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과의 영화관 데이트
“엄마, 우리 영화 보기로 했잖아”
금요일 오후 나는 재택근무 중이었는데 학교에서 돌아온 둘째가 내 옆으로 오더니 다짜고짜 따지듯이 말했다. 맥락 없이 한 말이었지만 나는 순간 무슨 이야기인지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전부터 영화관에 가고 싶다고 둘째는 종종 여러 차례 얘기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약속을 지금껏 못 지켜왔던 것이다.
마침 너무 바쁜 회사일에 지쳐있던 나에게도 refresh가 필요했던 터라 당장 네이버를 열어 검색을 시작했다. 전체관람가 영화는 딱 2편뿐이라 선택의 폭은 넓지 않았고 빠르게 예매까지 후루룩 해버렸다. 스파이더맨과 엘리멘털 두 편의 영화 중, 익숙한 건 스파이더맨인데 뭔가 디즈니와 픽사가 함께 만든 영화가 딸들에게는 더 재미있고 유익할 거란 판단에 큰 고민 없이 결정했다.
영화를 예매하고 나니, 막상 더 설레는 건 아이보다 역시나 나였다. 금요일 저녁의 영화라니, 이게 얼마만이냐. 영화를 제법 좋아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영화에 별 감흥이 없는 사람이다. 친구나 동료들과 가끔 짬을 내 보기도 하지만, 일과 육아에 치이다 보면 영화관은커녕 무슨 영화가 개봉해 상영하는지도 모를 때가 허다했다. 주말보다 더 좋은 게 금요일 저녁이라고 힘들었던 한 주에 대한 보상처럼 몇 시간 뒤에 보게 될 예매 티켓은 나에게 반짝 생기를 가져다주었다.
6시가 되어 업무를 땡 마무리 하자마자, 아이들을 챙겨 영화관 근처의 부대찌개 집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김치가 많이 들어가 개운한 부대찌개 맛이 정말 일품이었다. 여름은 덥다 못해 뜨겁지만, 저녁을 먹고 나와도 여전히 날이 밝고 환해 참 좋다. 부지런히 영화관에 걸어가 예매한 티켓을 출력했다. 그러자마자 “엄마, 팝콘 사줄 거야? 영화 볼 때 맨날 안 사줬잖아”라고 질문하는 우리 둘째 딸, 언제 봐도 둘째는 원하는 게 명확하고 참 실속 있다. 누구의 기억에 오류가 있는 것일까, 나는 영화 볼 때 팝콘 사줬던 거 같은데 쩝. 금요일 저녁인데 뭐 기분이다! 작은 사이즈로 사주려다 500원 차이라는 걸 알고 큰 팝콘을 냅다 안겨주니 둘째 딸 표정이 보름달 같이 밝다.
그렇게 관람을 시작한 엘리멘탈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화면은 너무 예뻤고, 생각지 못한 작가와 감독의 상상력은 나까지 기분 좋게 했다. 무엇보다 탄탄한 스토리와 명대사/명장면으로 2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집중해 있었다. 깔깔거리고 웃던 우리 아이들 주인공의 하이라이트 장면에서는 눈물도 흘리며 엄마 내용이 너무 슬퍼라고 이야기하며 영화를 200% 즐기고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데 아이들의 만족스러운 표정, 그리고 한주의 스트레스가 풀려 있는 내 모습을 바라보니 37,000원이 전혀 아깝지 않게 느껴졌다. 우리는 영화를 다 보고 집에 가는 길인데, 그 시간에도 아이와 함께 영화를 즐기러 온 가족들이 꽤 있어 금요일 밤임을 다시 한번 여실히 느꼈다.
새삼스럽게 아이들이 이렇게나 커서 나와 함께 감정을 공유하고 영화를 편안하게 즐기는 이 순간이 소중하게 다가왔다. 이제는 영화 티켓값이 아깝게 느껴지는 뽀로로나 겨울왕국을 보며 내 시간을 허비한다고 느끼지 않아도 될 만큼 우리 아이들이 성장해 이제는 친구처럼 영화를 함께 즐길 수 있게 된 거다. 영화를 즐기지 않는 남편은 곧 우리 셋의 영화 타임을 부러워하게 될 테니 그를 슬금슬금 놀려 볼까 한다. 그리고 나는 보란 듯이 또다시 금요일 저녁에 영화를 예매해 어느덧 생각과 마음이 자라 가고 있는 우리 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각자의 수고한 일주일을 격려하려고 한다.
엄마이길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