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exible working의 뜻하지 않은 힐링
두 아이가 여름방학을 맞이했다.
일하랴 삼시 세 끼를 챙기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재택근무가 가능해 너무 감사하지만 하나도 제대로 못 해내고 있다는 그 찝찝함에 눌려 하루를 마무리하는 게 괴로운 하루하루였다. 옆에 물리적으로는 존재하는 엄마, 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아이들이 아닌 컴퓨터 속 화면의 사람들과 문자와 숫자에만 집중하고 있는 엄마, 그런 내 모습이 아이들에게 유난히 더 미안해졌다.
그러다 문득, 뭐야 우리 회사 flexible working hour 있잖아. 새벽에 일 시작해서 오후에라도 일찍 끝내면 애들이랑 조금 더 시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문득 깨달음이 와 여기저기 규정을 뒤지기 시작했다. 매니저 승인하에 중요한 업무 일정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오케이라네. 바로 매니저에게 슬랙을 보냈다. 은근히 남은 여름방학 기간 중 가능한 일정은 몇 개 안 돼 겨우 3일 오전 6시에 업무를 시작해 오후 3시에 끝내는 일정을 짜보았다. 팀원들에게도 공표(?)했다. 나의 flexible working 시간에 대해, 그리고 팀원들 역시도 필요할 때 신청해서 많이 활용하라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렇게 새벽 6시 근무를 시작한 첫날이 바로 지난주 수요일이다. 여름은 덥고 환해 새벽에도 기운이 잘 안 나는데 그날은 일어나 산뜻하게 샤워하고 책상 앞에 앉으니 기분이 새록 좋아졌다. 가족 모두 아직 자고 있고 날은 밝았지만 약간의 서늘함을 머금고 있는 새벽의 그 기운이 나를 집중하고 힘나게 했다. 일을 하고 있는데도 나는 너무 즐거웠다. 온전히 집중할 수 있고 고요한 이 시간이 너무 그리웠달까? 아이들을 위한 선택이었는데 뜻밖에 나를 위한 선물이었다.
일상을 조금만 다르게 바꾸어도 삶은 생각보다 금세 좋아진다. 그냥 내 마음이 달라지는 게 가장 크겠다. 아침, 아니 새벽아 너 참 좋다.
[사진: 얼마 전 일본 여행 중, 온천으로 유명한 하코네 료칸에서 찍은 아침 풍경]