있다.


4. 문득 그런 생각을 해봤다. 대나무숲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고 이 대나무숲이 우리를 우울증이나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에 걸리지 않게 해주는 순기능을 하고 있다고 말이다.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 잘 들어주고 공감만 해줘도 부정적인 감정의 일부가 해소되고 마음이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나무숲은 뒷담화와는 결이 조금 다르다. 뒷담화는 그저 사람을 비난하고 욕하고 깎아내리기 위한 용도라고 한다면, 대나무숲은 참고 참다가 내가 살려고 누군가를 찾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5. 각 사람의 대나무숲은 그렇지만, 생각보다 찾기 쉽지 않다. 왕관 기술자도 사람이 없는 대나무숲이겠지 하고 숲 속 깊은 곳에 들어가 외쳤음에도 그가 죽은 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바람에 소리가 들렸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은 쉽게 새어나간다. 먼저는, 대나무숲이 되어줄 만큼 신뢰가 쌓인 상대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대한테 A-Z부터 설명하다 보면 말하다 지치고 원하는 공감은 더더욱 얻기가 어렵다. 그래서 두 번째 조건은 나의 상황과 어려움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상대: 가족이라면 엄마와 딸, 직장인이라면 동료 등일 것이다. 이 둘을 충족해도 내 말에 말을 덧대어 전하거나 솔루션을 제시하려고 하는 상대는 적당하지 않다. 그렇기에 마지막 조건은 입은 무겁고 귀는 열려 있는 상대여야 한다.


6. 나는 종종 아니 자주 주변 사람들의 대나무숲이 되어주고 있다.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동네 지인, 매니저 때문에 미치려고 하는 동료나 고객, 남편 때문에 가끔 너무 화가 나는 우리 엄마, 일하는 학교의 집단 이기주의로 인해 고통받는 선배 등등. 그들 대부분은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을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왜 화가 났는지, 무엇이 억울한지, 혹은 그로 인해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말이다. 그때의 나는 정말 온전히 대나무숲이 되어주려고 노력한다. 나도 사람이기에 반복되는 대나무숲을 하다가 지치기도 하고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는 모습에 실망하거나 힘이 빠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대나무숲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그들은 어느 순간 스스로가 답을 찾고 일어나고 강해진다. 그 모습을 발견할 때 나는 참 뿌듯하다. 이와 달리, 누군가는 나에게 정말 조언을 구하고 자신을 힘들게 하는 그 상황과 상대에 대한 객관적인 조언과 솔루션을 요청하기도 한다. 그럴 때일수록 더 조심스럽지만, 그때의 나는 최대한 상황을 객관화하고 나의 생각도 하나의 코멘트로만 전달한다. 그리고 그 사람을 돕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때로는 함께 실행한다. 이 경우는 앞선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와 책임을 함께 지기 때문에 더 힘겹고 때로는 그로 인해 내가 함께 기분이 다운되거나 때로는 불이익을 받기도 한다.


7. 이렇게 보면 대나무숲이 때로는 대나무숲 그 자체이며 상담소, 해우소가 되기도 했다가 전쟁터를 거쳐 코칭의 현장과 화해의 악수를 주고받는 역사적 현장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중요한 결론은 당신도 대나무숲을 찾으라는 거다. 회사에서 대나무숲이 되어줄 동료를 찾았다면 당신은 행복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정생활에서 일상에서 대나무숲이 되어줄 친구와 가족(때로는 남편, 아내, 딸)이 있다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8. 그러니 우리, 바쁘냐고 묻는 누군가의 물음에 아니, 괜찮아 말해.라고 답할 마음의 여유와 넉넉함을 갖고 살아보자. 그 한마디가 때로는 폭격같은 20분 아니 1시간의 통화로 이어져 너덜너덜해질 수 있겠으나 그로 인해 그 사람은 살아갈 의미와 힘을 얻고 어려움을 거뜬히 이겨내게 될 것이다. 그렇게 기꺼이 대나무숲을 자처해 살아온 게 어언 10년이 넘은 거 같다. 바라기는 대나무숲에 외칠 일이 부디 없거나 적어지길 바란다. 대나무숲에 와서야 비로소 숨을 쉬며 억장이 무너져라 외칠 수 있는 그들의 마음이 오죽할까 싶어서이다.


9. 그래서 힘들 땐 다같이 외쳐보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당신의 대나무숲은 바람에 당신의 이야기를 흘려 보내지 않고 땅에 꼭꼭 묻어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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