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말하는 ’ 나이‘라는 통념에서 자유로워지기
나는 서른이 넘은 이후 나이에 대한 통념으로부터 무척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
스무 살엔 대학에 가야 하고, 4년 대학을 다니면 스물네다섯엔 취업을 해야 하고 서른 즈음에 결혼을 하고 또 그 몇 년 뒤엔 아이를 낳고 마흔부터는 안정된 삶을 살아야 하고 등등등.
아마 내가 그렇게 살 수 있었다면 여전히 그렇게 살며 삶을 뽐내고 그 시기에 그것을 해내지 못하는 친구나 선배에게 꼰대처럼 잔소리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연히 감사하게도 스무 살에 대학은 갔지만,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커리어를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사회통념을 버릴 수밖에 없는(?), 아니 그런 건 없고 각자마다 그들만의 때가 있다고 주장하는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렇게 살아보니, 초반엔 힘들어도 생각보다 별 게 없고 오히려 괜찮았다. 취업을 왜 이렇게 늦게 했냐, 다른 회사를 다니다 왔냐, 나이가 몇이냐 듣기 싫은 질문을 입사 첫 해에는 인사할 때마다 밥 먹을 때마다 회식 때마다 정말 주구장창 들었다.(실제 나에게는 4살 어린 여자 동기가 있었다.) 하지만 2년 차부터는 그 누구도 내 나이와 과거에 대해 특별히 궁금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을 잘하는지, 실력이 있는지가 더 중요해졌고 그래서 그것에 맞춰 살아왔다.
이제는 덤덤하지만 사회생활 늦깎이였던 게 그 시절엔 사실 그런 통념과 질문이 정말 너무도 싫고 괴로웠다. 나 혼자 뒤처진 거 같은 인생, 어느 대학교 무슨 과 혹은 어느 회사에 무슨 일 등 명함은 없어도 어떤 타이틀로 나를 소개할 수 있는 인생이 아닌 백수의 삶 무언가를 준비하는 그 시간을 요즘처럼 내버려 두거나 존중하지 못하던 관습과 무엇보다도 그런 나 자신을 용납할 수 없는 무엇보다도 나를 괴롭히는 건 사실 나였던 거 같다. 그래서 취업은 늦어졌지만 결혼은 빨리 하리라, 지금 생각하면 정말 무모하리만치 취업한 해 12월 말에 남편과 결혼을 했고 그다음 해에는 아이를 가져 출산까지 했다. 신입 1-2년 차에는 언감생심 생각도 하기 어려운 일인데 그걸 용납해 준(?) 당시 회사 팀장님과 사장님께 문득 감사한 마음이 든다. 물론 외국계 회사라 가능했다고 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고 천천히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어도 내 인생은 괜찮았을 거라 회고해 보지만 그만큼 뒤처진 인생을 따라잡고 만회해 보겠다는 강한 욕망의 결과라고도 여겨진다. 뭐 덕분에 나는 한결 성숙한 인간이 되긴 했다. 일도 미숙한 시기에 결혼생활과 육아를 함께 시작하며 3x로 복잡하고 어려운 인생을 선택한 건 어디까지나 나였고 그에 걸맞게 책임지고 사느라 진을 다 뺐다.
나의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이 아무리 치열했건 시작이 다소 늦었건 결혼이 조금 빨랐건 말건 결국 직장인이 일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면 신기하게도 인생은 또 거기서 거기처럼 보인다. 무사히 이혼의 위기를 넘기고(?) 경력단절의 유혹은 받을 새도 없이 십수 년을 일하며 워킹맘으로 살아보니 그렇다. 물론 얼마만큼 잘 살았냐는 각 사람마다 매우 다른 인생의 결과값으로 드러나겠지만. 그런 내 앞에 사람들은 또 나타나 이제 애도 있고 직장생활도 할 만큼 했으니 적당히 한 회사에서 안정적으로 일하라고 한다. 도대체 왜요?! 물론 그럴 수 있고 그런 사람도 있다. 나도 지난 3년간 번아웃을 겪을 만큼 지치고 힘든 시간이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나는 아직 정말 내가 한창 때라고 생각한다. (비록 비루한 내 몸과 체력이 내 열정을 따라주지 못해도!!) 커리어의 전성기도 오지 않았고, 해보고 싶은 일은 아직도 너무 많고(비단 일뿐 아니라) 가보고 싶은 곳도 너무 많다. 저는 가두리 양식장의 물고기가 아니니, 제발 저를 어디에 좀 가두려고 하지 마세요! 아 물론 가두려 한들 가둬지지 않는 인간인건 확실하다. 강성인 우리 아빠도 진즉 포기하셔서 ㅎㅎ
갭이어(Gap year)가 언젠가부터 한국에도 소개되고 관련된 기관이나 프로그램도 생겨나고 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국가에서는 청소년은 대학을 가기 전 1년, 사회인은 일을 하다가 잠시 삶에 ‘gap’을 가지고 쉬어 가며 원래 하던 것 외에 새로운 경험과 활동을 해본다는 의미라고 한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갭이 발생하면 그걸 줄이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데 갭을 일부러 갖는다니 역설적이다. 그래서 현대인에게는 갭이 필요하다. 너무 모두가 빠르게 무언가를 추구하고 달려가고 그게 정답이라고 믿고 강요받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갭이어를 가져보지 않았지만, 그 1년이 얼마나 한 사람의 인생을 풍요롭고 넓게 해 줄지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진다. 몇 년 안에 나 역시 갭 이어를 가져보는 게 목표다. 그렇게 갭이어를 가지며 친구나 주변인들보다 내 삶의 출발선은 6개월, 1년 늦어질 수 있겠으나 아프리카 속담처럼 더 멀리 그리고 깊이 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