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노 공원 그리고 매니저
호사와 같은 주말을 누리고 있다. 알람을 맞추지 않고 푹 자고 일어날 수 있는 주말의 여유는 얼마나 소중하고 드문 일인지! 느긋하게 일어나 아침으로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 나답지 않게 구글맵을 열어 평점이 높은 카페를 찾아 10분쯤 되는 거리를 걸어가 보았다. 외국인들이 꽤 많이 줄을 서 있었고 빈자리가 없어 다른 곳을 갈까 하다가 또 다른 카페를 찾는 게 번거로워 기다릴 각오를 하며 줄을 섰다. 카페 이름은 KIELO COFFEE, 작지만 인테리어가 깔끔한 곳이다. 무려 커피 한잔에 1,000엔이고 치즈케익도 홈메이드라 550엔이었지만, 와 라떼가 정말 맛있었다. 그윽한 바나나향 커피에 치즈케익을 2개나 먹고 나니 나름 든든해졌다.
숙소에서 조금 더 뒹굴거리다가 15분쯤 걸어가면 우에노공원이 나온다고 하여 선크림과 선글라스로 무장하고 거리로 나섰다. 벌써 2번째 도쿄 출장이라고 지난번보다는 훨씬 익숙하고 자신감이 넘친다. 지하철도 헤매지 않고 타고 무려 구글맵을 보고 헤매지 않고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고 있으니 말이다.
덥지만 견딜만한 여름의 우에노공원에는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가족, 연인, 나와 같은 외국인들이 섞여 토요일다운 주말의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원래 연꽃이 이 시기에 피는 거겠지, 뜻하지 않게 공원 중앙의 연못에 피어있는 연꽃과 그 향기로 공원은 뜨겁고 향긋하며 여유로움마저도 품고 있었다. 공원 한쪽에는 길거리 음식을 판매하는 상인들이 있었고 터가 넓은 한편에서는 원숭이를 조련하는 한 길거리 곡예사가 유창한 일본어로 사람들을 웃기기도 하며 원숭이의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여줘 사람들이 제법 모여 있었다. 원숭이에게 사람처럼 옷을 입히고 의자에 앉히고 대화를 하는 모습은 지나가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밖에 없었는데 놀라운 건 내가 집으로 돌아오는 4시간 뒤에도 그 자리에서 곡예를 하고 있어 원숭이의 주말도 꽤나 고단하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지난 목요일 오후에는 출장 온 김에 매니저와 1 on 1을 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정해진 미팅이라 아젠다를 모르고 들어가 살짝 불안했는데, 역시나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게 되었다. 조직은 늘 변화하고 여러 가지 전략적인 이유로 결정을 하게 되는 게 맞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곧바로 소화하기가 어려운 거 같다. 그렇지만 문득 멈춰 서서 생각해 본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에는 태산처럼 크게 보이던 문제가 사실은 정말 수증기처럼 잠시 뿌옇고 금새 지나간다는 걸 깨달았었다. 오히려 시간이 더 지나면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때로는 긍정적인 일들도 생겨나고 고난의 대가로 더 단단해진 나를 발견하니 이 또한 좋은 효과인 게다. 그러니 말해본다. 너 흔들리지 말고 무던히 담담하게 지나가라고. 진짜 별일 아니라고.
도쿄의 여름이 너무 덥다고 해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하고 왔는데, 겪어보니 내게는 서울의 여름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뜨거운 여름은 나무를 단단하게 하고 과실을 달콤하게 익어가게 한다. 이 거리를 걸으며 나도 단단해지고 더 풍성해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